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윤선 작가]봄은 지룽에 머물고 있었다



한겨울 추위를 피해 찾은 대만 최북단에 위치한 항구도시 지룽.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이곳에서 19세기 역사와 레트로한 저우치, 그리고 따스한 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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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북부에 위치한 항구도시 ‘지룽’




입춘이 지났지만, 동장군의 기세는 여전하다. 봄을 찾아 하늘길을 한 시간 반 날아 대만에 도착했다. 대만 수도인 타이페이에서 기차를 타고 다시 한 시간 남짓 더 가면 항구도시 지룽이다. 대만 최북단에 위치한 지룽은 산과 바다, 항구를 보유한 매력적인 도시이자 국제 크루즈 정박지이기도 하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데다 바다를 품은 항만 지형 등 아름다운 해안이 예술 작품 같은 풍경을 자랑한다. 광활한 산간 도시의 푸른 자연경관과 옛 추억의 정취가 가득해 레트로 여행지로 사랑받는 곳이다. 


지룽은 대만에서 가장 먼저 번성한 도시다. 19세기 전 세계와 무역을 하며 풍부하고 다양한 역사적 발자취를 남기기도 했다. 오늘날 지룽은 대만에서 문화 자산이 가장 풍성한 도시로, 골목 곳곳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최적의 여행 환경이 갖춰진 지룽에는 여행 서비스 센터와 안내소 등이 곳곳에 있어 지룽을 방문하는 여행객의 편의를 돕는다. 대만의 다양한 도시 중 꼭 한번 가볼 만한 곳인 만큼 대만 여행에서 빠지면 섭섭하다. 


지룽은 역사와 문화가 풍부한 항구도시다. 기이한 지형과 해안선을 따라 펼쳐진 예류해양공원은 대만의 문화를 느낄 수 있는 곳으로, 한겨울에도 낮 기온이 20℃ 내외로 온화하다. 부드러운 햇살이 그립다면 성난 동장군을 피해 떠나기에 딱인 곳. 장벽 없는 예류해양공원은 햇살을 만끽하려는 사람들로 가득하며, 공원 의자에 누워 햇빛 샤워를 즐기는 이도 있다. 한국은 겨울의 강을 건너고 있지만, 대만은 봄이 머물고 있어 추위에 지친 한국 사람들도 많이 찾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만 사람들은 추위를 많이 타는 까닭인지 따스한 날씨임에도 두툼한 패딩을 입고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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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물과 좁은 골목이 정겹게 어우러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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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룽의 좁은 골목은 대부분 문턱이 없고, 경사로로 되어 있다. 또 장애인 화장실 안내 표지판도 곳곳에 있어 휠체어 여행자도 편안하게 다닐 수 있다.




예류해양공원 맞은편은 낡고 허름한 건물이 즐비한 번화가다. 아침을 먹으러 오는 사람,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 커피를 마시러 나오는 사람 등 다양한 사람이 번화가로 몰려든다. 지룽 사람들의 아침은 커피를 마시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만에서도 커피숍의 밀도가 높기로 소문이 자자할 정도. 시장 골목이나 길가 어디든 격식 없는 독특한 노천카페가 많아 마음에 드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모닝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지룽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건 맛과 향을 음미하며 주변 풍경과 함께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서로 부대끼며 정을 나누며 사는 지룽의 좁은 골목은 대부분 문턱이 없고 경사로로 되어 있어 휠체어를 탄 여행자도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다. 게다가 상가로 가득한 좁은 골목이 쓰레기 하나 없이 말끔하다. 골목마다 오토바이가 질서 정연하게 주차돼 있는데, 대만 사람들은 오토바이를 개인 이동 수단으로 사용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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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룽 골목 노포에서 맛본 두툼한 야채만두와 뜨끈한 두유 한 그릇




노포 맛집을 찾아 좁고 허름한 골목 식당가로 향했다. 여러 식당 중 줄 서서 기다리는 곳은 틀림없는 맛집일 터. 식당 한 곳을 정한 뒤 안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주인장은 휠체어 탄 내가 편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의자를 빼주고 테이블을 한쪽으로 몰아 붙여줬다. 그리고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주문을 받았다. 기분이 좋아지는 친절한 말투였다. 언어가 달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나는 메뉴판을 가리키며 손짓발짓으로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곧이어 주인장이 추천해준 왕만두와 끓인 두유가 나왔다. 두툼한 만둣속은 당면과 채소로 가득하고, 맛도 일품이다. 따끈한 두유는 국처럼 먹으니 속이 편안하고 든든하다.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자 주인장의 입꼬리가 귀에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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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룽의 3대 100년 사찰 중 하나로, 시민들의 신앙 중심지인 청황마오 사찰




식당을 나와 ‘청황마오’ 사찰로 향했다. 청황마오 사찰은 지룽시의 3대 100년 사찰 중 한 곳으로, 지룽 시민들이 신앙의 뿌리로 여긴다. 매년 명절과 신들의 탄신일에는 떠들썩한 행사를 개최하는 신앙의 중심지다. 지룽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 청황마오 신전은 내게도 안정감을 주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한들 이렇게 긴 시간을 간직한 지룽 사람들의 문화와 시간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낡은 건물에 시간의 나이테가 쌓이며 부지런히 추억을 저축한다. 지룽 여행은 시간 여행자의 정착지와도 같은 곳이다. 한겨울 지룽에서 만난 봄은 따스한 바람과 햇살을 몰고 북으로 진군을 준비하고 있다. 지룽의 봄이 한국으로 향하고 있다.






글・사진  전윤선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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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휠체어를 타고 제주 올레길 완주를 비롯해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여행담을 나누며 무장애 관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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