사회적 약자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장벽을 허무는 배리어프리. 사회적 기업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일상에 귀 기울이며 버려진 종이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누구라도 한 번쯤 동네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을 마주했을 것이다. 리어카 가득 폐지를 싣고 힘겹게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는 모습에서 삶의 그늘과 고단함을 느끼기도 했을 터. 그저 스쳐 지나던 폐지 수거 어르신이지만, 누군가는 이들의 삶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다.
인천을 기반으로 하는 러블리페이퍼는 폐박스, 종이 쌀부대, 버려진 호텔 침구 등을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는 곳이다. 선보이는 제품은 크게 서류 가방, 카드 지갑 등 종이 가죽 제품과 페이퍼 캔버스 두 가지로 나뉘는데, 모두 어르신들의 노력과 손길을 거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이곳의 제품은 모두 인천 지역 어르신들이 수거해온 폐지를 활용할 뿐 아니라 시니어를 직원으로 고용해 수작업 공정으로 제품을 완성한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온·오프라인에서 개별 판매하기도, 기업체의 사회 공헌 활동에 활용되기도, 작가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작품'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다시 폐지 수거 어르신들을 위해 사용하는 등 유익한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어르신들이 수거해온 폐지를 시세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에 사들인다는 점에서 러블리페이퍼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폐지 kg당 시세가 상당히 들쭉날쭉합니다. 예컨대 2013년에는 kg당 140원을 쳐줬지만, 2018년에는 30원까지 떨어졌죠. 현재는 50~60원 책정하는데 이렇게 변동 폭이 크다 보니 폐지 수거 어르신들은 안정적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터무니없는 수입도 문제죠. 리어카 가득 폐지를 실으면 보통 200kg 정도 모이는데 kg당 가격이 50원인 경우 1만 원을 받습니다. 하루 8시간 이상 14km를 걸어 폐지를 모아봐야 겨우 1만 원을 버는 셈이죠.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껴 저희는 시세보다 여섯 배가량 폐지 가격을 더 쳐드리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고 있어요."
기 대표가 처음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3년 대안학교 교사로 재직 중일 때다. 평소 자원 재활용이나 재사용에 관심이 많던 그의 눈에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고, 그들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2017년 법인을 설립해 사회적 기업까지 일구게 됐다는 것. "어르신들을 만나 직접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단순히 경제적 빈곤 때문에 폐지를 수거하는 분도 계시지만, 친구들이 사망하거나 요양원에 가면서 정서적 결핍 때문에 거리로 나선 분도 많더라고요. 춥고, 덥고, 위험한 여건에서 폐지를 수거하면서도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구나 하는 생각에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폐지 수거인을 어엿한 자원 재생 활동가로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약자로 치부하며 그 가치를 몰라주죠. 하지만 폐지 수거 어르신들이야말로 자원 순환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폐지 회수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동네 곳곳을 다니며 알뜰살뜰하게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의 역할이 무척 크다고 봐야죠."
지난 8년간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고가 매입, 어르신 일자리 창출 등에 힘쓰며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갔다. 덕분에 “출근길이 꼭 소풍 오는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거나 폐지 수거 시간이 대폭 줄어 여가 시간을 즐기게 됐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그리고 러블리페이퍼의 행보에 주목하며 지지와 격려를 보내는 후원자도 생겨났다. 2021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부문 장관표창을 비롯해 2023년 인천시 사회가치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그 뜻을 알려왔고, 최근에는 사단법인을 꾸리고 부평에 새 공간을 마련하는 등 자원 재생 활동 및 어르신을 위한 지원 센터 운영의 초석을 닦기도 했다. 2026년까지 센터를 다섯 곳으로 늘려 어르신들의 일자리, 안전, 생활, 여가, 정서적 지원까지 전 방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장애인과의 접점 또한 다양하게 고심 중이다. 밀알복지재단 소속 발달장애인 작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페이퍼 캔버스 DIY 키트'를 제작하는가 하면, 함께걸음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목공 교실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들로부터 목재 이젤을 제작받아 이를 러블리페이퍼의 캔버스와 함께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다시 취약 계층에 돌려주기도 했다. 어르신들을 위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서 제작에 참여한 장애인들이 큰 보람을 느꼈다는 후문. 기 대표는 “폐지 수거 어르신들 중에도 장애가 있는 분들이 종종 계시기에,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코로나19 당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회사를 지킨 러블리페이퍼는 이렇듯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러블리페이퍼의 향후 청사진을 묻는 질문에 기 대표는 '멋지게 망하는 일'이라는 뜻밖의 대답을 들려줬는데,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같은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스타트업이 생기지 않는 게 훨씬 좋은 사회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다는 방증이니까요. 폐지 수거 어르신을 지원하는 법과 제도가 완비되면 우리 존재 이유도 사라지겠죠. 빨리 그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더불어 살아갈 수 있도록 장벽을 허무는 배리어프리.
사회적 기업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줍는 어르신들'의 일상에 귀 기울이며 버려진 종이에 새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
누구라도 한 번쯤 동네에서 폐지 줍는 어르신을 마주했을 것이다. 리어카 가득 폐지를 싣고 힘겹게 이 골목 저 골목 누비는 모습에서 삶의 그늘과 고단함을 느끼기도 했을 터. 그저 스쳐 지나던 폐지 수거 어르신이지만, 누군가는 이들의 삶에 애정 어린 관심을 가지고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 러블리페이퍼 기우진 대표다.
인천을 기반으로 하는 러블리페이퍼는 폐박스, 종이 쌀부대, 버려진 호텔 침구 등을 재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발굴하는 곳이다. 선보이는 제품은 크게 서류 가방, 카드 지갑 등 종이 가죽 제품과 페이퍼 캔버스 두 가지로 나뉘는데, 모두 어르신들의 노력과 손길을 거친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이곳의 제품은 모두 인천 지역 어르신들이 수거해온 폐지를 활용할 뿐 아니라 시니어를 직원으로 고용해 수작업 공정으로 제품을 완성한다.
이렇게 생산된 제품은 온·오프라인에서 개별 판매하기도, 기업체의 사회 공헌 활동에 활용되기도, 작가들의 재능 기부를 통해 '작품'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을 다시 폐지 수거 어르신들을 위해 사용하는 등 유익한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어르신들이 수거해온 폐지를 시세보다 훨씬 더 비싼 가격에 사들인다는 점에서 러블리페이퍼의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폐지 kg당 시세가 상당히 들쭉날쭉합니다. 예컨대 2013년에는 kg당 140원을 쳐줬지만, 2018년에는 30원까지 떨어졌죠. 현재는 50~60원 책정하는데 이렇게 변동 폭이 크다 보니 폐지 수거 어르신들은 안정적 수입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터무니없는 수입도 문제죠. 리어카 가득 폐지를 실으면 보통 200kg 정도 모이는데 kg당 가격이 50원인 경우 1만 원을 받습니다. 하루 8시간 이상 14km를 걸어 폐지를 모아봐야 겨우 1만 원을 버는 셈이죠. 이런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껴 저희는 시세보다 여섯 배가량 폐지 가격을 더 쳐드리며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급하고 있어요."
기 대표가 처음 폐지 수거 어르신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 2013년 대안학교 교사로 재직 중일 때다. 평소 자원 재활용이나 재사용에 관심이 많던 그의 눈에 폐지를 모으는 어르신들이 눈에 띄었고, 그들의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2017년 법인을 설립해 사회적 기업까지 일구게 됐다는 것. "어르신들을 만나 직접 이런저런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단순히 경제적 빈곤 때문에 폐지를 수거하는 분도 계시지만, 친구들이 사망하거나 요양원에 가면서 정서적 결핍 때문에 거리로 나선 분도 많더라고요. 춥고, 덥고, 위험한 여건에서 폐지를 수거하면서도 대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구나 하는 생각에 힘을 보태고 싶었습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폐지 수거인을 어엿한 자원 재생 활동가로 인정하는 분위기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사회적 약자로 치부하며 그 가치를 몰라주죠. 하지만 폐지 수거 어르신들이야말로 자원 순환에 꼭 필요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실제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폐지 회수율이 압도적으로 높은데, 동네 곳곳을 다니며 알뜰살뜰하게 폐지를 수거하는 어르신들의 역할이 무척 크다고 봐야죠."
지난 8년간 러블리페이퍼는 폐지 고가 매입, 어르신 일자리 창출 등에 힘쓰며 복지 사각지대를 메워갔다. 덕분에 “출근길이 꼭 소풍 오는 것 같다”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이거나 폐지 수거 시간이 대폭 줄어 여가 시간을 즐기게 됐다는 어르신도 있었다. 그리고 러블리페이퍼의 행보에 주목하며 지지와 격려를 보내는 후원자도 생겨났다. 2021년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부문 장관표창을 비롯해 2023년 인천시 사회가치우수상 등을 수상하며 그 뜻을 알려왔고, 최근에는 사단법인을 꾸리고 부평에 새 공간을 마련하는 등 자원 재생 활동 및 어르신을 위한 지원 센터 운영의 초석을 닦기도 했다. 2026년까지 센터를 다섯 곳으로 늘려 어르신들의 일자리, 안전, 생활, 여가, 정서적 지원까지 전 방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장애인과의 접점 또한 다양하게 고심 중이다. 밀알복지재단 소속 발달장애인 작가의 작품을 바탕으로 '페이퍼 캔버스 DIY 키트'를 제작하는가 하면, 함께걸음인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 목공 교실에 참여하는 발달장애인들로부터 목재 이젤을 제작받아 이를 러블리페이퍼의 캔버스와 함께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다시 취약 계층에 돌려주기도 했다. 어르신들을 위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서 제작에 참여한 장애인들이 큰 보람을 느꼈다는 후문. 기 대표는 “폐지 수거 어르신들 중에도 장애가 있는 분들이 종종 계시기에,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을 계속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익이 전무하다시피 했던 코로나19 당시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회사를 지킨 러블리페이퍼는 이렇듯 조금 더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있다. 러블리페이퍼의 향후 청사진을 묻는 질문에 기 대표는 '멋지게 망하는 일'이라는 뜻밖의 대답을 들려줬는데, 듣고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우리 같은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 스타트업이 생기지 않는 게 훨씬 좋은 사회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해결해야 할 문제가 적다는 방증이니까요. 폐지 수거 어르신을 지원하는 법과 제도가 완비되면 우리 존재 이유도 사라지겠죠. 빨리 그날이 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 장혜정
사진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