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가 선물한 품위와 건강



시청각장애를 가진 박관찬 씨는 기자이자 작가, 강사, 첼리스트 등으로 활동하며 밀도 높은 삶을 살고 있다.
이런 그가 요즘 검도에 푹 빠졌다. 검도의 어떤 매력이 그의 발걸음을 도장으로 이끌었을까.





건강한 체형으로 보입니다. 운영하는 블로그를 보니 늘 운동을 가까이하더군요.

학창 시절 체육 시간에 야구나 축구, 농구 같은 종목을 배우잖아요. 제가 몸이 불편하다 보니 그때마다 선뜻 뛰어들 수 없었는데, 그래서인지 늘 스포츠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게 있었어요. 체력도 약한 편이었고요. 그러다 대학에 가서 축구 동아리에 가입해 활동하게 됐고, 일상적으로 헬스를 하면서 점차 운동에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덕분에 달리기나 마라톤처럼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면서 삶의 재미를 찾아가고 있어요. 최근엔 검도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신체적·정신적으로 정말 좋은 운동인 것 같습니다. 



검도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작년 12월 다니던 헬스장이 리모델링하면서 잠시 운동을 쉬게 되었어요. 홈트도 해봤지만 아무래도 꾸준한 루틴이 필요하더라고요. 헬스 대신 떠올린 대안이 바로 검도였죠. 그길로 활동 지원가분에게 부탁해 집 주변의 검도장을 수소문했는데, 시청각장애가 있다는 말에 대부분 난감하다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그런데 한 도장에서 제 잔존 시력이 어느 정도인지 묻더니 한번 시도해보자며 희망적인 얘기를 해주셨어요. 그렇게 인연을 맺은 분이 마곡선검도관 선강원 관장님입니다. 지금도 매주 화요일 그분에게 수업을 받는데, 화요일에는 가급적 다른 일정을 잡지 않을 만큼 검도 수련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검도의 어떤 점이 마음에 들었나요?

검도는 결코 쉽고 만만한 스포츠가 아니에요. 도복 입는 법, 죽도 쥐는 법, 균형 잡고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 법 등 과정이 꽤 까다롭거든요. 그래도 품위 있고 건강하게 마음을 다질 수 있어 좋습니다. 헬스처럼 혼자 하는 운동이 아니라 상대와 대련해야 한다는 점에서 잘할 수 있을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언제나 그렇듯 방법이 생기더군요. 관장님이 제 손바닥에 글을 적거나 음성인식 기능 앱으로 의사소통을 시도했고, 그렇게 차근차근 실력을 쌓아 대련하며 승급 심사를 보기도 했어요. 사소한 부분까지 챙기며 어떻게든 검도의 가치와 재미를 전해주려 노력하는 관장님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돌이켜보면 인생의 순간마다 제 의지나 가치관이 꺾이지 않도록 옆에서 지지해준 분이 꽤 많았던 것 같아요. 대학교 축구 동아리에서 활동할 때는 제가 선수들을 좀 더 잘 구별할 수 있도록 상대팀이 파란색 조끼를 입어줬고요. 지금 첼로를 지도해주는 김영아 선생님은 "첼로는 마음과 영혼으로 연주하는 악기"라며 다들 마다한 저를 제자로 받아주셨어요. 첼로 연습 과정에서 소음이 꽤 발생하기 때문에 이웃 주민에게 양해를 구하는 글을 붙였더니 "(청각장애로, 음악 감상이라는) 인생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속상하겠다"며 "마음껏 연습하라"는 위로의 문자를 보내주시는 분도 계셨죠. 이런 잔잔한 격려가 제게는 큰 용기와 힘이 됩니다.



운동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우선 몸을 건강하게 해주죠. 일이나 인간관계에서 필연적으로 쌓이는 것이 있잖아요. 누군가는 술을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며 스트레스를 풀지만, 저는 온몸이 땀에 젖을 때까지 운동하며 나쁜 생각을 털어내요. 그런가 하면 운동은 장애를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점차 시력과 청력을 잃은 경우예요. 처음에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시신경 위축이 찾아왔고, 신경이 연결돼 있다 보니 이후 청신경에도 문제가 생기더군요. 서서히 몸에 변화가 생겼기에 일반 초등학교에 입학해 이후로도 쭉 일반 중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비장애인과 함께 생활하고 경쟁하는 환경에 익숙해서인지 운동도 마찬가지였어요.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가 따로 있긴 하지만, 저는 구분 없이 그저 하고 싶은 스포츠가 생기면 뛰어들어 열심히 배우고 즐겼죠. 그 과정이 모두 장애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클라이밍, 집라인, 패러글라이딩 등 관심이 가는 스포츠가 많은데, 언젠가는 꼭 한번 시도해볼 생각입니다.



멋진 삶의 태도네요.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한 어떤 상황에서도 난관을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 같아요.

네, 저는 한계를 탓하기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관심이 많아요. 그런데 이런 제게도 좌절의 순간이 있습니다. 헬스장 이용 거부 같은 상황이죠. 장애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환불해주겠다는 헬스장도 있었거든요. 저는 20년 가까이 헬스를 해온 사람이고, 운동 시 노출되는 위험은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지만 헬스장 측은 입장이 완고하더군요. 장애인에게 튼튼한 체력은 삶을 영위하는 데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런 만큼 꼭 주기적인 운동이 필요하지만, 여건이 되지 않는 상황이 많죠. 엘리베이터가 연결되지 않는 지하 헬스클럽, 휠체어 출입이 불가능한 탈의실 등을 떠올려보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스포츠업계에 종사하는 분들도 관련 교육을 통해 장애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을 줄이는 노력을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더인디고’라는 언론사 기자로, 장애 인식 개선 교육 강사 등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계시죠. 올해는 저서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를 출간하는 한편 첼로 연주자로도 활약 중이신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몸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인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려해야 하는 사람들로 생각하지 말고 그저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대우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널리 퍼지면 좋겠어요. 제가 그런 인식 향상에 도움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있는 그대로 상대를 바라봐줄 때 개인의 특별한 재능이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거든요. 외적으로는 건강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장애가 있는 것처럼,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얼마든지 비장애인처럼 능동적이고 의욕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많은 분이 알아봐주셨으면 합니다.






 장혜정
사진 이담사진실 이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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