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꽃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제주도 서귀포시 대평포구에서 약천사까지 꽃길 따라 떠나는 무장애 여행.
유채꽃 핀 제주도
봄꽃이 폭죽 터지듯 전국을 뒤덮고 있다. 적군처럼 진군하는 꽃에게 포위되어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꽃들이 순차적으로 폈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인가 보다. 인간 사회가 속도전을 벌이고 있으니 꽃들도 뒤처질 수 없다는 듯 성질 급한 봄꽃이 모조리 피는 듯하다. 봄꽃을 제대로 보려면 제주만 한 곳이 또 있을까. 그래서 제주로 발길을 옮겨본다. 제주엔 유채꽃도 한창이다. 제주 바다의 푸른 물결과 유채꽃의 노란 물결이 융합되어 춤추듯 절경을 이룬다. 제주에서 근사한 유채꽃밭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값을 치러야 하는 곳도 있지만, 관광객은 기꺼이 꽃값을 지불하고 유채꽃과 함께 추억을 남긴다. 제주 어디를 가나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은 알에서 막 깨고 나온 노란 병아리가 떼 지어 있는 것 같다. 어디 유채꽃뿐이랴. 동백은 붉은 꽃송이가 툭 떨어져 나뒹굴고, 벚꽃은 팝콘처럼 흩날린다. 유채꽃과 어울리는 풍경을 찾아 대평포구로 향했다.
올레 8코스 전경
대평리 마을 올레길. 동료와 함께하는 여행길은 더욱 든든하고 즐겁다.
시원하게 펼쳐진 청보리숲 너머로 우뚝 솟은 박수기정의 웅장한 주상절리
대평포구는 올레 8코스 중 논짓물까지 3.6km 휠체어 구간이다. 대평포구는 작은 어선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다 잠시 정박하는 아담한 포구이기도 하다. 장애인 화장실도 있어 올레길을 시작하기 전에 들르면 좋다. 포구를 따라 걷다 보면 방파제 벽면에 여러 색깔의 타일을 모자이크로 붙여놓아 포구의 다채로운 풍경을 드러낸다. 방파제에 우뚝 선 빨간 등대도 바다와 잘 어울린다. 등대 위 모자 쓴 소녀상은 바다를 그리워하는 듯 늘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다. 바다를 끼고 걷다 보니 어느새 하예포구(예래포구)까지 와버렸다. 파란 바다 옆에서 노란 유채꽃이 바람 마사지를 받는다. 하예포구 앞바다에서는 해녀들의 물질이 한창이다. 이번 제주 여행 초 종달리 ‘해녀의부엌’에서 연극을 봤다. 해녀의부엌은 제주 4·3 사건을 직접 경험한 종달리 김춘옥(88세) 해녀의 인생 스토리를 펼쳐내는 공연장이다. 김춘옥 할머니는 열두 살 때 4·3 사건을 겪었다. 오빠는 빨갱이로 몰려 잡혀가고, 엄마는 그 충격과 잠수병으로 앓아누웠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 성공한 뒤 경찰에게 잡혀간 오빠를 구하고 싶었지만, 먼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종달리 바다에서 해녀의 길을 걸으면서 그녀는 어린 나이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러다 스물한 살에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10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홀로 남은 춘옥 할머니는 딸을 키우기 위해 바다에서 평생 물질하며 살아왔다. 공연이 끝나고 해녀 삼촌들이 만든 만찬이 시작됐다. 해녀들이 물질해온 해산물은 멋진 요리로 탄생했다. 식사가 끝나고 해녀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풀어놓았다. 해녀의부엌은 종달리를 청년들이 모여드는 희망의 동네로 탈바꿈시켰다. 청년들이 김춘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재구성했고, 할머니는 손님들이 찾아올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새긴다고 했다.
전동 휠체어 타고 올레 8코스 하예포구 구간을 여행하는 전윤선 작가
흐드러지게 핀 꽃들 사이로 드러나는 고즈넉한 하예포구의 아름다운 풍경
자연 그대로의 소라껍질을 잔으로 활용해 담아낸 막걸리. 바다만큼 청량했다.
김춘옥 해녀. 제주도 종달리에 모여든 청년들은 김춘옥 해녀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재구성해 선보였다.
하예포구에서 논짓물로 가는 길
하예포구에서 천천히 논짓물로 향한다. 논짓물은 작은 공원으로, 카페와 장애인 화장실이 들어서 있다. 논짓물에서는 갯깍주상절리도 보인다. 갯깍주상절리는 올레 8코스의 일부로, 해병대 장병들이 올레꾼을 위해 길을 만들어주어 ‘해병대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바닷길을 따라가는 구간이라 험하기로 유명하지만, 휠체어 탄 여행객은 어차피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풍경만 감상하고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리는 게 상책이다. 중문관광단지로 향하는 환상의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예전에도 자주 와본 길이다. 중문관광단지 쪽에는 접근 가능한 식당과 화장실, 숙소가 많아 휠체어 탄 여행객에는 딱이다. 중문관광단지에서 해안가를 따라가다 보면 약천사가 나온다. 약천사는 제주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해 멀리서도 보일 정도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가 있던 자리라 '약천사'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는 1982년 약천사를 창건하기 훨씬 전부터 약수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약수가 있던 곳이라 치유를 위해 암자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항일운동 당시에도 일제에 끌려갔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스님이 출소 후 몸조리를 위해 한동안 머문 곳이 약수암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올레 8코스 해병대길 전경
휠체어 타고 중문 코스를 즐기는 모습. 중문관광단지에는 식당, 화장실, 숙소가 잘 갖추어져 있어 휠체어를 탄 여행객들도 다양한 편의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사찰로 꼽히는 약천사
약천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태평양전쟁 당시 희생자 유령탑이 보인다. 제주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사용한 알뜨르 비행장이 있다.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령비를 세워 원혼을 달래는 탑이다. 아픈 역사도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꼼꼼히 기록해야 한다. 약천사 대웅전 마당에서 보는 제주 바다의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다. 대웅전 기단에도 경사로가 있어 휠체어 탄 사람도 올라갈 수 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는 옆문에도 경사로가 있지만, 휠체어 바퀴에 흙이 묻어 있어 대웅전 밖에서 법당 안 큰 부천님에게 합장했다. 현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약천사 자리를 제주 방언으로 ‘돽새미(도약샘)’로 불렀다.
약천사 경내까지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므로 동반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장애인 차량은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멀리 송악산과 산방산이 보인다.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람은 바다를 일렁이게 하고 윤슬을 만들어낸다. 숲을 벗어나야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약천사에 오르니 사방으로 제주 정경이 펼쳐진다. 발아래 세상은 티끌처럼 작고, 겨우내 차가웠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제주는 여행자들을 시인으로, 철학자로 만든다. 엊그제 봄이 왔나 싶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치닫고, 또 눈을 뿌리는 등 역주행하기도 한다. 속도 조절을 못하는 봄이 급발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꺼번에 다 피는 봄꽃에 맘이 급해진다.
전윤선 휠체어를 타고 제주 올레길 완주를 비롯해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여행담을 나누며 무장애 관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가 있다.
유채꽃과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제주도 서귀포시 대평포구에서 약천사까지 꽃길 따라 떠나는 무장애 여행.
유채꽃 핀 제주도
봄꽃이 폭죽 터지듯 전국을 뒤덮고 있다. 적군처럼 진군하는 꽃에게 포위되어 정신마저 혼미해진다. 꽃들이 순차적으로 폈으면 하는 바람은 욕심인가 보다. 인간 사회가 속도전을 벌이고 있으니 꽃들도 뒤처질 수 없다는 듯 성질 급한 봄꽃이 모조리 피는 듯하다. 봄꽃을 제대로 보려면 제주만 한 곳이 또 있을까. 그래서 제주로 발길을 옮겨본다. 제주엔 유채꽃도 한창이다. 제주 바다의 푸른 물결과 유채꽃의 노란 물결이 융합되어 춤추듯 절경을 이룬다. 제주에서 근사한 유채꽃밭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유채꽃밭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값을 치러야 하는 곳도 있지만, 관광객은 기꺼이 꽃값을 지불하고 유채꽃과 함께 추억을 남긴다. 제주 어디를 가나 흐드러지게 핀 유채꽃은 알에서 막 깨고 나온 노란 병아리가 떼 지어 있는 것 같다. 어디 유채꽃뿐이랴. 동백은 붉은 꽃송이가 툭 떨어져 나뒹굴고, 벚꽃은 팝콘처럼 흩날린다. 유채꽃과 어울리는 풍경을 찾아 대평포구로 향했다.
올레 8코스 전경
대평리 마을 올레길. 동료와 함께하는 여행길은 더욱 든든하고 즐겁다.
시원하게 펼쳐진 청보리숲 너머로 우뚝 솟은 박수기정의 웅장한 주상절리
대평포구는 올레 8코스 중 논짓물까지 3.6km 휠체어 구간이다. 대평포구는 작은 어선이 쉴 새 없이 들락거리다 잠시 정박하는 아담한 포구이기도 하다. 장애인 화장실도 있어 올레길을 시작하기 전에 들르면 좋다. 포구를 따라 걷다 보면 방파제 벽면에 여러 색깔의 타일을 모자이크로 붙여놓아 포구의 다채로운 풍경을 드러낸다. 방파제에 우뚝 선 빨간 등대도 바다와 잘 어울린다. 등대 위 모자 쓴 소녀상은 바다를 그리워하는 듯 늘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서 있다. 바다를 끼고 걷다 보니 어느새 하예포구(예래포구)까지 와버렸다. 파란 바다 옆에서 노란 유채꽃이 바람 마사지를 받는다. 하예포구 앞바다에서는 해녀들의 물질이 한창이다. 이번 제주 여행 초 종달리 ‘해녀의부엌’에서 연극을 봤다. 해녀의부엌은 제주 4·3 사건을 직접 경험한 종달리 김춘옥(88세) 해녀의 인생 스토리를 펼쳐내는 공연장이다. 김춘옥 할머니는 열두 살 때 4·3 사건을 겪었다. 오빠는 빨갱이로 몰려 잡혀가고, 엄마는 그 충격과 잠수병으로 앓아누웠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 성공한 뒤 경찰에게 잡혀간 오빠를 구하고 싶었지만, 먼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렇게 종달리 바다에서 해녀의 길을 걸으면서 그녀는 어린 나이에 한 집안의 가장이 되었다. 그러다 스물한 살에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10년 만에 남편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홀로 남은 춘옥 할머니는 딸을 키우기 위해 바다에서 평생 물질하며 살아왔다. 공연이 끝나고 해녀 삼촌들이 만든 만찬이 시작됐다. 해녀들이 물질해온 해산물은 멋진 요리로 탄생했다. 식사가 끝나고 해녀 할머니는 자신의 삶을 생생하게 풀어놓았다. 해녀의부엌은 종달리를 청년들이 모여드는 희망의 동네로 탈바꿈시켰다. 청년들이 김춘옥 할머니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재구성했고, 할머니는 손님들이 찾아올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새긴다고 했다.
전동 휠체어 타고 올레 8코스 하예포구 구간을 여행하는 전윤선 작가
흐드러지게 핀 꽃들 사이로 드러나는 고즈넉한 하예포구의 아름다운 풍경
자연 그대로의 소라껍질을 잔으로 활용해 담아낸 막걸리. 바다만큼 청량했다.
김춘옥 해녀. 제주도 종달리에 모여든 청년들은 김춘옥 해녀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재구성해 선보였다.
하예포구에서 논짓물로 가는 길
하예포구에서 천천히 논짓물로 향한다. 논짓물은 작은 공원으로, 카페와 장애인 화장실이 들어서 있다. 논짓물에서는 갯깍주상절리도 보인다. 갯깍주상절리는 올레 8코스의 일부로, 해병대 장병들이 올레꾼을 위해 길을 만들어주어 ‘해병대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바닷길을 따라가는 구간이라 험하기로 유명하지만, 휠체어 탄 여행객은 어차피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풍경만 감상하고 미련 없이 발길을 돌리는 게 상책이다. 중문관광단지로 향하는 환상의 자전거길을 따라간다. 예전에도 자주 와본 길이다. 중문관광단지 쪽에는 접근 가능한 식당과 화장실, 숙소가 많아 휠체어 탄 여행객에는 딱이다. 중문관광단지에서 해안가를 따라가다 보면 약천사가 나온다. 약천사는 제주에서 가장 큰 사찰이다. 규모가 어마어마해 멀리서도 보일 정도다. 사시사철 마르지 않는 약수가 있던 자리라 '약천사'라 이름이 붙여졌다. 이곳에는 1982년 약천사를 창건하기 훨씬 전부터 약수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있었다. 약수가 있던 곳이라 치유를 위해 암자를 찾는 사람이 많았다. 항일운동 당시에도 일제에 끌려갔다 옥고를 치르고 나온 스님이 출소 후 몸조리를 위해 한동안 머문 곳이 약수암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올레 8코스 해병대길 전경
휠체어 타고 중문 코스를 즐기는 모습. 중문관광단지에는 식당, 화장실, 숙소가 잘 갖추어져 있어 휠체어를 탄 여행객들도 다양한 편의시설을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제주도에서 가장 큰 사찰로 꼽히는 약천사
약천사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태평양전쟁 당시 희생자 유령탑이 보인다. 제주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이 태평양전쟁에서 사용한 알뜨르 비행장이 있다. 당시 희생당한 사람들의 유령비를 세워 원혼을 달래는 탑이다. 아픈 역사도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꼼꼼히 기록해야 한다. 약천사 대웅전 마당에서 보는 제주 바다의 풍경은 가히 압도적이다. 대웅전 기단에도 경사로가 있어 휠체어 탄 사람도 올라갈 수 있다. 대웅전 안으로 들어가는 옆문에도 경사로가 있지만, 휠체어 바퀴에 흙이 묻어 있어 대웅전 밖에서 법당 안 큰 부천님에게 합장했다. 현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약천사 자리를 제주 방언으로 ‘돽새미(도약샘)’로 불렀다.
약천사 경내까지는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므로 동반인의 도움이 필요하다. 장애인 차량은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다. 멀리 송악산과 산방산이 보인다. 쉴 새 없이 불어대는 바람은 바다를 일렁이게 하고 윤슬을 만들어낸다. 숲을 벗어나야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것처럼, 약천사에 오르니 사방으로 제주 정경이 펼쳐진다. 발아래 세상은 티끌처럼 작고, 겨우내 차가웠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제주는 여행자들을 시인으로, 철학자로 만든다. 엊그제 봄이 왔나 싶더니 어느새 여름으로 치닫고, 또 눈을 뿌리는 등 역주행하기도 한다. 속도 조절을 못하는 봄이 급발진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한꺼번에 다 피는 봄꽃에 맘이 급해진다.
여행 정보
콜센터 1899-6884
문자 접수 010-6641-6884
특장차량: 스타랙스(리프트)
문의: 064-805-8005
• 제주 아산렌트카
특장차량: 카니발(경사로)
문의: 064-743-9991
• 한라산렌트카
특장차량: 카니발(경사로)
문의: 064-748-8222
객실: 무장애 객실 4개
문의: 064-731-5500
※ 약천사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없다.
글・사진 전윤선
PROFILE
전윤선
휠체어를 타고 제주 올레길 완주를 비롯해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여행담을 나누며 무장애 관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