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체육회 소속 종목 중 최초로 '배리어프리'를 선언한 대한택견회. 그들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240년 전 조선 후기의 풍속화 '대쾌도' 속 장면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택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이미 조선 시대에는 있었던 것을 왜 지금은 못하는 걸까요?" 소박하지만 깊은 질문에서 시작된 변화를 들여다봤다.
지하철 장애인석처럼
지난 4월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을 앞두고 대한체육회 소속 종목 중 최초로 '배리어프리'를 선언한 대한택견회. 그 배경에는 오성문 회장의 오랜 고민이 있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전국체전이 끝나면 따로 장애인 대회를 개최하잖아요. 장애인 대회에는 비장애인들이 봉사도 하고 함께 참여하는데, 정작 비장애인 대회에는 왜 장애인들이 참여할 기회가 없을까 하는 의아함이 늘 있었죠. 관람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몸이 덜 불편한 분들은 봉사에 참여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어온 신념이었다.
오성문 대한택견회 회장
"지하철 장애인석을 생각해보세요. 꼭 장애인을 위해서만 비워놓는 게 아니라 언제든 필요할 때를 대비해 준비해두는 거잖아요.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상징적으로 해보자는 게 사무처 직원들과 함께 낸 아이디어였어요." 거창한 구호나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은 배려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오시든 안 오시든, 일단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경기장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고, 점자 안내서도 준비해 시각장애가 있는 분들도 함께 즐기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포용의 DNA
대한택견회가 이번 배리어프리 선언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조선 후기 풍속화 '대쾌도(大快圖)'다. 이 그림에는 어린 아이부터 노인, 기생, 스님, 양반, 엿장수, 관원, 술장수 등 택견 경기를 관람하는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장애인의 모습도 포함된다. 안치영 대한택견회 차장은 "대쾌도는 풍속화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조선 시대가 신분 사회였음에도 스포츠를 통해 신분과 세대를 초월하는 통합의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택견의 역사 속에서 이미 이런 포용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성근 사무처장은 "과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결련택견대회'가 있었어요. 물 사용권을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갈등할 때, 싸움 대신 택견 대회로 해결했죠"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비장애인만 한 것이 아니라 한날에 어린이 택견, 장애인 택견, 비장애인 택견이 3회전으로 이어져 열렸어요. 마을 축제로 만들어 갈등을 싸움이 아닌 스포츠로 해결한 거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조선 시대에는 이미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스포츠 축제를 펼친 것이다.
(왼쪽부터) 대한택견회 오성근 사무처장, 오성문 회장, 안치영 차장
모두가 함께하는 택견
대한택견회는 지난 4월에 열린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서 택견 대회장에 수어 안내 영상, 점자 카탈로그, 휠체어 관람석, 안내견 출입 허용 등을 준비했다. 아쉽게도 장애인 관람객은 오지 않았지만,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이 그 시설을 이용했다. 더욱 인상적인 점은, 참가한 선수들의 반응이었다. 안치영 차장은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우려가 있었어요. 기존에 참가하던 분들은 본인들이 누리던 공간이 좁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비장애 선수들이 굉장히 기뻐했어요. 우리 택견 경기장에 이런 시설이 도입된 것에 기뻐하고 뿌듯해했죠."
대한택견회는 지난 4월에 열린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서 '배리어프리'를 선언했다.
대한택견회에서 제작한 점자 카탈로그
택견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니, 오성근 사무국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2011년에 무예 및 무술 중 최초로 전 세계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중국의 우슈나 일본의 가라테, 검도 모두 제치고 우리가 처음으로 세계 첫 번째 무예로 지정된 거죠." 택견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백 년간 전승되면서 몸에 해로운 동작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좋은 것만 남은 거예요. 그게 바로 전통의 힘입니다. 새로운 운동은 아직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전통 무예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미 안전성이 입증된 셈이니까요." 특히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는 방식이라 자연스럽게 배려심이 생긴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1시간 동안 발차기를 하면 300번 정도 차거든요. 아프지 않게 300번을 차고 나면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자연스럽게 생기죠."
함께 가는 세상을 향해
오성문 회장은 이번 택견회의 선언이 다른 종목에도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원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으니 안 해도 되는 일처럼 여겨진 거죠. 그런데 우리가 먼저 시작하니 이제 '아, 이것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구나' 하고 인식이 바뀌는 것 같아요. 다른 종목도 이 소식을 들으면 ‘우리도 했어야 하는데’라며 따르지 않을까요." 현재 각 전수관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택견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복지관이나 장애인센터에 지도자를 파견해 발달장애인과 신체장애인에게 택견을 가르치는 것이다.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 지도자들을 파견해 숫자와 관계없이 5명이 됐든 3명이 됐든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오 회장이 전하는 메시지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앞으로도 편견 없는 운동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중증장애가 있는 분들도 불편함 없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모든 분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참여 가능한 분들께는 직접 택견을 배우고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그는 이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대단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원래 당연한 일이죠. 편견을 허무는 일에 앞장서는 체육단체가 되고 싶습니다.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드는 택견, 그런 단체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택견회 사무실을 나서며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240년 전 조선의 택견 경기장에서 이미 실현된 포용과 배려의 정신을 현재에 되살리려는 이들의 노력이 체육계 전반에,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편견이 없어지면 세상 사는 것도 편안해지고, 사람끼리 관계를 맺을 때도 좋은 점이 있죠. 그것이 바로 세상 사는 방법 아닐까요." 오 회장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다.
대한체육회 소속 종목 중 최초로 '배리어프리'를 선언한 대한택견회.
그들이 근거로 제시한 것은 240년 전 조선 후기의 풍속화 '대쾌도' 속 장면이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택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 "이미 조선 시대에는 있었던 것을 왜 지금은 못하는 걸까요?" 소박하지만 깊은 질문에서 시작된 변화를 들여다봤다.
지하철 장애인석처럼
지난 4월 전국생활체육대축전을 앞두고 대한체육회 소속 종목 중 최초로 '배리어프리'를 선언한 대한택견회. 그 배경에는 오성문 회장의 오랜 고민이 있었다.
"평소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전국체전이 끝나면 따로 장애인 대회를 개최하잖아요. 장애인 대회에는 비장애인들이 봉사도 하고 함께 참여하는데, 정작 비장애인 대회에는 왜 장애인들이 참여할 기회가 없을까 하는 의아함이 늘 있었죠. 관람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고, 몸이 덜 불편한 분들은 봉사에 참여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그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오랜 시간 마음속에 품어온 신념이었다.
오성문 대한택견회 회장
"지하철 장애인석을 생각해보세요. 꼭 장애인을 위해서만 비워놓는 게 아니라 언제든 필요할 때를 대비해 준비해두는 거잖아요.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상징적으로 해보자는 게 사무처 직원들과 함께 낸 아이디어였어요."
거창한 구호나 복잡한 이론이 아니라 일상에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은 배려에서 출발한 아이디어였다.
"실제로 오시든 안 오시든, 일단 휠체어가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놓고, 경기장 가까이에서 관람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하고, 점자 안내서도 준비해 시각장애가 있는 분들도 함께 즐기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조선 시대부터 이어진 포용의 DNA
대한택견회가 이번 배리어프리 선언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조선 후기 풍속화 '대쾌도(大快圖)'다. 이 그림에는 어린 아이부터 노인, 기생, 스님, 양반, 엿장수, 관원, 술장수 등 택견 경기를 관람하는 다양한 계층과 세대의 사람들이 묘사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장애인의 모습도 포함된다.
안치영 대한택견회 차장은 "대쾌도는 풍속화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등장하는 그림으로, 조선 시대가 신분 사회였음에도 스포츠를 통해 신분과 세대를 초월하는 통합의 모습을 보여준다"라고 설명했다.
조선 시대 화가 신윤복의 '대쾌도' © 국립중앙박물관
더욱 흥미로운 점은, 택견의 역사 속에서 이미 이런 포용성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오성근 사무처장은 "과거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결련택견대회'가 있었어요. 물 사용권을 두고 윗마을과 아랫마을이 갈등할 때, 싸움 대신 택견 대회로 해결했죠"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비장애인만 한 것이 아니라 한날에 어린이 택견, 장애인 택견, 비장애인 택견이 3회전으로 이어져 열렸어요. 마을 축제로 만들어 갈등을 싸움이 아닌 스포츠로 해결한 거죠."
이야기를 듣다 보니 가슴이 뭉클해진다. 조선 시대에는 이미 모든 사람이 어우러져 스포츠 축제를 펼친 것이다.
(왼쪽부터) 대한택견회 오성근 사무처장, 오성문 회장, 안치영 차장
모두가 함께하는 택견
대한택견회는 지난 4월에 열린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서 택견 대회장에 수어 안내 영상, 점자 카탈로그, 휠체어 관람석, 안내견 출입 허용 등을 준비했다. 아쉽게도 장애인 관람객은 오지 않았지만, 어린이들과 노약자들이 그 시설을 이용했다.
더욱 인상적인 점은, 참가한 선수들의 반응이었다. 안치영 차장은 웃으며 말했다. "처음에는 우려가 있었어요. 기존에 참가하던 분들은 본인들이 누리던 공간이 좁아질 수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비장애 선수들이 굉장히 기뻐했어요. 우리 택견 경기장에 이런 시설이 도입된 것에 기뻐하고 뿌듯해했죠."
대한택견회는 지난 4월에 열린 전국생활체육대축전에서 '배리어프리'를 선언했다.
대한택견회에서 제작한 점자 카탈로그
택견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해달라고 부탁하니, 오성근 사무국장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2011년에 무예 및 무술 중 최초로 전 세계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어요. 중국의 우슈나 일본의 가라테, 검도 모두 제치고 우리가 처음으로 세계 첫 번째 무예로 지정된 거죠."
택견의 가장 큰 특징은 상대를 다치게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백 년간 전승되면서 몸에 해로운 동작은 자연스럽게 사라지고, 좋은 것만 남은 거예요. 그게 바로 전통의 힘입니다. 새로운 운동은 아직 부작용이 검증되지 않았지만, 전통 무예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이미 안전성이 입증된 셈이니까요."
특히 상대를 밀어 넘어뜨리는 방식이라 자연스럽게 배려심이 생긴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1시간 동안 발차기를 하면 300번 정도 차거든요. 아프지 않게 300번을 차고 나면 상대에 대한 배려심이 자연스럽게 생기죠."
함께 가는 세상을 향해
오성문 회장은 이번 택견회의 선언이 다른 종목에도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원래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인데, 아무도 하지 않으니 안 해도 되는 일처럼 여겨진 거죠. 그런데 우리가 먼저 시작하니 이제 '아, 이것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구나' 하고 인식이 바뀌는 것 같아요. 다른 종목도 이 소식을 들으면 ‘우리도 했어야 하는데’라며 따르지 않을까요."
현재 각 전수관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택견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복지관이나 장애인센터에 지도자를 파견해 발달장애인과 신체장애인에게 택견을 가르치는 것이다. "요청하는 곳이 있으면 언제든 지도자들을 파견해 숫자와 관계없이 5명이 됐든 3명이 됐든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오 회장이 전하는 메시지에서 진심이 묻어났다.
"앞으로도 편견 없는 운동을 만들어가겠습니다. 중증장애가 있는 분들도 불편함 없이 경기를 관람할 수 있도록 환경을 개선하고, 모든 분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나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참여 가능한 분들께는 직접 택견을 배우고 선수로 활동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그는 이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대단해서 하는 게 아니에요. 원래 당연한 일이죠. 편견을 허무는 일에 앞장서는 체육단체가 되고 싶습니다. 함께 가는 세상을 만드는 택견, 그런 단체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택견회 사무실을 나서며 가슴 한편이 따뜻해졌다. 240년 전 조선의 택견 경기장에서 이미 실현된 포용과 배려의 정신을 현재에 되살리려는 이들의 노력이 체육계 전반에, 나아가 우리 사회 전체에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편견이 없어지면 세상 사는 것도 편안해지고, 사람끼리 관계를 맺을 때도 좋은 점이 있죠. 그것이 바로 세상 사는 방법 아닐까요."
오 회장의 마지막 말이 오래도록 머릿속을 맴돈다.
글 유명은
사진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