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신호도, 작전 지시도, 금메달의 환호도 모두 손끝으로 전해진다. 청각장애인 선수들의 올림픽, 데플림픽 이야기다. 2025 도쿄 데플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을 지원한 한국수어통역사 신윤혜와 국제수화통역사 김완수를 만났다.
(왼쪽부터) 2025 도쿄 데플림픽에 참여한 한국수어통역사 신윤혜와 국제수화통역사 김완수
두 분,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신윤혜 안녕하세요. 이번 대회에 한국수어통역사로 참여한 신윤혜라고 합니다. 대회 기간 내내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일본 전지훈련 기간에는 한국과 일본 선수들의 소통을 맡았고요.
김완수 안녕하세요. 국제수화통역사로 활동하는 김완수입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 코치, 지도자 간 국제수화 통역과 경기운영기술회의에서 정확한 의사 전달을 담당했습니다.
수어통역사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신윤혜 취미로 시작했어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다가 집 근처에서 수어를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선생님의 권유로 자격증을 땄고,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김완수 고등학생 때 국제수화 통역을 부탁받은 게 계기였어요. 스무 살 때부터 세미나와 행사에서 실시간 통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수어 강의, 연예계 국제수화 자문・검수, 기업 행사 미디어 통역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신윤혜 통역사는 유도팀, 김완수 통역사는 유도 및 가라데팀 통역을 맡았다.
도쿄 데플림픽 참가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신윤혜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에서 수어통역사를 모집할 때 지원했고, 동시에 대한장애인유도협회에서도 국가대표 강화 훈련 합숙 통역자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아 참여하게 됐어요.
김완수 2024년 튀르키예에서 열린 동계데플림픽을 준비할 때 지인을 통해 국제수화통역사 역할을 제안받았습니다.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 측에 지원해 2023 에르주룸 동계데플림픽 국제수화통역사로 활동했고, 이번 도쿄 데플림픽에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 분야의 통역은 전문 용어가 많아 까다로울 것 같아요.
신윤혜 유도 기술 명칭이 굉장히 많은 데다 정확한 수어가 없는 경우도 있어 지문자를 쓰거나 몸으로 직접 형태를 표현해야 합니다. 감독님들만 사용하는 특수 용어도 있고요. 예를 들어 ‘잡아뜯어’는 도복 깃을 빼내라는 의미인데,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완수 2023년 에르주룸 동계데플림픽 스포츠연맹 기술회의에 처음 참석했을 때, 경기 운영과 규정에 쓰이는 전문 용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 그 단어의 뜻을 물어보고 하나씩 익혀갔어요. 예를 들어 스포츠 분야에서만 사용하는 수어가 있는데, 물어보니 '자격'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선수'라는 수어도 일반 수어와 다릅니다. 이처럼 국제 대회는 일반 수어 교육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단어가 있어 저 역시 여러 가지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김완수 통역사는 농인 통역사로, 다양한 배경의 청각장애 참가자들이 더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국제수화 통역 환경에서는 청인통역사와 농인통역사가 한 팀이 되어 문화적·맥락적 차이를 줄이고 통역의 질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수어와 국제수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신윤혜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인정된 언어입니다. 나라마다 고유의 수어가 있고, 국제수화는 다양한 나라의 농인들이 만났을 때 사용하는 소통 도구죠.
김완수 한국수어는 문법·문화·사회적 배경까지 확립된 완벽한 ‘언어’입니다. 그래서 수어라고 하죠. 반면 국제수화는 전 세계 농인이 서로 소통할 때, 언어적 배경이 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각적 표현 중심의 소통 체계입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언어로 인정받지 못했고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지역마다 다르죠. 상대방의 언어 수준과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 표현을 조정하며 이해를 이끄는 것이 국제수화통역사의 역량이자 역할입니다.
국가마다 표현이 다르면 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겠어요. 즉석에서 표현을 새로 만들어야 할 때도 있나요?
김완수 물론입니다. 예를 들어 '복지'라는 단어의 경우 한국수어에서는 명확한 표현이 있지만, 국제수화에서는 확실하게 결정된 단어가 없습니다. 보통 미국수어를 참고해 설명하는데,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할 때는 개념을 풀어서 설명합니다. “장애인, 여성, 아기, 노인 등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 제도”라고 대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복지’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신윤혜 수어통역사와 데플림픽 국가대표 유도팀은 데플림픽이 시작되기 며칠 전 먼저 출국해 전지훈련 및 현지 적응을 마치고 대회에 임했다. ⓒ 신윤혜
이번 대회 현장은 어떤 분위기였나요?
신윤혜 제가 함께한 유도팀은 일본 돗토리현에서 3박 4일 전지훈련을 하고 도쿄로 넘어갔습니다. 11월이라 일교차가 심해 선수들의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었고, 감기에 걸린 선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도쿄에 가니 선수들이 설렘과 긴장감이 섞인 표정이었어요. 다행히 일본이 한국과 문화적으로 가까워 적응이 빠른 편이기도 했고요.
김완수 저는 동계데플림픽을 먼저 경험했는데, 이번 하계데플림픽은 선수와 종목 수가 훨씬 많아서 놀랐습니다. 동계데플림픽 때는 현장에서 서로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통역하기 수월했어요. 하지만 이번 하계 대회는 인원도 많고 공간도 훨씬 넓어지면서, 통역에 거리와 시야 확보가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기술 회의에서는 위원장이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원격 모니터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발화자의 수어나 표정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어요. 이런 상황들이 통역 과정에서 작은 불편으로 이어졌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돌발 상황은 없었나요?
신윤혜 남자 단체전에서 상대 선수의 유도복이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을 경기 시작 후 발견해 항의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감독님의 의견을 일본 스태프에게 전달하고, ICSD(국제농아인스포츠위원회) 최고 책임자의 메시지를 국제 수화통역사를 통해 다시 받아 조율해야 했어요. 상대 측에서는 이미 경기가 시작된 데다 이전 경기에서도 같은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우리는 반칙패를 요구했습니다. 경기 결과가 메달과 직결되는 상황이라 긴장된 순간이었죠.
김완수 국제수화통역사는 경기장 안팎에서 선수들과 대기하고 있는 시간이 많은데요. 갑자기 급하게 불려서 뛰어갔더니 이미 늦은 상황이 있어 아쉬운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선수들이 부상당했을 때는 즉시 현장에 가서 해결해야 하는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통역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해요. 부상이나 건강 관련 정보는 한 표현만 달라져도 상황이 더 심각하게 보이거나 반대로 가볍게 전달될 수 있거든요. 개인적인 감정이나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선수의 말과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습니다.
개인적 감정을 배제한다는 말,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완수 선수가 가진 감정을 전달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감정이나 해석을 더해 전하면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선수가 "아파"라고 했는데, 제가 더 아픈 것처럼 과장하거나 가볍게 표현하면 잘못된 통역이죠. 선수가 말하지 않았는데 제가 임의로 내용을 만들어 전달하거나 추가로 설명하는 것도 안 됩니다. 통역사의 역할은 선수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항상 지키고 있습니다.
일본 현지 취재진에 대응해 통역하는 신윤혜 통역사와 김완수 통역사 ⓒ 신윤혜
두 분이 협력해서 통역한 경우도 있었나요?
신윤혜 저는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한국수어를 한국어로, 그리고 일본어를 한국수어로 통역했습니다. 완수 님은 한국수어를 국제수화로, 일본수어를 국제수화로 통역했죠. 보통 제 통역이 완수 님을 거치고, 완수 님의 통역이 저를 거치는 방식이었습니다. 금메달 딴 선수를 인터뷰할 때를 꼽고 싶은데요. 일본 기자의 질문을 선수에게 전달하고, 답변을 전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수어통역사만 4명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제가 일본어가 가능하고 국제수화통역사 분이 일본수어가 가능해서 훨씬 효율적으로 통역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팀의 인터뷰를 맡을 수 있어 뿌듯했어요.
한국 선수들이 외국 선수들과 교류할 때는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김완수 보통 선수들이 먼저 다른 나라 선수들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대화가 잘 안 될 때 요청하면 도와드리죠. 제가 항상 노력하는 점은, 모든 걸 직접 통역하기보다는 뒤에서 살짝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두 선수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선수들끼리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국제수화통역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수어 통역이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것뿐 아니라 문화도 함께 전달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두 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신윤혜 언어를 습득하는 것 자체가 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어를 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 안에 담긴 농문화도 함께 전달하고 있어요. 언어와 문화는 구분되지 않지요.
김완수 한국수어는 농문화와 한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을 포함하고 있어서, 국제수화로 통역할 때는 문화 차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수어를 그대로 전달하면 다른 나라 농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특히 농담이나 은유 같은 표현은 그대로 전달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 문화권에 맞게 조정하기도 합니다. 문화 차이를 인지하고 그에 맞게 표현을 선택하는 것이 국제수화 통역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어 ‘데플림픽’과 ‘선수’
수어통역사를 꿈꾸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신윤혜 언어에 100%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표현 방식이 다른 것처럼요. 그래서 때로는 제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잘 전달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농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의견 차이가 생길 때 겸허히 배우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수어통역사와 농인은 서로의 소통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상생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배우는 마음으로,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믿습니다.
김완수 국제수화통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중요합니다. 모국어 기반이 탄탄해야 국제수화를 배울 때도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어요. 또한 통역은 단순히 말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전문적인 기술과 통역 윤리가 필요한 직업입니다.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중립성을 유지하는 태도, 언어 속에 담긴 문화적 맥락을 함께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수적입니다. 결국 국제수화통역사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기초를 얼마나 단단히 다져두었는가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신윤혜, 김완수 데플림픽에 통역하러 간다고 했을 때, 10명 중 9명은 "데플림픽이 뭐야?" 또는 "장애인 올림픽은 파리에서 끝난 거 아니야?"라고 물었습니다. 수어통역사나 농인에게는 익숙한 청각장애인 국제 대회지만, 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이죠. 이번 도쿄 데플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성적도 훌륭했고, 메달도 많이 나왔어요. 하지만 언론 보도는 여전히 적어 아쉽습니다. 데플림픽이 패럴림픽과 다른 대회라는 것, 그리고 청각장애인의 국제 대회라는 사실이 더 알려졌으면 합니다. 이천선수촌에서는 지금도 많은 선수가 4년간 오직 이 대회만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4년 후 열릴 그리스 데플림픽, 그리고 다른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선수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출발 신호도, 작전 지시도, 금메달의 환호도 모두 손끝으로 전해진다.
청각장애인 선수들의 올림픽, 데플림픽 이야기다. 2025 도쿄 데플림픽에서 대한민국 선수단을 지원한 한국수어통역사 신윤혜와 국제수화통역사 김완수를 만났다.
(왼쪽부터) 2025 도쿄 데플림픽에 참여한 한국수어통역사 신윤혜와 국제수화통역사 김완수
두 분, 먼저 자기소개 부탁해요.
신윤혜 안녕하세요. 이번 대회에 한국수어통역사로 참여한 신윤혜라고 합니다. 대회 기간 내내 통역을 담당했습니다. 일본 전지훈련 기간에는 한국과 일본 선수들의 소통을 맡았고요.
김완수 안녕하세요. 국제수화통역사로 활동하는 김완수입니다. 이번 대회에서는 선수, 코치, 지도자 간 국제수화 통역과 경기운영기술회의에서 정확한 의사 전달을 담당했습니다.
수어통역사가 된 계기가 있었나요?
신윤혜 취미로 시작했어요. 스트레스를 풀 방법을 찾다가 집 근처에서 수어를 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죠. 선생님의 권유로 자격증을 땄고,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지금까지 하고 있습니다.
김완수 고등학생 때 국제수화 통역을 부탁받은 게 계기였어요. 스무 살 때부터 세미나와 행사에서 실시간 통역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이후 수어 강의, 연예계 국제수화 자문・검수, 기업 행사 미디어 통역 등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게 됐습니다.
신윤혜 통역사는 유도팀, 김완수 통역사는 유도 및 가라데팀 통역을 맡았다.
도쿄 데플림픽 참가는 어떻게 이뤄졌나요?
신윤혜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에서 수어통역사를 모집할 때 지원했고, 동시에 대한장애인유도협회에서도 국가대표 강화 훈련 합숙 통역자를 찾는다는 연락을 받아 참여하게 됐어요.
김완수 2024년 튀르키예에서 열린 동계데플림픽을 준비할 때 지인을 통해 국제수화통역사 역할을 제안받았습니다. 한국농아인스포츠연맹 측에 지원해 2023 에르주룸 동계데플림픽 국제수화통역사로 활동했고, 이번 도쿄 데플림픽에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 분야의 통역은 전문 용어가 많아 까다로울 것 같아요.
신윤혜 유도 기술 명칭이 굉장히 많은 데다 정확한 수어가 없는 경우도 있어 지문자를 쓰거나 몸으로 직접 형태를 표현해야 합니다. 감독님들만 사용하는 특수 용어도 있고요. 예를 들어 ‘잡아뜯어’는 도복 깃을 빼내라는 의미인데, 처음엔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김완수 2023년 에르주룸 동계데플림픽 스포츠연맹 기술회의에 처음 참석했을 때, 경기 운영과 규정에 쓰이는 전문 용어를 처음 접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손을 들어 그 단어의 뜻을 물어보고 하나씩 익혀갔어요. 예를 들어 스포츠 분야에서만 사용하는 수어가 있는데, 물어보니 '자격'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선수'라는 수어도 일반 수어와 다릅니다. 이처럼 국제 대회는 일반 수어 교육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단어가 있어 저 역시 여러 가지 새로운 단어를 익히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김완수 통역사는 농인 통역사로, 다양한 배경의 청각장애 참가자들이 더 명확하고 효과적으로 정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국제수화 통역 환경에서는 청인통역사와 농인통역사가 한 팀이 되어 문화적·맥락적 차이를 줄이고 통역의 질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
한국수어와 국제수화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신윤혜 한국수어는 한국어와 함께 공용어로 인정된 언어입니다. 나라마다 고유의 수어가 있고, 국제수화는 다양한 나라의 농인들이 만났을 때 사용하는 소통 도구죠.
김완수 한국수어는 문법·문화·사회적 배경까지 확립된 완벽한 ‘언어’입니다. 그래서 수어라고 하죠. 반면 국제수화는 전 세계 농인이 서로 소통할 때, 언어적 배경이 달라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시각적 표현 중심의 소통 체계입니다. 그래서 공식적인 언어로 인정받지 못했고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 등 지역마다 다르죠. 상대방의 언어 수준과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 표현을 조정하며 이해를 이끄는 것이 국제수화통역사의 역량이자 역할입니다.
국가마다 표현이 다르면 소통이 어려울 때도 있겠어요. 즉석에서 표현을 새로 만들어야 할 때도 있나요?
김완수 물론입니다. 예를 들어 '복지'라는 단어의 경우 한국수어에서는 명확한 표현이 있지만, 국제수화에서는 확실하게 결정된 단어가 없습니다. 보통 미국수어를 참고해 설명하는데,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할 때는 개념을 풀어서 설명합니다. “장애인, 여성, 아기, 노인 등에게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 제도”라고 대상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복지’의 의미와 자연스럽게 연결되죠.
신윤혜 수어통역사와 데플림픽 국가대표 유도팀은 데플림픽이 시작되기 며칠 전 먼저 출국해 전지훈련 및 현지 적응을 마치고 대회에 임했다. ⓒ 신윤혜
이번 대회 현장은 어떤 분위기였나요?
신윤혜 제가 함께한 유도팀은 일본 돗토리현에서 3박 4일 전지훈련을 하고 도쿄로 넘어갔습니다. 11월이라 일교차가 심해 선수들의 컨디션이 최상은 아니었고, 감기에 걸린 선수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도쿄에 가니 선수들이 설렘과 긴장감이 섞인 표정이었어요. 다행히 일본이 한국과 문화적으로 가까워 적응이 빠른 편이기도 했고요.
김완수 저는 동계데플림픽을 먼저 경험했는데, 이번 하계데플림픽은 선수와 종목 수가 훨씬 많아서 놀랐습니다. 동계데플림픽 때는 현장에서 서로의 얼굴을 직접 마주하며 통역하기 수월했어요. 하지만 이번 하계 대회는 인원도 많고 공간도 훨씬 넓어지면서, 통역에 거리와 시야 확보가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습니다. 예를 들어 기술 회의에서는 위원장이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원격 모니터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발화자의 수어나 표정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경우가 있었어요. 이런 상황들이 통역 과정에서 작은 불편으로 이어졌고,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돌발 상황은 없었나요?
신윤혜 남자 단체전에서 상대 선수의 유도복이 규정에 맞지 않는 것을 경기 시작 후 발견해 항의해야 하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감독님의 의견을 일본 스태프에게 전달하고, ICSD(국제농아인스포츠위원회) 최고 책임자의 메시지를 국제 수화통역사를 통해 다시 받아 조율해야 했어요. 상대 측에서는 이미 경기가 시작된 데다 이전 경기에서도 같은 옷을 입었다는 이유로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우리는 반칙패를 요구했습니다. 경기 결과가 메달과 직결되는 상황이라 긴장된 순간이었죠.
김완수 국제수화통역사는 경기장 안팎에서 선수들과 대기하고 있는 시간이 많은데요. 갑자기 급하게 불려서 뛰어갔더니 이미 늦은 상황이 있어 아쉬운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선수들이 부상당했을 때는 즉시 현장에 가서 해결해야 하는데,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통역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해야 해요. 부상이나 건강 관련 정보는 한 표현만 달라져도 상황이 더 심각하게 보이거나 반대로 가볍게 전달될 수 있거든요. 개인적인 감정이나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고 선수의 말과 상태를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전달될 수 있도록 신경쓰고 있습니다.
개인적 감정을 배제한다는 말,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완수 선수가 가진 감정을 전달하는 건 괜찮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적인 감정이나 해석을 더해 전하면 안된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선수가 "아파"라고 했는데, 제가 더 아픈 것처럼 과장하거나 가볍게 표현하면 잘못된 통역이죠. 선수가 말하지 않았는데 제가 임의로 내용을 만들어 전달하거나 추가로 설명하는 것도 안 됩니다. 통역사의 역할은 선수의 메시지를 왜곡 없이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항상 지키고 있습니다.
일본 현지 취재진에 대응해 통역하는 신윤혜 통역사와 김완수 통역사 ⓒ 신윤혜
두 분이 협력해서 통역한 경우도 있었나요?
신윤혜 저는 한국어를 한국수어로, 한국수어를 한국어로, 그리고 일본어를 한국수어로 통역했습니다. 완수 님은 한국수어를 국제수화로, 일본수어를 국제수화로 통역했죠. 보통 제 통역이 완수 님을 거치고, 완수 님의 통역이 저를 거치는 방식이었습니다.
금메달 딴 선수를 인터뷰할 때를 꼽고 싶은데요. 일본 기자의 질문을 선수에게 전달하고, 답변을 전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수어통역사만 4명 이상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제가 일본어가 가능하고 국제수화통역사 분이 일본수어가 가능해서 훨씬 효율적으로 통역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 팀의 인터뷰를 맡을 수 있어 뿌듯했어요.
한국 선수들이 외국 선수들과 교류할 때는 어떤 역할을 하셨나요?
김완수 보통 선수들이 먼저 다른 나라 선수들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대화가 잘 안 될 때 요청하면 도와드리죠. 제가 항상 노력하는 점은, 모든 걸 직접 통역하기보다는 뒤에서 살짝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두 선수가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선수들끼리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 것도 국제수화통역사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수어 통역이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것뿐 아니라 문화도 함께 전달한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두 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신윤혜 언어를 습득하는 것 자체가 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어를 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 안에 담긴 농문화도 함께 전달하고 있어요. 언어와 문화는 구분되지 않지요.
김완수 한국수어는 농문화와 한국 사회의 문화적 맥락을 포함하고 있어서, 국제수화로 통역할 때는 문화 차이를 고려해야 합니다. 한국수어를 그대로 전달하면 다른 나라 농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특히 농담이나 은유 같은 표현은 그대로 전달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대 문화권에 맞게 조정하기도 합니다. 문화 차이를 인지하고 그에 맞게 표현을 선택하는 것이 국제수화 통역에서 매우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어 ‘데플림픽’과 ‘선수’
수어통역사를 꿈꾸는 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려요.
신윤혜 언어에 100%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표현 방식이 다른 것처럼요. 그래서 때로는 제 표현이 누군가에게는 잘 전달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런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흔들리지 않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농문화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의견 차이가 생길 때 겸허히 배우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수어통역사와 농인은 서로의 소통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상생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늘 배우는 마음으로,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이 오래 일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믿습니다.
김완수 국제수화통역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국어에 대한 깊은 이해가 중요합니다. 모국어 기반이 탄탄해야 국제수화를 배울 때도 의미를 정확하게 해석하고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어요. 또한 통역은 단순히 말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전문적인 기술과 통역 윤리가 필요한 직업입니다.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중립성을 유지하는 태도, 언어 속에 담긴 문화적 맥락을 함께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수적입니다. 결국 국제수화통역사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기초를 얼마나 단단히 다져두었는가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신윤혜, 김완수 데플림픽에 통역하러 간다고 했을 때, 10명 중 9명은 "데플림픽이 뭐야?" 또는 "장애인 올림픽은 파리에서 끝난 거 아니야?"라고 물었습니다. 수어통역사나 농인에게는 익숙한 청각장애인 국제 대회지만, 언론에서는 거의 다루지 않기 때문이죠.
이번 도쿄 데플림픽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은 성적도 훌륭했고, 메달도 많이 나왔어요. 하지만 언론 보도는 여전히 적어 아쉽습니다. 데플림픽이 패럴림픽과 다른 대회라는 것, 그리고 청각장애인의 국제 대회라는 사실이 더 알려졌으면 합니다.
이천선수촌에서는 지금도 많은 선수가 4년간 오직 이 대회만을 목표로 훈련하고 있습니다. 4년 후 열릴 그리스 데플림픽, 그리고 다른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할 선수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글 박지인
사진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