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도 문제없다! 강릉에서 누리는 무장애 여행의 즐거움.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라지만 여행하는 마음만큼은 희극이다. 낯선 곳에서 타인의 삶에 깊이 관여하지 않으니 희극으로 보이고, 행위 자체가 즐거우니 희극인 것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즐거움이 일상을 윤택하게 만드니 기분 좋은 희극이 맞다. 그 희극에서 소외된 이들이 점차 줄어들고 무장애 여행 환경은 늘고 있으니 희극의 요소들이 하나둘 추가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장애인도 느닷없이 떠나는 여행이 늘고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원할 때 떠날 수 있는 무장애 여행 환경이 조금씩 갖춰지고, 여행 산업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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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수 사진 스폿




그중 한 곳은 바로 강릉이다. 강릉은 열린 관광도시로 조성되면서 관광지마다 접근성이 개선되고 있다. 접근성이 개선된다는 점에서 무장애 관광 인식의 변화가 확연히 느껴지기도 한다. 게다가 강릉무장애관광센터를 운영해 장애인 등 관광 취약 계층에게 안심하고 여행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강릉무장애관광센터는 무장애 관광 정보를 비롯해 차량 지원, 인력 지원, 무장애 여행 상품과 자유여행 코스 추천 등이 마련돼 있어 여행을 망설이는 장애인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기에 충분하다. 차량 지원은 대형 버스와 다인승 차량, 1인승 차량도 이용할 수 있고 무장애 관광 관련 전문 인력을 갖춰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최근 장애인, 고령인, 임산부, 영유아 동반, 외국인까지 관광 약자가 증가하면서 여행에 필요한 보장구도 늘고 있다. 강릉무장애관광센터에서는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해 휠체어, 유아차, 휴대용 경사로, 리프트 휠체어까지 다양한 보장구를 대여하므로 무장애 관광도시 강릉으로 떠나기에 손색없다. 그런 여행지라면 휠체어를 타는 나도 떠나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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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해변에 설치되어 있는 조형물



이른 아침 서울역에서 KTX를 탔다. 기차는 금세 도심을 벗어나 초록 세상을 향해 달리고,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강릉역에 도착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은 편의 시설이 갖춰진 화장실 문제부터 해결해야 불안감이 조금 줄어든다. 기차역이나 공항, 지하철 등 공공시설에는 장애인 화장실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화장실 이용 후 장애인 콜택시를 타고 경포해변으로 이동했다. 장애인 콜택시 연결은 매끄러운 편이라 이동하는 데 큰 불편이 없다. 10분쯤 달리다 보니 벌써 경포해변에 도착했다. 경포해변은 열린 관광지인 만큼 접근성이 양호하다. 탁 트인 동해바다와 커다란 우체통이 눈길을 끈다. 느린 우체통과 함께 인증샷을 찍은 뒤 챙겨 온 편지지와 엽서를 꺼냈다. 편지지와 엽서는 여행지마다 느린 우체통을 운영하는 곳이 많아 꼭 챙기곤 한다. 여행에서 느낀 생생한 감정을 편지지에 적어 나에게 부치는 것. 사진도 마찬가지다. 금세 지나가는 풍경을 사진에 박제해 시간을 잠가놓는다. 기억보다는 기록으로 생각을 붙잡아 훗날 그때의 감정을 소환하며 회상하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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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해변에는 느린 우체통이 있어 편지지와 엽서를 챙기면 좋다. 느린 우체통 옆으로 전동휠체어를 충전할 수 있는 기기가 비치돼 있어 편리하다.




여행에서 느낀 감상을 꾹꾹 눌러쓴 편지와 엽서를 빨간 우체통과 파란 우체통에 각각 넣었다. 빨간 우체통 옆으로는 경사로가 있어 휠체어 탄 여행객도 접근이 용이하다. 느린 우체통 옆에는 전동휠체어 급속충전기가 비치돼 있어 배터리 방전 걱정을 덜어준다. 게다가 소나무 숲으로 가는 데크길이 바로 이어지고, 화장실 주변 접근성도 양호하다. 느린 우체통을 뒤로하고 중앙광장을 지나 모래사장이 펼쳐진 북쪽 데크길로 산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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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해변 데크길은 1.8km 정도로, 남쪽에서 북쪽까지 쭉 연결돼 있다. 열린 관광지로 조성된 곳은 중앙광장에서 북쪽 데크길 끝에 있는 전망대까지다. 데크길은 휠체어 탄 여행자도 교차해 지나가도록 넓이에도 신경 썼다. 해변에는 여러 가지 포토 존 조형물이 있다. 밋밋한 해변에 알파벳 이니셜 경포해변 조형물은 경포해변에 왔다는 증표로 안성맞춤. 시간을 저장하고 추억으로 박제하려면 사진만 한 것이 또 있을까 싶어 한 컷 한 컷 정성을 담아 찍는다. 여행은 일상을 벗어나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무겁게 비우고 채운다. 데크길 전망대에서 잠시 정적인 시간을 갖는다. 전망대 난간은 휠체어 탄 여행자도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강화유리를 설치해 막힘없이 동해바다와 만날 수 있다. 바다와 눈 맞춤하는 지금 이 시간은 강제 브레이크를 걸어놓은 것 같다. 뒤돌아보지 않고 달리다 보면 번아웃이 올 때가 있다. 내가 어디쯤 있는지, 어디로 갈지 방향감각을 잃을 때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정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정적인 시간은 잃어버린 방향을 이끌어주는 나침반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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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수와 경포가시연습지 전경



이번에는 경포호수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포호수는 A·B·C 세 가지 산책 코스가 있다. 그중 C코스는 12km 정도로, 호수 주변에 볼거리와 체험 거리가 가득하다. C코스 주변에는 관동팔경의 으뜸인 경포대와 3·1운동 기념탑, 경포가시연습지, 녹색도시체험센터,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동행인과 함께라면 호수 입구에서 전기자전거를 대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전기자전거와 전동휠체어가 속도를 맞춰 여행하는 풍경. 이보다 아름다운 파트너는 없을 듯싶다. 수동휠체어를 밀면서 12km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서로 부담되지만, 전동휠체어와 전기자전거는 능동적 여행이 가능한 만큼 몸도 마음도 훨씬 가볍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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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호수 둘레길에 놓인 홍길동 조형물



경포호수 둘레를 따라 홍길동 조형물이 일정한 간격으로 놓여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서자의 설움을 허균은 소설로 표현했다. 소설은 허구라지만 허구도 사실의 한 조각에서부터 상상이 시작된다. 홍길동도 그렇다. 조선 시대 서자와 얼자의 차별이 만연했으니 아무리 뛰어난 서자와 얼자라도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없는 사회제도와 인식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21세기를 살아가는 장애인 또한 여전히 사회에서 상처받곤 한다. 오늘도 장애인을 대하는 인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어느새 경포가시연습지에 도착했다. 매끈한 데크길이 연못 중앙을 가로질러 연결돼 있어 연못 위를 걷는 기분이 경해진다. 분홍색 연꽃이 홍길동과 장애인의 설움을 위로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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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엔 땡볕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일이 중요한 만큼 휴식도 중요하다. 잠도 자고, 몸도 쉬고, 머릿속도 비워야 일상으로 돌아갈 에너지가 생긴다. 여행은 바닥난 에너지를 보충하는 충전기다. 삶에 가장 중요한 내가 있어야 모든 관계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여행 정보  

가는 길강릉행 KTX
※ 장애인 콜택시 이용 시: 강원특별자치도 교통약자 광역이동지원센터 1577-2014
접근 가능한 화장실경포해변, 경포호수 등 다수
접근 가능한 숙소❶ 세인트존스호텔
객실: 편의 객실 11개, 애견 동반 가능
주소: 강원도 강릉시 창해로 307
문의: 033-660-9000, https://stjohns.co.kr

❷ 강릉오죽한옥마을
객실: 편의 객실 1개
주소: 강원도 강릉시 죽헌길 114
문의: 033-655-1117~8, https://ojuk.gtdc.or.kr

❸ 스카이베이호텔 경포
객실: 편의 객실 3개
주소: 강원도 강릉시 해안로 476
문의: 033-923-2000, https://skybay.co.kr

❹ 라카이 샌드파인
객실: 편의 객실 2개
주소: 강원도 강릉시 해안로 536
문의: 1644-3001, https://lakaisandpine.co.kr

❺ 호텔탑스텐
객실: 편의 객실 2개
주소: 강원도 강릉시 옥계면 헌화로 455-34
문의: 033-530-4800, https://hotel-topsten.co.kr

❻ 씨마크호텔
객실: 편의 객실 1개
주소: 강원도 강릉시 해안로406번길 2
문의: 033-650-7000, https://www.seamarqhotel.com

❼ 루소호텔
객실: 편의 객실 1개
주소: 강원도 강릉시 교동광장로100번길 12
문의: 033-647-9400, http://www.russohotel.com

❽ 연곡해변캠핑장
객실: 무장애 카라반 1동
주소: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해안로 1282
문의: 033-662-2900, https://camping.gtdc.or.kr
강릉 무장애 관련 여행 문의 강릉무장애관광센터 033-645-4005








글・사진  전윤선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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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윤선
휠체어를 타고 제주 올레길 완주를 비롯해 유럽, 북미, 아시아, 호주 등 세계 곳곳을 여행했다. 방송, 칼럼, 강연을 통해 세상과 여행담을 나누며 무장애 관광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저서로는 <익숙한 풍경 낯선 이야기>, <아름다운 우리나라 전국 무장애 여행지 39>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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