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해냈어요!" 특수교육 현장에서 15년간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를 지도하며 수없이 들어온 이 한마디가 그 어떤 메달보다 값지다는 걸 안다. 트랙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순간이 감동의 기록이다.
"
제19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 출전한 전북맹아학교 학생들. 체전을 마치고 학교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엄마 품을 떠나 달린 첫 레이스
초등학교 6학년 김영희(가명)는 시각장애 학생이다. 작년에도 체전에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엄마와 떨어져 잠을 자본 적 없는 영희는 계속 거절했다. 영희를 체전에 출전시키기 위해 권유하고 격려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들인 끝에 결국 올해 승낙을 받았다.
영희는 지금까지 빠르게 뛰어본 경험이 적은 시각장애 학생이다. 잔존 시력으로 100m, 200m 트랙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훈련을 진행했을 때 100m 달리기를 끝까지 완주하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체육 시간에 셔틀런(왕복 달리기)을 꾸준히 실시하면서 영희의 심폐지구력과 근지구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처음엔 몇 번만 뛰어도 숨이 차던 아이가 점차 끝까지 완주하고, 속도와 리듬을 조절할 수 있는 체력과 자신감을 갖추었다. "육상 연습을 끝까지 잘하면 시원한 음료수를 사 주겠다"고 약속하면 "진짜요?" 하며 눈을 빛냈고, 곧이어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더 높은 경기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보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애인육상연맹 감독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감독님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우리 학생들의 달리는 자세를 꼼꼼히 살피며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셨다. 그 결과 영희를 비롯한 학생들이 경기에서 개인 신기록을 세우는 등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육상 경기가 열린 김해운동장 보조 경기장에서 연습 중인 육상팀
제19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200m 경기를 마치고 육상팀과 함께한 사진. 맨 왼쪽이 박성준 교사다.
하지만 영희에게는 더 큰 과제가 있었다. 200m 육상 훈련에서 곡선주로를 지나 직선주로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라인 침범이라는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매번 아쉬움이 남았고, 본인도 "200m에서 실격하면 어떻게 하죠?"라며 속상해했다.
드디어 체전 당일. 200m 출발선 앞에 선 영희는 다소 긴장한 듯했지만, 총성이 울리자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곡선주로에서는 흔들리지 않았고, 직선주로에 접어드는 순간 단 한 번도 라인을 밟지 않고 정확하게 주로를 바꿔 결승선을 통과했다. 100m뿐 아니라 200m 경기에서도 쉬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
그날의 발걸음은 우리 학교 육상팀의 가슴에 깊이 남았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말없이 보여준 감동의 순간이었다.
함께 달리며 함께 자라다
영희는 경기에 도전하고 완주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있어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생겼고,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가족에게 격려와 칭찬을 받으며 '나도 소중한 존재다'라는 자존감이 향상되었다.
이런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왜 15년째 가이드러너를 계속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처음 가이드러너를 시작할 때는 단순히 학생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가이드러너는 학생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달리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매년 더 나은 기록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더 나은 가이드러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가끔 두 명을 동시에 가이드하다 보면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퇴근 후 주 3회 10km 러닝을 하고 주 3회 집에서 근력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에 발맞춰 나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15년 전보다 지금이 더 좋은 가이드러너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특히 결승선을 통과할 때, 같이 달린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미소 짓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해 가이드러너를 계속하는 것 같다. 체력과 건강이 닿는 한 학생들과 함께 계속 달리고 싶다.
골볼 종목에서 수상한 전북맹아학교 골볼팀. 전북맹아학교는 매년 다양한 종목에 걸쳐 많은 학생이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체육 교사는 박성준 교사 한 명이지만, 종목마다 담당 인솔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이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따뜻한 학교 문화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진짜 레이스는 이제 시작
15년을 돌아보며 확신하건대, 체전은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내가 해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꿔주는 특별한 무대였다. 영희처럼 엄마 품을 떠나 처음 도전한 아이의 모든 순간이 성장이었다.
체전은 끝났지만 아이들의 진짜 레이스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트랙 위에서 피워낸 용기가 교실에서, 집에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모든 순간에 빛나길 바란다. 더 많은 장애 학생이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계속 응원하고 지원하기를 희망한다. 모든 아이가 자신만의 결승선을 향해 당당히 달려갈 수 있도록.
15년 차 특수학교 교사의 체전 지도기
"선생님, 저 해냈어요!" 특수교육 현장에서 15년간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를 지도하며 수없이 들어온 이 한마디가 그 어떤 메달보다 값지다는 걸 안다. 트랙 위에서 펼쳐지는 모든 순간이 감동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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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 출전한 전북맹아학교 학생들. 체전을 마치고 학교에서 촬영한 기념사진
엄마 품을 떠나 달린 첫 레이스
초등학교 6학년 김영희(가명)는 시각장애 학생이다. 작년에도 체전에 데리고 나가고 싶었지만, 지금까지 엄마와 떨어져 잠을 자본 적 없는 영희는 계속 거절했다. 영희를 체전에 출전시키기 위해 권유하고 격려하며 1년이라는 시간을 들인 끝에 결국 올해 승낙을 받았다.
영희는 지금까지 빠르게 뛰어본 경험이 적은 시각장애 학생이다. 잔존 시력으로 100m, 200m 트랙 경기에 출전하기 위해 훈련을 진행했을 때 100m 달리기를 끝까지 완주하지 못할 정도로 체력이 많이 부족했다.
그런데 체육 시간에 셔틀런(왕복 달리기)을 꾸준히 실시하면서 영희의 심폐지구력과 근지구력이 눈에 띄게 향상되었다. 처음엔 몇 번만 뛰어도 숨이 차던 아이가 점차 끝까지 완주하고, 속도와 리듬을 조절할 수 있는 체력과 자신감을 갖추었다. "육상 연습을 끝까지 잘하면 시원한 음료수를 사 주겠다"고 약속하면 "진짜요?" 하며 눈을 빛냈고, 곧이어 열정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하지만 학생들이 더 높은 경기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보다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애인육상연맹 감독님에게 도움을 청했고, 감독님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우리 학생들의 달리는 자세를 꼼꼼히 살피며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셨다. 그 결과 영희를 비롯한 학생들이 경기에서 개인 신기록을 세우는 등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육상 경기가 열린 김해운동장 보조 경기장에서 연습 중인 육상팀
제19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 200m 경기를 마치고 육상팀과 함께한 사진. 맨 왼쪽이 박성준 교사다.
하지만 영희에게는 더 큰 과제가 있었다. 200m 육상 훈련에서 곡선주로를 지나 직선주로에 합류하는 과정에서 라인 침범이라는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매번 아쉬움이 남았고, 본인도 "200m에서 실격하면 어떻게 하죠?"라며 속상해했다.
드디어 체전 당일. 200m 출발선 앞에 선 영희는 다소 긴장한 듯했지만, 총성이 울리자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익숙한 곡선주로에서는 흔들리지 않았고, 직선주로에 접어드는 순간 단 한 번도 라인을 밟지 않고 정확하게 주로를 바꿔 결승선을 통과했다. 100m뿐 아니라 200m 경기에서도 쉬지 않고 끝까지 완주했다.
그날의 발걸음은 우리 학교 육상팀의 가슴에 깊이 남았고,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얼마나 강한지 말없이 보여준 감동의 순간이었다.
함께 달리며 함께 자라다
영희는 경기에 도전하고 완주하는 과정에서 '장애가 있어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이 생겼고, 친구와 선생님 그리고 가족에게 격려와 칭찬을 받으며 '나도 소중한 존재다'라는 자존감이 향상되었다.
이런 학생들의 변화를 지켜보며, 왜 15년째 가이드러너를 계속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처음 가이드러너를 시작할 때는 단순히 학생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깨달았다. 가이드러너는 학생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함께 달리는 것이었다.
학생들이 매년 더 나은 기록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 역시 더 나은 가이드러너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 가끔 두 명을 동시에 가이드하다 보면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퇴근 후 주 3회 10km 러닝을 하고 주 3회 집에서 근력운동을 하며 체력을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에 발맞춰 나도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15년 전보다 지금이 더 좋은 가이드러너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특히 결승선을 통과할 때, 같이 달린 아이가 환하게 웃으며 미소 짓는 바로 그 순간을 위해 가이드러너를 계속하는 것 같다. 체력과 건강이 닿는 한 학생들과 함께 계속 달리고 싶다.
골볼 종목에서 수상한 전북맹아학교 골볼팀. 전북맹아학교는 매년 다양한 종목에 걸쳐 많은 학생이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 출전하고 있다. 체육 교사는 박성준 교사 한 명이지만, 종목마다 담당 인솔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학생과 교직원이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따뜻한 학교 문화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
진짜 레이스는 이제 시작
15년을 돌아보며 확신하건대, 체전은 아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을 '내가 해냈다!'라는 자신감으로 바꿔주는 특별한 무대였다. 영희처럼 엄마 품을 떠나 처음 도전한 아이의 모든 순간이 성장이었다.
체전은 끝났지만 아이들의 진짜 레이스는 이제 막 시작되었다. 트랙 위에서 피워낸 용기가 교실에서, 집에서,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모든 순간에 빛나길 바란다. 더 많은 장애 학생이 이러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계속 응원하고 지원하기를 희망한다. 모든 아이가 자신만의 결승선을 향해 당당히 달려갈 수 있도록.
글 박성준(전북맹아학교 체육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