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곳에서 희망을 찾고 싶었다. 황해도 연백군과 휴전선을 마주한 교동도에서 실향민의 아픔을 나누며, 모두를 위한 포용 관광의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화개산 전망대
시절이 하도 수상해서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럼에도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고 희망 하나쯤은 품어보려 교동도로 향했다. 해맞이 명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새해를 맞는 여행은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지만, 휠체어를 타는 난 조금 부담스럽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장소에는 신체적으로 취약한 관광 약자에게는 안전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맞이 여행은 하루나 이틀 정도 늦게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새해 마중 여행지로 강화도 최전방에 위치한 교동도로 향했다. 교동도는 민통선 여행지라 신분 확인이 필수지만, 요즘은 여행객의 발길이 급격히 늘어 출입 절차가 다소 간소해졌다. 한강을 건너 황해도 연백군과 휴전선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는 섬 교동도.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연백 지역 실향민들이 고향과 가까운 교동도에 터를 잡고 통일만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민간인 통제 구역이라는 점 때문에 외부와 오랜 시간 단절돼 1960년대 풍경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 교동도가 예능 프로그램 방송을 타면서 골목 여행지로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화개산을 개간해 화개정원과 화개전망대가 교동도 핫플 여행지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교동면 고구리에 있는 화개산은 해발 259m로 낮은 편이지만, 고려 말 문인 ‘이색’은 이곳을 전국 8대 명산 중 하나로 꼽았다. 화개산 주변에는 대룡시장, 고구저수지, 연산군 유배지 등 교동도의 주요 관광지가 밀집해 있다. 산 정상에서는 황해도 연백평야, 예성강 하구, 송악산도 볼 수 있다. 새로운 여행지답게 장애인 주차장과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휠체어를 탄 관광 약자도 해넘이와 해맞이 여행지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화개산 전망대로 올라가려면 모노레일을 타거나 화개정원으로 걸어 올라가면 된다. 모노레일 승강장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 외관과 내부 모두 말끔하다. 2층 모노레일 승강장에서 표를 끊으며 물으니 휠체어 좌석은 따로 없고 모노레일 좌석에 옮겨 앉아야 탑승이 가능하다고 했다. 휠체어는 장애인의 다리 역할을 하는 보조 기기다. 다리를 떼어놓고 모노레일 좌석에 옮겨 앉아 전망대까지 올라간들 움직이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포기하려는데, 관계자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구저수지와 그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
자동차를 타고 화개산 전망대까지 올라가는데,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관계 차량의 유도를 받아 정상에 올라서니 구름은 저만치 발아래로 천천히 흐르고 찬 기운이 물씬하다. 전망대에서 본 풍경은 바람도 멈춘 듯 고요하지만, 찬 바람에 코끝이 시리다. 화개산 정상은 하늘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져 심장이 쫄깃했다. 이 높은 산에 길을 내고 전망대를 만들어 근사한 경관을 직관할 수 있다니, 인간의 기술력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화개산 전망대는 강화도의 상징인 저어새의 긴 부리와 눈을 형상으로 만들었다. 1층 야외 테라스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걸어 올라온 사람들이 잠시 쉬기 좋다. 테라스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북한 땅을 조망하며 막간을 이용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스카이워크로 갔다. 바닥을 강화유리로 만든 스카이워크는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여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난간도 온통 강화유리라 교동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휴전선 넘어 연백평야까지 훤히 보인다. 북한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예성강과 한강은 사이좋게 만나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데, 경계를 긋는 건 오직 남북한 군사분계선뿐이다. 북한과 가장 짧은 거리는 2.3km 정도로, 수영해서 건널 수 있는 거리다. 한강 하구는 분단 이후 인간의 간섭이 없어 자연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래 둔덕이 지속적으로 쌓인 곳은 수심이 낮아져 군사분계선만 없다면 남북한 사람 모두 수영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한반도는 언제쯤 하나 되어 살아갈 수 있을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실향민의 심정은 어쩌면 휠체어 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휠체어를 타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접근성이 떨어져 속상한 적이 많은데, 이는 여행을 할 때도 수시로 느끼는 감정이다. 근사한 여행지를 코앞에 두고도 턱이나 계단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 천지라 동변상련이란 생각이 든다. 화개산 모노레일만 해도 그렇다. 휠체어 사용인이나 고령인, 유아차 탄 아이와 가족 등을 고려하지 않은 관광시설의 접근성 때문에 소외감을 넘어 원망의 마음까지 들 때가 종종 있다. 지금껏 모두를 위한 포용 관광 활동을 해왔지만, 여전히 방해물이 많아 안타깝다.
대룡시장 골목에 그려진 벽화
대룡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룡시장은 새 단장을 마쳐 휠체어 탄 여행객도 접근 가능한 곳이 많아졌다. 상가 문턱은 낮추고 서비스 질은 높인 것. 1960년대 드라마 세트장 같은 대룡시장은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낮은 건물들도 마치 시대극의 한 장면 같다. 먼저 교동이발관을 찾았다. 교동이발관은 KBS 1TV <사랑의 가족> 무장애 여행 촬영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곳이라 이발 명인 할아버지에게 인사차 들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몇 년 전 영원한 안식처로 이사하셨다고 한다. 한평생 대룡시장에서 이발사로 살면서 이제나저제나 고향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교동도를 떠나지 못한 할아버지. 교동이발관은 문을 닫은 채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여행객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인 셈.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여행이 시작돼 안식처를 향해 간다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삶은 여행이기에 다시 발길을 옮긴다.
대룡시장 내 곳곳에는 먹거리가 풍성하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시장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거부할 수 없는 시장의 맛집으로 자석처럼 끌려간다. 방앗간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좌판에 펼쳐놓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백설기, 콩떡, 강아지떡까지 떡집 풍경이 정겹다. 강아지떡은 개떡과는 다른 맛으로, 일제강점기 때 북한 곡창지대 연백 주민들이 만들어 먹던 이북식 떡이다. 당시 일본은 연백평야에서 생산된 쌀과 곡물을 수탈해 군량미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들이 즐겨 먹던 인절미와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마을 주민들은 일본군을 속이기 위해 인절미에 팥을 넣고 콩고물을 잔뜩 묻혀 갓 태어난 강아지 모양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맛이 좋아 대룡시장의 인기 먹거리다. 대룡시장의 농산물은 교동섬에서 수확해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한국인은 뭐니 뭐니 해도 밥심이다. 상대의 안부를 전할 때도 “식사하셨어요?”, “다음에 밥 한번 먹죠!”라고 말하는 민족이기에 밥은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 개화기 때 서양인들은 조선 사람들의 밥그릇을 보고 너무 커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밥그릇은 지금의 면기처럼 큰 그릇이라 저걸 어떻게 다 먹나 싶어 조선인을 보고 대식가라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요즘은 탄수화물 과다 섭취라며 밥양을 줄여 쌀 소비가 급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5,000년 동안 밥을 먹고 살아온 유전자가 진화해온 것처럼 K-푸드 열풍도 우리 땅에서 나온 농산물로 만든 음식이기에 가능하다.
대룡시장 내 다방에서 주문한 쌍화차
강아지떡의 주재료인 교동섬 쌀은 밥맛 좋기로 소문나서 여행객들도 사갈 정도다. 강아지떡을 먹으며 따뜻한 차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다방으로 향했다. 대룡시장에는 다방이 몇 곳 있다. 오래전부터 영업해온 곳과 새로 생긴 다방 몇 곳이다. 오래된 다방은 문턱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없어 새로 생긴 다방에 자리를 잡았다. 생강차, 대추차, 쌍화차, 커피까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해 추억을 소환하기 좋은 곳이다. 쌍화차를 주문한 뒤 테이블을 잡았다. 곧이어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가 나왔다. 따끈한 쌍화차는 추운 날 여행하느라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기에 그만이다. 레트로 여행지에서 빠지면 섭섭한 추억의 다방. 옛 다방은 동네 사랑방처럼 집집마다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역할도 했다. 다방에 앉아 있으니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점검하는 시기다. 나를 다그치지 않고 몸이 주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마음이 전하는 말도 대면해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인생길이기에 한편으론 두렵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이정표를 만들어가며 물리적 방해물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편안한 문화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운명처럼 달려들었다. 뒤따라오는 이들이 먼저 낸 발자국 따라 길을 잃지 않고 더 확장하고 반질반질한 길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걸어온 길. 무장애 여행은 보편적이고 평등해야 하니까.
도시의 소음을 잊게 하는 교동도에서 보낸 선물 같은 시간이 옅어진다. 하루 끝에 걸린 저녁 해가 서해바다에 잠길 때 하늘엔 주홍빛 조명이 켜진다. 교동도 여행은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감성 창고이자 정서적 연금이다. 새로운 해를 마중하는 가슴이 뜨겁게 차오른다.
여행 정보
가는 길
‘교동도 대룡시장’으로 내비게이션 검색
접근 가능한 식당
대룡시장 내 다수, 화개산 모노레일 승강장 내 다수
접근 가능한 화장실
화개산 모노레일 승강장 1층, 대룡시장 주차장
글・사진 전윤선
PROFILE
전윤선 휠체어를 타고 제주 올레길 완주를 비롯해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여행담을 나누며 무장애 관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가 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곳에서 희망을 찾고 싶었다.
황해도 연백군과 휴전선을 마주한 교동도에서 실향민의 아픔을 나누며, 모두를 위한 포용 관광의 길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화개산 전망대
시절이 하도 수상해서 무기력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그럼에도 새로운 태양은 떠오르고 희망 하나쯤은 품어보려 교동도로 향했다. 해맞이 명소에서 사람들과 함께 새해를 맞는 여행은 자연스럽고 즐거운 일이지만, 휠체어를 타는 난 조금 부담스럽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장소에는 신체적으로 취약한 관광 약자에게는 안전사고가 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해맞이 여행은 하루나 이틀 정도 늦게 가는 전략이 필요하다.
새해 마중 여행지로 강화도 최전방에 위치한 교동도로 향했다. 교동도는 민통선 여행지라 신분 확인이 필수지만, 요즘은 여행객의 발길이 급격히 늘어 출입 절차가 다소 간소해졌다. 한강을 건너 황해도 연백군과 휴전선을 경계로 마주하고 있는 섬 교동도. 한국전쟁 이후 황해도 연백 지역 실향민들이 고향과 가까운 교동도에 터를 잡고 통일만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과 민간인 통제 구역이라는 점 때문에 외부와 오랜 시간 단절돼 1960년대 풍경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그런 교동도가 예능 프로그램 방송을 타면서 골목 여행지로 유명해졌다. 최근에는 화개산을 개간해 화개정원과 화개전망대가 교동도 핫플 여행지로 새롭게 자리매김했다.
교동면 고구리에 있는 화개산은 해발 259m로 낮은 편이지만, 고려 말 문인 ‘이색’은 이곳을 전국 8대 명산 중 하나로 꼽았다. 화개산 주변에는 대룡시장, 고구저수지, 연산군 유배지 등 교동도의 주요 관광지가 밀집해 있다. 산 정상에서는 황해도 연백평야, 예성강 하구, 송악산도 볼 수 있다. 새로운 여행지답게 장애인 주차장과 장애인 화장실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휠체어를 탄 관광 약자도 해넘이와 해맞이 여행지로 안성맞춤인 곳이다. 화개산 전망대로 올라가려면 모노레일을 타거나 화개정원으로 걸어 올라가면 된다. 모노레일 승강장은 새로 지은 건물이라 외관과 내부 모두 말끔하다. 2층 모노레일 승강장에서 표를 끊으며 물으니 휠체어 좌석은 따로 없고 모노레일 좌석에 옮겨 앉아야 탑승이 가능하다고 했다. 휠체어는 장애인의 다리 역할을 하는 보조 기기다. 다리를 떼어놓고 모노레일 좌석에 옮겨 앉아 전망대까지 올라간들 움직이지 못하니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포기하려는데, 관계자가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고구저수지와 그 너머로 보이는 북한 땅
자동차를 타고 화개산 전망대까지 올라가는데, 길이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관계 차량의 유도를 받아 정상에 올라서니 구름은 저만치 발아래로 천천히 흐르고 찬 기운이 물씬하다. 전망대에서 본 풍경은 바람도 멈춘 듯 고요하지만, 찬 바람에 코끝이 시리다. 화개산 정상은 하늘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져 심장이 쫄깃했다. 이 높은 산에 길을 내고 전망대를 만들어 근사한 경관을 직관할 수 있다니, 인간의 기술력이 새삼 놀랍기만 하다. 화개산 전망대는 강화도의 상징인 저어새의 긴 부리와 눈을 형상으로 만들었다. 1층 야외 테라스에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어 걸어 올라온 사람들이 잠시 쉬기 좋다. 테라스 의자에 편안하게 앉아 북한 땅을 조망하며 막간을 이용해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 스카이워크로 갔다. 바닥을 강화유리로 만든 스카이워크는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여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였다. 난간도 온통 강화유리라 교동도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휴전선 넘어 연백평야까지 훤히 보인다. 북한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있다니,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예성강과 한강은 사이좋게 만나 서해로 흘러 들어가는데, 경계를 긋는 건 오직 남북한 군사분계선뿐이다. 북한과 가장 짧은 거리는 2.3km 정도로, 수영해서 건널 수 있는 거리다. 한강 하구는 분단 이후 인간의 간섭이 없어 자연 상태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모래 둔덕이 지속적으로 쌓인 곳은 수심이 낮아져 군사분계선만 없다면 남북한 사람 모두 수영해서 건널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지구촌 마지막 남은 분단국가 한반도는 언제쯤 하나 되어 살아갈 수 있을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고향을 지척에 두고도 갈 수 없는 실향민의 심정은 어쩌면 휠체어 탄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휠체어를 타고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접근성이 떨어져 속상한 적이 많은데, 이는 여행을 할 때도 수시로 느끼는 감정이다. 근사한 여행지를 코앞에 두고도 턱이나 계단 때문에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 천지라 동변상련이란 생각이 든다. 화개산 모노레일만 해도 그렇다. 휠체어 사용인이나 고령인, 유아차 탄 아이와 가족 등을 고려하지 않은 관광시설의 접근성 때문에 소외감을 넘어 원망의 마음까지 들 때가 종종 있다. 지금껏 모두를 위한 포용 관광 활동을 해왔지만, 여전히 방해물이 많아 안타깝다.
대룡시장 골목에 그려진 벽화
대룡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대룡시장은 새 단장을 마쳐 휠체어 탄 여행객도 접근 가능한 곳이 많아졌다. 상가 문턱은 낮추고 서비스 질은 높인 것. 1960년대 드라마 세트장 같은 대룡시장은 시간도 천천히 흐른다. 낮은 건물들도 마치 시대극의 한 장면 같다. 먼저 교동이발관을 찾았다. 교동이발관은 KBS 1TV <사랑의 가족> 무장애 여행 촬영을 하면서 인연을 맺은 곳이라 이발 명인 할아버지에게 인사차 들렀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몇 년 전 영원한 안식처로 이사하셨다고 한다. 한평생 대룡시장에서 이발사로 살면서 이제나저제나 고향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며 교동도를 떠나지 못한 할아버지. 교동이발관은 문을 닫은 채 할아버지를 기억하는 여행객이 종종 찾아온다고 한다. 나도 그중 한 명인 셈.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여행이 시작돼 안식처를 향해 간다지만, 아쉬운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그럼에도 삶은 여행이기에 다시 발길을 옮긴다.
대룡시장 내 곳곳에는 먹거리가 풍성하다.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하고 시장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거부할 수 없는 시장의 맛집으로 자석처럼 끌려간다. 방앗간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좌판에 펼쳐놓기 무섭게 팔려나간다. 백설기, 콩떡, 강아지떡까지 떡집 풍경이 정겹다. 강아지떡은 개떡과는 다른 맛으로, 일제강점기 때 북한 곡창지대 연백 주민들이 만들어 먹던 이북식 떡이다. 당시 일본은 연백평야에서 생산된 쌀과 곡물을 수탈해 군량미로 사용하기 위해 주민들이 즐겨 먹던 인절미와 술을 만들지 못하게 했다. 마을 주민들은 일본군을 속이기 위해 인절미에 팥을 넣고 콩고물을 잔뜩 묻혀 갓 태어난 강아지 모양 떡을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을 만큼 맛이 좋아 대룡시장의 인기 먹거리다. 대룡시장의 농산물은 교동섬에서 수확해 최고 품질을 자랑한다.
한국인은 뭐니 뭐니 해도 밥심이다. 상대의 안부를 전할 때도 “식사하셨어요?”, “다음에 밥 한번 먹죠!”라고 말하는 민족이기에 밥은 한국인의 정체성이나 다름없다. 개화기 때 서양인들은 조선 사람들의 밥그릇을 보고 너무 커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당시 밥그릇은 지금의 면기처럼 큰 그릇이라 저걸 어떻게 다 먹나 싶어 조선인을 보고 대식가라며 놀라워했다고 한다. 요즘은 탄수화물 과다 섭취라며 밥양을 줄여 쌀 소비가 급감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몸은 5,000년 동안 밥을 먹고 살아온 유전자가 진화해온 것처럼 K-푸드 열풍도 우리 땅에서 나온 농산물로 만든 음식이기에 가능하다.
대룡시장 내 다방에서 주문한 쌍화차
강아지떡의 주재료인 교동섬 쌀은 밥맛 좋기로 소문나서 여행객들도 사갈 정도다. 강아지떡을 먹으며 따뜻한 차로 언 몸을 녹이기 위해 다방으로 향했다. 대룡시장에는 다방이 몇 곳 있다. 오래전부터 영업해온 곳과 새로 생긴 다방 몇 곳이다. 오래된 다방은 문턱 때문에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없어 새로 생긴 다방에 자리를 잡았다. 생강차, 대추차, 쌍화차, 커피까지 과거와 현대가 공존해 추억을 소환하기 좋은 곳이다. 쌍화차를 주문한 뒤 테이블을 잡았다. 곧이어 달걀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가 나왔다. 따끈한 쌍화차는 추운 날 여행하느라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기에 그만이다. 레트로 여행지에서 빠지면 섭섭한 추억의 다방. 옛 다방은 동네 사랑방처럼 집집마다 소식을 전하는 특파원 역할도 했다. 다방에 앉아 있으니 지난 시간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점검하는 시기다. 나를 다그치지 않고 몸이 주는 신호에 귀 기울이며 마음이 전하는 말도 대면해본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인생길이기에 한편으론 두렵지만, 나만의 방법으로 이정표를 만들어가며 물리적 방해물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아름답고 편안한 문화와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이 운명처럼 달려들었다. 뒤따라오는 이들이 먼저 낸 발자국 따라 길을 잃지 않고 더 확장하고 반질반질한 길이 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무장한 채 걸어온 길. 무장애 여행은 보편적이고 평등해야 하니까.
도시의 소음을 잊게 하는 교동도에서 보낸 선물 같은 시간이 옅어진다. 하루 끝에 걸린 저녁 해가 서해바다에 잠길 때 하늘엔 주홍빛 조명이 켜진다. 교동도 여행은 오늘과 내일을 이어주는 감성 창고이자 정서적 연금이다. 새로운 해를 마중하는 가슴이 뜨겁게 차오른다.
여행 정보
글・사진 전윤선
PROFILE
전윤선
휠체어를 타고 제주 올레길 완주를 비롯해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여행담을 나누며 무장애 관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