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장애를 무거워하지 않는다



서울역 앞에 문을 연 ‘모두미술공간’은 장애 예술 전문 공간이다.
약 130평 규모의 전시실은 장애인의 편리한 관람과 예술 활동을 위해 설계됐으며, 미술 교육과 창작 지원으로 장애 예술의 새 지평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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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시각예술 분야 장애 예술 전문 공간인 '모두미술공간'이 서울역 앞 서울스퀘어 별관 5층에 문을 열었다. 장애를 결핍이 아닌 새로운 감각으로 해석하는 개관전 <감각한 차이>는 장애·비장애 작가 5팀의 작품을 통해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27년간 아트랩 '우리들의 눈'을 통해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예술 프로젝트를 진행해온 엄정순 예술감독은 "장애는 감각의 결핍이 아닌, 예민한 감수성으로 발현되는 창의성"이라고 말한다. 장애로 인해 어떤 기능이 결여되었더라도, 그 결여는 새로운 신체 경험을 가능하게 하고, 스스로 차이를 창조하는 주체적 과정에 이르게 한다. 창조의 세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결핍도 무거워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은 전시 전반에 녹아 있으며, 각 전시실마다 개성 있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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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모두미술공간. 타임스퀘어 별관 5층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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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은 모든 관람객의 안전하고 편리한 관람을 위해 설계됐다. 단차를 없애고 모서리를 라운드 처리했으며, 기둥을 최소화하여 휠체어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다. 작품 설명 문구도 시각장애인과 휠체어 이용자의 눈높이에 맞춰 설치했다.




제1전시실에서는 270권의 점자책으로 만든 대형 설치 작품 ‘감각의 벽’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관람객의 언어가 디지털 점자와 소리로 변환되는 이 작품은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열어주며, 이어지는 공간에서는 청각장애 무용수와 작곡가의 2년간 협업으로 탄생한 ‘96 BPM’이 상영된다.

제2전시실로 들어서면 시야가 5cm로 제한된 박찬별 작가의 작은 풍경화 100여 점이 하나의 우주를 이루듯 또 다른 형상을 드러내며, 한쪽에는 발달장애 작가 강승탁의 화려한 맹수 그림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그림을 그리는 즉시 행복해진다”고 말하는 강승탁은 ‘사단법인 누구나’의 지원으로 성장한 작가로, 전시실에는 그의 작품과 함께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도 마련했다.

라일라 카심 작가가 이끈 일본 ‘시부야 폰트’ 프로젝트도 눈에 띈다. 모두미술공간은 장애인 아티스트의 창의성을 상업적 가치로 연결한 이 프로젝트에서 영감받아 중구장애인복지관과 함께 ‘센터 폰트’를 개발했다. 이렇게 만든 센터 폰트로 쓰인 문구는 도장으로 제작해 관람객들이 전시 기념품을 만들어 가져가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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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 해설, 색약 보정 안경, 점자 리플렛 등 다양한 보조 도구와 함께 알기 쉬운 작품 설명을 제공한다. 또 접근성 매니저가 상주하며 관람을 돕는다.




모두미술공간의 전시 접근성은 단순한 물리적 배려를 넘어선다. 전시장 곳곳에 설치된 점자 설명문은 작품명과 작가명뿐 아니라 작품 재료와 기법까지 세세하게 소개한다. 예를 들어 ‘캔버스 위에 혼합 재료’ 같은 전문 용어 대신 ‘0호 캔버스 총 111개’처럼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을 사용한다. 또 각 작품 앞에는 QR코드가 부착되어 있어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작품 설명을 음성으로 들을 수 있다. 특히 작품 설명은 전문가용 해설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언어로 작성해 어린이나 발달장애인은 물론 비장애인도 작품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상주하는 접근성 매니저들은 장애인 관람객에게 맞춤형 안내를 제공하며, 이는 ‘모든 관람객을 위한 전시’라는 개념을 실천으로 옮기는 새로운 미술관의 기준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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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지는 얼핏 휑해 보이지만, 장애인의 안전한 이동을 고려한 설계가 돋보인다. 모서리는 라운드 처리하고 기둥을 최소화했으며, 전동휠체어 충전기와 높낮이 조절 테이블을 구비했다. 충분한 동선 확보에 중점을 둔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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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실, 아트랩 등 커뮤니티 공간도 마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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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예술 작업을 하고 있는 문은주 작가는 모두미술공간의 의미를 새롭게 조명했다. 장애・비장애인이 모여 활동하는 아트그룹 선사랑드로잉회와 장애인미술협회, 한국미술협회에서 활동하는 문은주 작가는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장애인 복합문화예술공간 ‘이음센터’, 공연 중심의 ‘모두예술극장’에 이어 시각 중심의 예술 공간이 만들어져 세 곳의 예술 공간이 명실공히 장애문화예술 창작 활동의 ‘광장’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이러한 문화공간이 비장애 사회와 통합하지 않는 ‘우리들만의 광장’이 되는 것 같아 우려스러웠다는 문 작가는, “장애인문화예술원이 운영하는 이 세 곳의 문화 활동 공간은 장애인들의 다양한 창작 활동 지평을 크게 확장시켰다”고 평가했다. 특히 “여러 유형의 장애를 가진 예술가들이 위축되지 않고 심리적, 물리적으로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라며, “이는 예술인으로서의 성장을 촉진하고 궁극적으로는 비장애 사회와 이어주는 교두보가 될 것”이라고 기대를 표했다. 나아가 “’장애’라는 것이 ‘사회적 장애’가 되지 않는, 자유롭고 특이한 개성을 이룰 수 있는 유니크하고 유쾌한 공간, 배제되고 차별화되었던 ‘소수자’라는 이름의 모든 계층이 예술로 표현하고 발표할 수 있는 놀이 마당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2월 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단순한 전시 공간의 개관을 넘어, 장애 예술의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한다. '예술은 장애를 무거워하지 않는다'는 전시의 메시지처럼, 이곳에서 장애는 결핍이 아닌 특별한 감각으로 발현되며, 차이는 창조의 원동력으로 승화된다. 모두미술공간의 등장으로 장애 예술은 더 이상 복지나 배려의 대상이 아닌, 동시대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 의미 있는 공간이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활발히 이용되기를 바란다. 적극적인 홍보와 소통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시민들의 자연스러운 관심과 참여로 이어진다면, 모두미술공간은 진정한 '모두'의 공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유명은
사진 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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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전 ‘감각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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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실의 ‘감각의 벽’은 점자책 270권으로 만든 대형 설치 작품이다.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경험하는지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관람객이 입력한 언어는 디지털 점자로 벽면에 표시되며, 이를 클릭하면 정현파 화음으로 변환된다. 이는 점자의 6개 점 조합을 64가지 서로 다른 화음으로 대응시켜 청각적 경험을 제공한다. 점자를 시각과 청각으로 동시에 체험하게 함으로써 비장애인 관람객에게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열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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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원우리와 청각장애 무용수 고아라의 협업 작품 ‘96 BPM’은 일반적 음악의 개념을 확장한다. 중학교 음악 시간에 선생님에게 야단맞은 뒤 노래와 거리를 두고 살았던 고아라는 2년의 프로젝트를 통해 몸의 움직임과 호흡으로 표현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발견했다. 원우리 작곡가는 소리를 단순한 음이 아닌 ‘긴장과 이완’이라는 추상적 개념으로 해석하며, 고아라의 몸짓과 호흡이 만들어내는 소리 없는 음악을 구현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음악과 화해한 고아라는 최근 출산한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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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령문·백승현 부부의 작품은 낯선 세계를 마주할 때의 대응을 보여준다. 김령문은 관람객이 석고 구를 굴려 깨뜨리는 참여형 작품을, 백승현은 독일 유학 시절 빵집 아르바이트에서 경험한 반죽의 감각을 흙으로 ‘앞으로 던지기’ 작업으로 표현했다. 특히 백승현의 작업은 작가로서 겪는 정체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다. 그는 빈 바다를 향해 412g의 흙덩이를 던지는 행위를 반복하며, 마치 길 잃은 선장이 빈 지도에 점을 찍어가며 자신의 위치를 찾아가듯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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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 작가 강승탁의 화려한 맹수 그림. ‘사단법인 누구나’의 지원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그는 ‘약한 사람을 지켜주는’ 수호자로서 호랑이와 늑대를 그린다. 작은 캔버스에서 시작해 큰 캔버스와 아이패드로 작업 영역을 넓혔다.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 제작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작가의 세계를 엿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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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5cm로 제한된 박찬별 작가는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가 어렵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작은 영호 크기의 캔버스를 선택했고, 해 질 무렵 풍경을 주로 그린다. 시야가 제한적인 작가에게 해 질 무렵은 낮의 강한 빛이나 밤의 어둠보다 가장 잘 보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100여 점의 작은 풍경화를 모아 하나의 큰 이미지로 구성했는데, 이는 물고기나 눈 모양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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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시부야 폰트’ 프로젝트를 이끄는 라일라 카심은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 디자이너다. 장애인 아티스트들의 손 글씨와 드로잉을 디지털 서체로 개발한 이 프로젝트는 현재 구글 폰트에 등재되었고, 도쿄 16개 지역의 고유 서체로 확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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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야 폰트에서 영감받은 센터 폰트는 중구장애인복지관과 협업한 결과물이다. 중심을 뜻하는 ‘중(中)’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장애 예술의 중심 진출을 상징한다. 전시실에서 도장 찍기 체험이 가능하며, 한글 문서용으로 무료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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