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소멸을 향해 자연스럽게 가고 있다. 지난 시간은 역사가 되어 오늘을 있게 하고, 미래가 된다. 100년 전 고종 황제가 꿈꾸던 연회장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역사, 계절, 꽃, 거대한 나무와 눈 맞추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돈덕전은 수궁의 핫 플레이스로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덕수궁 안으로 들어서면 소음으로 먹먹했던 귀가 차분해진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간은 과거와 현대로 나뉜다. 덕수궁 안에 즐비한 문화유산을 뒤로하고 돈덕전으로 향했다. 돈덕전 건물 외관을 보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프랑스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물로, 조선 왕실의 상징인 자두꽃 문양이 난간에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건물 앞에는 커다란 회화나무가 근위병처럼 호위하고 있다. 1670년경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돈덕전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회화나무는 오래전부터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는 나무로 여겨 궁궐 안팎에 많이 심었다.
석조전 뒤에 들어선 서양식 건물 돈덕전은 1902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지은 것이다. 당시 고종은 국제 행사로 성대하게 치르면서 서구 열강을 대상으로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중립국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콜레라 창궐과 후에 일어난 러일전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을 방문한 최초의 외교사절단 모습
돈덕전은 2층 건물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 화려한 유럽풍 외관이 특징이다. 황제를 알현하는 폐현실과 연회장, 황제의 침실과 국빈급 외교 사절단의 숙소도 마련돼 있다. 순종의 즉위식과 고종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오찬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돈덕전은 영빈관으로 쓰던 외교 공간으로, 100년 전 격동의 외교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고종이 승하한 뒤 방치돼 있다가 덕수궁 권역이 점차 축소되고 공원화되면서 훼손되어 1933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지 100년 만에 재건된 건물이다.
대부분의 옛 건물은 휠체어 탄 관광객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돈덕전은 걱정할 필요 없다. 입구에 경사로를 만든 데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2층까지 편안하게 접근 가능하다. 게다가 돈덕전 안에는 휴게실과 장애인 화장실도 있다.
황제의 폐현식 모습
돈덕전 1층에 자리한 폐현실을 먼저 둘러봤다. 폐현실은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영상이 한쪽 벽면 가득 채우고 있어 당시 상황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각국 대사는 국서를 올리고, 외부대신은 이에 답례한다. 분위기가 엄중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곳.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폐현식이 끝나면 영상은 곧바로 광화문 거리로 이동한다. 당시 광화문 거리에는 전차가 다니고, 각양각색의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과 조선 시대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섞여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푹 빠져들게 된다.
백 년 전, 전차가 다니던 광화문 거리 전경
전시관 복도 바닥은 강화유리를 설치해 돈덕전을 복원하며 발굴된 당시 터를 볼 수 있다. 복도 벽에 걸린 액자 속 근대 거리 풍경도 볼거리를 더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울 풍경을 담은 사진과 그림을 현재로 옮겨와 더욱 실감 난다. 액자 속 날아가는 새와 슬쩍 움직이는 팔에 한 번 더 놀라며 움직이는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건너편 전관에서는 문화유산국민신탁 특별소장전이 열리고 있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소장 중인 문화유산을 선보이며 사라질 위기에 처한 국가문화유산을 찾고 보존할 수 있도록 터를 만들고 씨를 뿌리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에서는 100년의 기억 그리고 미래 100년의 꿈을 전시하고 있었다. 오늘날 인류 문화는 교류의 역사가 쌓인 성과물이다. 지난 100년의 외교사를 기억하고 지배와 피지배 시대를 넘어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교류의 장을 여는 것은 100년 전 제국의 꿈이었고, 100년 미래를 내다보는 대한민국의 꿈이기도 하다. 근대 외교의 시작은 만국 공법의 세계로부터 시작됐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최초로 근대국제법 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미국과 덴마크 등 많은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조선의 외교정책은 중국과 일본, 서양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근대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주요 수단으로 자주 외교를 택했다. 돈덕전에는 100년 전 사라졌던 황제의 꿈이 되살아나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100년의 시간이 멈춘 듯 풍경을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회화나무 이파리다. 자두꽃이 만개한 대한제국의 꿈은 일제강점기에 이슬처럼 사라졌지만, 고종 황제가 꿈꾸던 나라는 100년 후 선진국으로 진입한 대한민국으로 꽃피우고 있다. 고단했던 어제도, 다시 오지 않을 소풍 같은 오늘도 돈덕전에서 다시 희망을 건져 올린다. 초일류 국가를 바라던 황제의 꿈은 1000년을 이어갈 것이다.
여행 정보
가는 길
1·2호선 시청역 2번 출구
접근 가능한 화장실
덕수궁 돈덕전 등 다수
접근 가능한 식당
덕수궁 돌담길 주변 다수
PROFILE
전윤선 휠체어를 타고 제주 올레길 완주를 비롯해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여행담을 나누며 무장애 관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가 있다.
휠체어를 타고도 부담 없이 다녀왔다.
무려 100년 전 시간과 마주할 수 있는 곳으로.
익숙한 공간도 시간이 쌓이면 역사가 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소멸을 향해 자연스럽게 가고 있다. 지난 시간은 역사가 되어 오늘을 있게 하고, 미래가 된다. 100년 전 고종 황제가 꿈꾸던 연회장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에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곳에서는 역사, 계절, 꽃, 거대한 나무와 눈 맞추느라 지루할 틈이 없었다.
돈덕전은 수궁의 핫 플레이스로 관광객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덕수궁 안으로 들어서면 소음으로 먹먹했던 귀가 차분해진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시간은 과거와 현대로 나뉜다. 덕수궁 안에 즐비한 문화유산을 뒤로하고 돈덕전으로 향했다. 돈덕전 건물 외관을 보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프랑스 건축양식으로 지은 건물로, 조선 왕실의 상징인 자두꽃 문양이 난간에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다. 건물 앞에는 커다란 회화나무가 근위병처럼 호위하고 있다. 1670년경 심은 것으로 추정되며, 돈덕전이 들어서기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회화나무는 오래전부터 복되고 길한 일이 일어날 조짐이 있는 나무로 여겨 궁궐 안팎에 많이 심었다.
석조전 뒤에 들어선 서양식 건물 돈덕전은 1902년 고종 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해 지은 것이다. 당시 고종은 국제 행사로 성대하게 치르면서 서구 열강을 대상으로 대한제국의 위상을 높이고 중립국 승인을 요청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콜레라 창궐과 후에 일어난 러일전쟁으로 실패하고 말았다.
미국을 방문한 최초의 외교사절단 모습
돈덕전은 2층 건물에 붉은색 벽돌로 지어 화려한 유럽풍 외관이 특징이다. 황제를 알현하는 폐현실과 연회장, 황제의 침실과 국빈급 외교 사절단의 숙소도 마련돼 있다. 순종의 즉위식과 고종의 생신을 축하하기 위한 오찬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돈덕전은 영빈관으로 쓰던 외교 공간으로, 100년 전 격동의 외교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고종이 승하한 뒤 방치돼 있다가 덕수궁 권역이 점차 축소되고 공원화되면서 훼손되어 1933년 일제강점기 때 철거된 지 100년 만에 재건된 건물이다.
대부분의 옛 건물은 휠체어 탄 관광객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돈덕전은 걱정할 필요 없다. 입구에 경사로를 만든 데다 건물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어 2층까지 편안하게 접근 가능하다. 게다가 돈덕전 안에는 휴게실과 장애인 화장실도 있다.
황제의 폐현식 모습
돈덕전 1층에 자리한 폐현실을 먼저 둘러봤다. 폐현실은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영상이 한쪽 벽면 가득 채우고 있어 당시 상황을 한눈에 짐작할 수 있다. 각국 대사는 국서를 올리고, 외부대신은 이에 답례한다. 분위기가 엄중해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곳. 고종 황제를 알현하는 폐현식이 끝나면 영상은 곧바로 광화문 거리로 이동한다. 당시 광화문 거리에는 전차가 다니고, 각양각색의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양복을 입은 사람과 조선 시대 전통 복장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섞여 마치 10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푹 빠져들게 된다.
백 년 전, 전차가 다니던 광화문 거리 전경
전시관 복도 바닥은 강화유리를 설치해 돈덕전을 복원하며 발굴된 당시 터를 볼 수 있다. 복도 벽에 걸린 액자 속 근대 거리 풍경도 볼거리를 더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서울 풍경을 담은 사진과 그림을 현재로 옮겨와 더욱 실감 난다. 액자 속 날아가는 새와 슬쩍 움직이는 팔에 한 번 더 놀라며 움직이는 숨은 그림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건너편 전관에서는 문화유산국민신탁 특별소장전이 열리고 있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소장 중인 문화유산을 선보이며 사라질 위기에 처한 국가문화유산을 찾고 보존할 수 있도록 터를 만들고 씨를 뿌리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2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층에서는 100년의 기억 그리고 미래 100년의 꿈을 전시하고 있었다. 오늘날 인류 문화는 교류의 역사가 쌓인 성과물이다. 지난 100년의 외교사를 기억하고 지배와 피지배 시대를 넘어 신뢰와 우정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교류의 장을 여는 것은 100년 전 제국의 꿈이었고, 100년 미래를 내다보는 대한민국의 꿈이기도 하다. 근대 외교의 시작은 만국 공법의 세계로부터 시작됐다. 조선은 1876년 일본과 최초로 근대국제법 조약을 체결했고, 이후 미국과 덴마크 등 많은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조선의 외교정책은 중국과 일본, 서양 열강으로부터 독립을 유지하고 근대국가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주요 수단으로 자주 외교를 택했다. 돈덕전에는 100년 전 사라졌던 황제의 꿈이 되살아나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100년의 시간이 멈춘 듯 풍경을 움직이게 하는 건 바람에 흔들리는 회화나무 이파리다. 자두꽃이 만개한 대한제국의 꿈은 일제강점기에 이슬처럼 사라졌지만, 고종 황제가 꿈꾸던 나라는 100년 후 선진국으로 진입한 대한민국으로 꽃피우고 있다. 고단했던 어제도, 다시 오지 않을 소풍 같은 오늘도 돈덕전에서 다시 희망을 건져 올린다. 초일류 국가를 바라던 황제의 꿈은 1000년을 이어갈 것이다.
여행 정보
PROFILE
전윤선
휠체어를 타고 제주 올레길 완주를 비롯해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여행담을 나누며 무장애 관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