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마다 수도권 곳곳에서 계단 정복 활동을 벌이는 이들은 3년간 6만8,000곳의 접근성 정보를 수집했다. 봄비가 내리는 주말 아침, 이들과 함께 계단을 '뿌수러' 나섰다.
단순 앱 서비스에서 사회 활동으로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주말 아침. 비장한 마음으로 레인 부츠에 우비까지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이동 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을 만들어가는 플랫폼'. 주말마다 수도권 곳곳에서 계단 정복 활동을 벌이는 계단뿌셔클럽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계단뿌셔클럽의 정복 활동은 주말 오전 10~12시 수도권 곳곳에서 진행된다. 인스타그램(@staircrusher.club)을 통해 활동 일시와 장소가 미리 공지되고, 신청만 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10시 집결 20여 분 전부터 집결지인 혜화역 지하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SNS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됐다는 직장인 참가자,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많아 찾아온 대학생, 벌써 세 번째 대구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온 대학원생까지. 이들은 왜 비 내리는 토요일 아침, 굳이 '자발적으로' 모인 걸까.
매주 주말 오전, 계단을 ‘뿌수러’ 모이는 사람들. 인스타그램(@staircrusher.club)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신청하면 끝. 누구나 동참할 수 있다.
먼저 계단뿌셔클럽의 출발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IT 스타트업에서 동료로 만난 이대호·박수빈 공동대표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으로 만들 계획이 전혀 아니었다. '사이드 프로젝트' 정도로 가볍게 시작했다"고 밝혔다. 맛집에 갈 때마다 위치가 1층인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했던 휠체어 이용자 박수빈 씨. '앱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인데, 왜 이런 서비스는 없는 걸까?' 하는 답답함과 의문이 들었다고. 그렇게 동료 이대호 씨와 함께 지도 앱에 올라온 맛집 리뷰처럼 그 집의 계단 정보도 알 수 있게 해보자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처음에는 여느 플랫폼 서비스처럼 온라인 마케팅으로 접근하면 누군가 데이터를 모아주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 서비스를 만들고 보니 데이터를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렵더라고요. 궁여지책으로 '서비스 체험단 행사'를 열었습니다. 서비스를 새롭게 만들었으니 테스트해볼 분을 모신다고요. 그분들과 2시간 동안 접근성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하면서 우연히 직접 참여의 가치를 발견하게 됐어요. 정보 등록하는 과정에서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보람과 기쁨, 우정을 느낀다는 걸 발견한 거죠." 단순한 앱 서비스 개발로 출발했지만 사람들이 참여하는 '활동', 나아가 '사회운동' 성격으로 확장되는 과정. 어쩌면 계단뿌셔클럽은 처음부터 큰 포부를 갖고 출발한 '사업'보다는 앱이라는 점 하나를 찍음으로써 사람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이 아닐까.
게임 속 퀘스트 깨듯 계단 '뿌시기'
이날은 총 21명이 참가한 혜화역을 비롯해 선릉역과 봉천역까지 총 세 곳에서 60여 명이 동시에 정복 활동을 진행했다. 정복 활동은 참가 신청한 인원을 토대로 2인 1조로 팀을 구성한다. 필자는 계단뿌셔클럽 크루로 활동 중인 김규희 씨와 함께 L조로 배정되었다. 배정된 조별로 혜화역 인근으로 흩어져 2시간 동안 30~40곳의 계단 정보를 입력하는 미션인데, 이날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팀당 20여 곳만 배정받았다.
무심코 오르내리는 계단 하나가 누군가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함께 기록하는 접근성 정보는 모두를 위한 포용적 사회의 초석이 된다.
미션 내용은 이렇다. 주어진 상호의 가게를 찾아가 출입구 사진을 찍는다. 이어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유무, 계단은 몇 칸인지, 계단 높이는 엄지손가락 기준으로 그 이상인지 이하인지 등 접근성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차례로 앱에 입력해 최종 등록하면 미션 클리어다. 설명만 들으면 꽤 복잡해 보이지만, 앱을 통해 한 단계씩 선택지가 마련돼 있어 직접 확인한 정보대로 간단히 체크만 하면 된다. 실제로 한 곳당 1~2분이 채 걸리지 않아 입력을 완료할 수 있었다. 지도 속 가게를 찾아다니며 한 곳씩 미션을 클리어하다 보면 마치 게임 속 퀘스트를 하나씩 깨나가는 듯 쾌감이 느껴진다.
게임처럼 즐겁게, 퀘스트처럼 차근차근. 계단뿌셔클럽 앱으로 접근성 정보를 입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2분이다.
누구나 이동 약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 내준 숙제를 억지로 해야 하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기사나 책을 통해 읽어본 게 아니라 직접 보고 기록하는 경험. 평소 비장애인으로서 눈여겨보지 못한 출입구 형태나 계단 높이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동안 내 안에서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동 약자가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이렇게나 드물구나.' 점점 남의 일이 아니라 '나였다면 어땠을까'로 시선이 이동했다. 이 같은 경험은 오늘 처음 활동에 참여한 구서영 씨도 마찬가지였다. "전장연에서 하는 장애인 인권영화제에 참여하면서 계단뿌셔클럽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행동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오늘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접근성이 낮은 곳이 이렇게 많다는 걸 직접 보면서 더 실감하게 됐어요. 경사로가 많이 설치되고, 장애인도 이동하기 편한 식당과 카페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바람이 생겼습니다."
엄지와 검지를 펼친 제스처는 계단뿌셔클럽의 시그니처 포즈이다. 이는 정부가 규정한 적정 경사로 기울기인 1:12(높이:밑면 길이)를 형상화한 것으로, 휠체어 사용자들이 대체로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각도를 상징한다.
재활치료사로 일하며 휠체어 이용자의 병원 밖 생활을 지원하고 싶어 알아보던 중 계단뿌셔클럽을 접해 1년 전부터 크루로 활동 중인 조수아 씨는 "우리 모두 이동 약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노인이 될 것이고, 이는 언젠가 계단 이용이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다는 걸 의미해요. 남 일이 아니라 노년을 위해 투자한다는 의미에서 계단뿌셔클럽 활동에 동참하는 건 어떨까요?"
다양한 동기, 하나의 변화
이대호 대표는 계단뿌셔클럽을 운영하면서 "선의를 발휘할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참가자의 절반 정도는 계단 문제 해결을 바라온 사람들이에요. 자신이, 혹은 친구가, 혹은 미디어를 통해 본 누군가가 이동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연히 계단뿌셔클럽을 접하면서 스스로 문제 해결에 뛰어든 사람들이죠." 나머지 절반은 실로 다양한 동기로 모인다.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 나온 사람, 단순히 산책을 하고 싶거나 골목 탐방을 좋아하는 사람, 심지어 계단을 오르는 스포츠로 착각하고 오는 '다리가 튼튼한' 사람들까지. 계단뿌셔클럽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활동가형부터 실제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리 운동을 하고 싶었을 뿐인 사람까지 엮어내는 힘. 어떤 목적으로 왔든, 한번 계단 정복 활동을 하고 나면 뭔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이동권 혹은 접근성이 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다른 사람의 평안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나의 필요와 공공의 이익이 부합할 수 있는 활동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발견. 계단뿌셔클럽을 이끄는 두 대표 또한 이 활동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인 (위) 이대호 (아래) 박수빈
다정함으로 함께 문턱을 허물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어요. 사실, 계단뿌셔클럽을 처음 시작할 때 충분한 문제 해결력과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1년 정도 하고 마무리할 프로젝트로 생각했는데, 활동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 동료들을 만나면서 길이 보이더라고요.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마음에 드는 초대장을 받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계기만 있으면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신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_이대호 대표
"우정이 넘쳐 누구나 이동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꿔요. 이건 단순히 '접근성 정보'가 잘 갖춰진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기술을 잘 활용해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간 우정이 넘쳐 흐르는 세상이 되어 이동 약자와 그 친구들이 어디에서든 동료 시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막힘없이 더 많은 이동이 가능해질 테니까요.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이 자기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의 문제를 알고, 경험하고, 공감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기술을 활용해 뾰족하게 계단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정복 활동에 참여하는 거고요. 저희가 바라는 미래에 동의한다면 정복 활동에 참여해주세요!" _박수빈 대표
평범한 사람들이 협동해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해 보일지 모르는 계획이 어쩌면 가장 빠르고 정확한 해결책일지 모른다. "다정도 병"이라는 말은 적어도 계단뿌셔클럽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함께한다는 것, 자신의 이익을 넘어 어떤 다정함을 발휘하는 일. 계단을 '뿌수러' 모여든 이들의 다정함이 흐르고 흩어져 주변의 문턱을 허물며 옮아간다. 이들이 내내 ‘뿌수고’ 있는 것은 우리 안의 문턱 그 자체가 아닐까.
주말마다 수도권 곳곳에서 계단 정복 활동을 벌이는 이들은 3년간 6만8,000곳의 접근성 정보를 수집했다.
봄비가 내리는 주말 아침, 이들과 함께 계단을 '뿌수러' 나섰다.
단순 앱 서비스에서 사회 활동으로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주말 아침. 비장한 마음으로 레인 부츠에 우비까지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이동 약자와 그 친구들의 막힘없는 이동을 만들어가는 플랫폼'. 주말마다 수도권 곳곳에서 계단 정복 활동을 벌이는 계단뿌셔클럽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계단뿌셔클럽의 정복 활동은 주말 오전 10~12시 수도권 곳곳에서 진행된다. 인스타그램(@staircrusher.club)을 통해 활동 일시와 장소가 미리 공지되고, 신청만 하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10시 집결 20여 분 전부터 집결지인 혜화역 지하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였다. SNS를 통해 우연히 알게 됐다는 직장인 참가자, 장애인 이동권에 관심이 많아 찾아온 대학생, 벌써 세 번째 대구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올라온 대학원생까지. 이들은 왜 비 내리는 토요일 아침, 굳이 '자발적으로' 모인 걸까.
매주 주말 오전, 계단을 ‘뿌수러’ 모이는 사람들. 인스타그램(@staircrusher.club)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신청하면 끝. 누구나 동참할 수 있다.
먼저 계단뿌셔클럽의 출발부터 짚어볼 필요가 있다. IT 스타트업에서 동료로 만난 이대호·박수빈 공동대표는 "처음에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활동으로 만들 계획이 전혀 아니었다. '사이드 프로젝트' 정도로 가볍게 시작했다"고 밝혔다.
맛집에 갈 때마다 위치가 1층인지, 엘리베이터가 있는지 등을 확인해야 했던 휠체어 이용자 박수빈 씨. '앱으로 모든 걸 할 수 있는 시대인데, 왜 이런 서비스는 없는 걸까?' 하는 답답함과 의문이 들었다고. 그렇게 동료 이대호 씨와 함께 지도 앱에 올라온 맛집 리뷰처럼 그 집의 계단 정보도 알 수 있게 해보자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처음에는 여느 플랫폼 서비스처럼 온라인 마케팅으로 접근하면 누군가 데이터를 모아주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 서비스를 만들고 보니 데이터를 모으는 것 자체가 어렵더라고요. 궁여지책으로 '서비스 체험단 행사'를 열었습니다. 서비스를 새롭게 만들었으니 테스트해볼 분을 모신다고요. 그분들과 2시간 동안 접근성에 대한 정보 수집을 하면서 우연히 직접 참여의 가치를 발견하게 됐어요. 정보 등록하는 과정에서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보람과 기쁨, 우정을 느낀다는 걸 발견한 거죠."
단순한 앱 서비스 개발로 출발했지만 사람들이 참여하는 '활동', 나아가 '사회운동' 성격으로 확장되는 과정. 어쩌면 계단뿌셔클럽은 처음부터 큰 포부를 갖고 출발한 '사업'보다는 앱이라는 점 하나를 찍음으로써 사람들이 마음껏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판을 깔아준 것이 아닐까.
게임 속 퀘스트 깨듯 계단 '뿌시기'
이날은 총 21명이 참가한 혜화역을 비롯해 선릉역과 봉천역까지 총 세 곳에서 60여 명이 동시에 정복 활동을 진행했다.
정복 활동은 참가 신청한 인원을 토대로 2인 1조로 팀을 구성한다. 필자는 계단뿌셔클럽 크루로 활동 중인 김규희 씨와 함께 L조로 배정되었다. 배정된 조별로 혜화역 인근으로 흩어져 2시간 동안 30~40곳의 계단 정보를 입력하는 미션인데, 이날은 비가 내리는 바람에 팀당 20여 곳만 배정받았다.
무심코 오르내리는 계단 하나가 누군가에겐 넘을 수 없는 벽이다. 함께 기록하는 접근성 정보는 모두를 위한 포용적 사회의 초석이 된다.
미션 내용은 이렇다. 주어진 상호의 가게를 찾아가 출입구 사진을 찍는다. 이어 경사로와 엘리베이터 유무, 계단은 몇 칸인지, 계단 높이는 엄지손가락 기준으로 그 이상인지 이하인지 등 접근성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를 차례로 앱에 입력해 최종 등록하면 미션 클리어다.
설명만 들으면 꽤 복잡해 보이지만, 앱을 통해 한 단계씩 선택지가 마련돼 있어 직접 확인한 정보대로 간단히 체크만 하면 된다. 실제로 한 곳당 1~2분이 채 걸리지 않아 입력을 완료할 수 있었다. 지도 속 가게를 찾아다니며 한 곳씩 미션을 클리어하다 보면 마치 게임 속 퀘스트를 하나씩 깨나가는 듯 쾌감이 느껴진다.
게임처럼 즐겁게, 퀘스트처럼 차근차근. 계단뿌셔클럽 앱으로 접근성 정보를 입력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1~2분이다.
누구나 이동 약자가 될 수 있다
누군가 내준 숙제를 억지로 해야 하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기사나 책을 통해 읽어본 게 아니라 직접 보고 기록하는 경험. 평소 비장애인으로서 눈여겨보지 못한 출입구 형태나 계단 높이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는 동안 내 안에서 즉각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이동 약자가 편하게 갈 수 있는 곳이 이렇게나 드물구나.' 점점 남의 일이 아니라 '나였다면 어땠을까'로 시선이 이동했다. 이 같은 경험은 오늘 처음 활동에 참여한 구서영 씨도 마찬가지였다.
"전장연에서 하는 장애인 인권영화제에 참여하면서 계단뿌셔클럽을 알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행동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 오늘 활동에 참여하게 되었는데요. 접근성이 낮은 곳이 이렇게 많다는 걸 직접 보면서 더 실감하게 됐어요. 경사로가 많이 설치되고, 장애인도 이동하기 편한 식당과 카페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구체적인 바람이 생겼습니다."
엄지와 검지를 펼친 제스처는 계단뿌셔클럽의 시그니처 포즈이다. 이는 정부가 규정한 적정 경사로 기울기인 1:12(높이:밑면 길이)를 형상화한 것으로, 휠체어 사용자들이 대체로 수월하게 오를 수 있는 각도를 상징한다.
재활치료사로 일하며 휠체어 이용자의 병원 밖 생활을 지원하고 싶어 알아보던 중 계단뿌셔클럽을 접해 1년 전부터 크루로 활동 중인 조수아 씨는 "우리 모두 이동 약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가 살아 있는 한 노인이 될 것이고, 이는 언젠가 계단 이용이 어려워지는 순간이 온다는 걸 의미해요. 남 일이 아니라 노년을 위해 투자한다는 의미에서 계단뿌셔클럽 활동에 동참하는 건 어떨까요?"
다양한 동기, 하나의 변화
이대호 대표는 계단뿌셔클럽을 운영하면서 "선의를 발휘할 기회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고 전했다.
"참가자의 절반 정도는 계단 문제 해결을 바라온 사람들이에요. 자신이, 혹은 친구가, 혹은 미디어를 통해 본 누군가가 이동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연히 계단뿌셔클럽을 접하면서 스스로 문제 해결에 뛰어든 사람들이죠."
나머지 절반은 실로 다양한 동기로 모인다.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어 나온 사람, 단순히 산책을 하고 싶거나 골목 탐방을 좋아하는 사람, 심지어 계단을 오르는 스포츠로 착각하고 오는 '다리가 튼튼한' 사람들까지.
계단뿌셔클럽의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활동가형부터 실제로 계단을 오르내리며 다리 운동을 하고 싶었을 뿐인 사람까지 엮어내는 힘. 어떤 목적으로 왔든, 한번 계단 정복 활동을 하고 나면 뭔가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남 일이라고만 생각했던 이동권 혹은 접근성이 나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다른 사람의 평안이 보장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그리하여 나의 필요와 공공의 이익이 부합할 수 있는 활동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발견. 계단뿌셔클럽을 이끄는 두 대표 또한 이 활동을 통해 스스로 변화하고 있다.
계단뿌셔클럽 공동대표인 (위) 이대호 (아래) 박수빈
다정함으로 함께 문턱을 허물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어요. 사실, 계단뿌셔클럽을 처음 시작할 때 충분한 문제 해결력과 지속가능성을 가질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1년 정도 하고 마무리할 프로젝트로 생각했는데, 활동을 통해 새로운 친구들, 동료들을 만나면서 길이 보이더라고요. 세상 사람들이 다 자기 이익만 생각하는 것 같지만, 마음에 드는 초대장을 받지 못했을 뿐이라는 걸, 계기만 있으면 문제 해결에 동참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자신감과 책임감을 동시에 갖게 됩니다."
_이대호 대표
"우정이 넘쳐 누구나 이동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꿔요. 이건 단순히 '접근성 정보'가 잘 갖춰진 것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기술을 잘 활용해 접근성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간 우정이 넘쳐 흐르는 세상이 되어 이동 약자와 그 친구들이 어디에서든 동료 시민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막힘없이 더 많은 이동이 가능해질 테니까요. 그러려면 더 많은 사람이 자기와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의 문제를 알고, 경험하고, 공감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가 기술을 활용해 뾰족하게 계단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정복 활동에 참여하는 거고요. 저희가 바라는 미래에 동의한다면 정복 활동에 참여해주세요!"
_박수빈 대표
평범한 사람들이 협동해 함께 문제를 해결한다? 누군가에게는 무모해 보일지 모르는 계획이 어쩌면 가장 빠르고 정확한 해결책일지 모른다. "다정도 병"이라는 말은 적어도 계단뿌셔클럽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함께한다는 것, 자신의 이익을 넘어 어떤 다정함을 발휘하는 일. 계단을 '뿌수러' 모여든 이들의 다정함이 흐르고 흩어져 주변의 문턱을 허물며 옮아간다. 이들이 내내 ‘뿌수고’ 있는 것은 우리 안의 문턱 그 자체가 아닐까.
글 성영주
사진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