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를 위한 길을 만드는 ‘무의’

2026-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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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은 모두의 일상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그 일상이 같은 무게로 주어지지 않는다.
오르내리는 계단, 가게 앞 작은 단차, 복잡한 환승 구조마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턱’이 된다.
사단법인 무의는 그 ‘턱’을 없애는 일을 한다.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교통 약자에게 망설임 없이 손을 내밀고, 나아가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며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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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쪽부터) 사단법인 무의를 이끄는 홍윤희 이사장과 무의가 만들어온 수많은 작업물




보이지 않던 턱을 말하다

무의는 장애가 무의미해지는 사회를 위한 연대에서 시작되었다. 협동조합으로 출발해 2024년 사단법인으로 전환하면서 '턱 없는 세상'을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무의가 허물고자 하는 턱은 세 가지다. 물리적 턱, 심리적 턱, 인식의 턱. 홍윤희 이사장은 그중 물리적 턱이 가장 높다고 말한다. 물리적 턱이 낮아져야 나머지도 따라서 낮아질 수 있다. 휠체어 이용자인 딸과 함께 부딪혀온 현실에서 나온 말이다.
"2011년 고속터미널역에서 휠체어 리프트가 고장 났어요. 언제 고칠지 안내가 없어 전화를 했더니 '어디 계세요? 위층이면 3호선·9호선에 연락하시고, 아래층이면 7호선에 연락하세요'라는 말을 들었죠."
그러한 경험을 SNS에 올리자 이튿날 국토교통부에서 해명 자료를 내놓았다. 문제를 알리면 변화가 생기고, 그 변화는 누군가 나서야 가능하다는 것. 그 깨달음이 지금의 무의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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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없는 세상’을 향한 첫걸음

물리적 턱을 낮추기 위한 무의의 활동은 지하철역, 동네 골목 등 다양한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모두의 지하철'과 '모두의 1층'이 그것이다.
모두의 지하철은 교통 약자를 위한 환승 안내 체계를 바꾸는 프로젝트다. 환승 구간마다 '청록색 B' 표지를 설치해 엘리베이터는 물론 장애인 화장실, 수유실, 전동휠체어 충전기 위치까지 함께 안내한다. 휠체어 이용자뿐 아니라 유아차, 어르신 등 교통 약자 누구나 표지를 따라가면 원활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모두의 1층은 동네 상점의 문턱을 낮추는 사업이다. 경사로 설치를 지원하는 지자체가 전국의 20%가 채 안 되는 현실에서, 단순히 경사로를 놓는 데 그치지 않는다. 지역 장애인 단체를 교육해 각 지역이 스스로 조례를 만들고 지원을 이어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올해는 서울 외 8개 지역에서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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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배리어프리

홍 이사장이 말하는 배리어프리는 장애인만을 위한 개념이 아니다. 국내 교통 약자는 전체 인구의 30%다. 65세 이상 어르신, 유아차를 끄는 보호자, 임산부까지 포함한 숫자로, 점점 늘어나고 있다. 반면 등록 장애인은 전체 인구의 5%, 그중 휠체어 이용자는 그보다 훨씬 적다. 그래서 무의는 처음 지하철 지도를 만들 때부터 이름을 '휠체어 지도'가 아닌 '교통약자 환승지도'로 붙였다. 특정 누군가가 아닌, 이동에 어려움을 겪는 모두를 위한 환경을 만들겠다는 의지였다.
그는 가능한 한 '장애'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장애라고 말하는 순간 그 사람이 도드라지고, 도드라지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는 당사자가 많다는 것을 딸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최근 딸이 개명을 했어요. 이름이 지민이었는데, 학교에서 지민이가 여럿이면 보통 '지민 1', '지민 2'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휠체어 탄 지민이'로 불렸다고 하더군요. 장애가 있는 사람은 이름 대신 장애로 불리는 거죠."
지원이 필요할 때는 말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장애가 있는지 없는지 본인도 잊을 수 있는 분위기. 모두가 자연스럽게 섞이는 환경, 그것이 무의가 지향하는 배리어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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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무의가 주최하는 ‘키움런 2026’ 기념 티셔츠. 도도새 캐릭터는 김선우 작가와 협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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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가 바라는 세상

무의의 활동은 이동의 불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오는 4월 18일 서울 여의도에서 사단법인 무의가 주최하는 배리어프리 마라톤 '키움런 2026'이 열린다. 휠체어, 유아차, 시각·청각장애인 등 누구나 함께 뛰는 5km·10km 코스로, 서강대교 구간을 달린다. 약 5,000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행사지만, 장애인을 위한 별도 행사가 아닌 함께 달리는 것 자체가 콘셉트다. 별도의 가이드러너 매칭이나 참가비 차등 없이 누구나 같은 조건으로 참가하되, 현장 편의시설을 최대한 갖추고 오르막·내리막 구간에는 물리치료사를 배치해 휠체어 이용자를 지원한다.
무의가 어떻게 기억되길 바라느냐는 질문에 홍 이사장은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 접근권과 이동권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만드는 곳. 법으로, 캠페인으로, 정책 제안으로 각자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무의는 그 모든 것을 조금씩 아우르며 함께 나아가고 있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건 제 딸이 10년 전보다 더 많은 공간에 들어가고, 더 수월하게 이동하는 것입니다."
장애 당사자뿐 아니라 더 많은 교통 약자가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도 동네 헬스장에 가고, 러닝 클럽에 나가고, 수영장에 다닐 수 있는 세상. 그 세상을 위해 무의는 오늘도 경사로 하나, 안내 표지 하나처럼 사소해 보이는 것에 집중하며 묵묵히 턱을 낮추고 있다. 






 박지인
사진 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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