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을 바꾸었다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지난 편에서 최중증 뇌병변장애인과 체육의 이해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실제 생활체육 프로그램 여섯 가지와 주의 사항을 소개합니다.
최중증 뇌병변장애가 있어도 즐길 수 있는 운동
MATP(Motor Activity Training Program) MATP는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을 위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생활체육 형태입니다. 국내에서는 ‘중증발달장애인 운동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중증·중복·복합 요구가 큰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수정·변형 신체 활동 프로그램’이며, 개인의 요구·흥미·동기를 중심으로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기술 습득이나 정확한 동작보다는 신체 반응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경험에 초점을 둡니다. 개인의 움직임 범위를 파악해 던지기, 치기, 차기 등 대근육 움직임부터 풍선을 밀고, 리본의 촉감을 느끼고,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는 작은 움직임까지 모두 ‘운동’으로 인정됩니다. 반응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기에 말이나 규칙을 이해하기 어려운 최중증 중복장애인에게도 가장 안전하게 시작할 수 있는 생활체육입니다. 운영은 컴 앤 트라이(Come and Try) → 트레이닝(Training, 8~12주) → 챌린지 데이(Challenge Day) 3단계로 이루어지며, 성취를 스포츠 축제처럼 공유하는 구조가 특징입니다.
파워싸커(Power Soccer)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이 팀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종목입니다. 손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며, 전용 휠체어를 이용해 4명이 한 팀으로 경기가 진행됩니다. 공을 정확히 차지 못해도(또는 치지 못해도) 휠체어 전면 가드로 공을 건드리고 방향을 바꾸는 순간부터 이미 참여가 시작됩니다. 이 종목의 핵심은 경쟁이 아니라 ‘나의 움직임이 팀에 기여한다’는 감각으로, 자기 효능감과 소속감을 높이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보치아 보치아는 최중증 중복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 스포츠 종목입니다. 특히 BC3 등급에서는 램프와 보조인을 활용해 공을 던지지 못해도 참여할 수 있으며, 시선이나 신호를 통해 방향을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경기의 핵심이 됩니다. ‘선택–조준–결과’ 구조가 분명해 성공 경험을 만들기 쉽습니다.
폴리뱃 출처 : Invictus Viseu 유튜브
폴리뱃(Polybat) 폴리뱃은 탁구를 변형한 게임으로, 네트가 없고 공의 속도가 느려 중증·최중증장애인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탁구대 양옆을 가림막으로 막아 공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며, 공을 반대편으로 보내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됩니다. 작은 상지 움직임도 의미 있는 참여가 되기에 상지 조절이 제한적인 대상자에게 특히 적합하며, 가정에서도 테이블을 활용해 시도할 수 있습니다.
리바운드 테라피 출처 : Rebound Therapy 유튜브
리바운드 테라피(Rebound Therapy) 이 프로그램은 트램펄린을 활용해 미세한 반동만으로도 움직임, 균형, 근긴장, 감각 통합 등 신체 인식과 감각 통합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운동입니다. 점프가 아닌 흔들림을 느끼는 경험(움직임을 몸으로 다시 배우는 감각)이 주목적이며, 모든 최중증 당사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맞는 경우 강력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단, 안전(적절한 고정, 자세, 전문 인력) 조건을 갖춘 기관에서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며, 시간을 짧게 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수중 활동 물속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중력 부담이 줄어들어 땅 위에서 경직되던 몸이 이완되고 움직임의 가능성이 넓어집니다. 수영을 하지 않아도 떠 있기, 물의 흔들림을 느끼고 호흡을 맞추는 경험만으로 충분합니다.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에게 수중 활동은 운동 이전에 편안함을 회복하는 경험이 됩니다. 특히 할리윅(Halliwick) 접근은 물속 적응과 이완, 호흡과 균형을 단계적으로 다루며, 수영 기술을 가르치는 접근이 아니라 물속에서의 안정과 반응을 중시합니다. 중증장애인도 ‘움직임의 자유’를 경험하기 좋습니다. 물속에서 몸이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돕고, 중력과 긴장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몸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접근입니다.
생활체육 활동 시 주의할 점
생활체육 활동 시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의 주의 사항은 프로그램과 장소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1. ‘무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불편함이나 통증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활체육에서는 몸의 신호를 읽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호흡이 갑자기 빨라지거나 느려질 때, 얼굴 표정이 굳어지거나 시선이 흐려질 때, 근긴장이 급격히 높아지거나 힘이 빠질 때 등의 변화는 ‘조금 쉬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멈추는 선택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2. 체육의 목적을 ‘변화’가 아니라 ‘안정’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보호자와 지도자가 ‘운동을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체육에서는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편안했다면, 활동 후 표정이 부드러웠다면, 긴장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그 자체가 충분한 성과입니다. 생활체육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시간을 반복하는 일입니다.
3. ‘혼자 책임지는 체육’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들의 체육은 지도자나 보호자 혼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의료 정보(경련, 호흡, 섭식 등)는 반드시 공유되어야 하며, 보호자의 관찰 경험은 지도 과정에 반영되어야 하고, 보조 인력과의 역할 분담이 명확해야 합니다. 생활체육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먼저 협력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4. 모든 날이 ‘운동하는 날’일 필요는 없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잠을 설친 날, 병원 일정이 겹친 날에는 체육을 쉬는 것도 선택지입니다. 생활체육은 의무가 아닙니다. 쉬는 날이 있어야 다시 즐길 수 있습니다. 쉬는 것은 실패가 아닌, 몸을 존중하는 결정입니다.
5. 비교는 가장 빠르게 즐거움을 잃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 어제와의 비교, ‘이 정도면 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의도와 다르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의 생활체육은 각자의 속도로 진행되는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같은 운동이라도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습니다.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은 체육에서 비주류가 아닙니다. 오히려 체육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가장 명확한 답을 보여주는 대상자입니다. 이들의 생활체육은 ‘잘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몸이 세상과 안전하게 연결되는 시간을 늘려가는 일입니다. 조금 느려도, 자주 멈춰도,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 시간이 편안했다면, 즐길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분들이 운동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닌 ‘우리는 이분들의 움직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라본다면, 보다 많은 이가 참여하고 공유하는 생활체육 현장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글 한범석
PROFILE
한범석 서울대학교에서 특수체육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장애인 신체 활동 전문 교육기관인 오움사회적협동조합에서 뇌병변(뇌성마비, 뇌졸중)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재활 및 체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나사렛대학교 재활스포츠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희대·용인대·한경국립대에서 특수체육 관련 강의를 담당한다. 현장에서 만난 최중증장애인들이 작은 움직임으로 보여준 반응이, 체육이란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
관점을 바꾸었다면,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볼 차례입니다.
지난 편에서 최중증 뇌병변장애인과 체육의 이해를 다뤘다면, 이번에는 실제 생활체육 프로그램 여섯 가지와 주의 사항을 소개합니다.
최중증 뇌병변장애가 있어도 즐길 수 있는 운동
MATP는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을 위해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생활체육 형태입니다. 국내에서는 ‘중증발달장애인 운동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중증·중복·복합 요구가 큰 사람들을 위해 고안된 ‘수정·변형 신체 활동 프로그램’이며, 개인의 요구·흥미·동기를 중심으로 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기술 습득이나 정확한 동작보다는 신체 반응 그 자체를 존중하는 경험에 초점을 둡니다. 개인의 움직임 범위를 파악해 던지기, 치기, 차기 등 대근육 움직임부터 풍선을 밀고, 리본의 촉감을 느끼고, 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리는 작은 움직임까지 모두 ‘운동’으로 인정됩니다. 반응을 통해 사람과의 관계를 만들어가기에 말이나 규칙을 이해하기 어려운 최중증 중복장애인에게도 가장 안전하게 시작할 수 있는 생활체육입니다. 운영은 컴 앤 트라이(Come and Try) → 트레이닝(Training, 8~12주) → 챌린지 데이(Challenge Day) 3단계로 이루어지며, 성취를 스포츠 축제처럼 공유하는 구조가 특징입니다.
2024 안양 MATP ©한범석
파워싸커
출처 : 대한장애인파워싸커협회 유튜브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이 팀 스포츠를 경험할 수 있는 종목입니다. 손의 미세한 움직임만으로도 참여가 가능하며, 전용 휠체어를 이용해 4명이 한 팀으로 경기가 진행됩니다. 공을 정확히 차지 못해도(또는 치지 못해도) 휠체어 전면 가드로 공을 건드리고 방향을 바꾸는 순간부터 이미 참여가 시작됩니다. 이 종목의 핵심은 경쟁이 아니라 ‘나의 움직임이 팀에 기여한다’는 감각으로, 자기 효능감과 소속감을 높이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보치아는 최중증 중복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대표적 스포츠 종목입니다. 특히 BC3 등급에서는 램프와 보조인을 활용해 공을 던지지 못해도 참여할 수 있으며, 시선이나 신호를 통해 방향을 선택하는 과정 자체가 경기의 핵심이 됩니다. ‘선택–조준–결과’ 구조가 분명해 성공 경험을 만들기 쉽습니다.
폴리뱃
출처 : Invictus Viseu 유튜브
폴리뱃은 탁구를 변형한 게임으로, 네트가 없고 공의 속도가 느려 중증·최중증장애인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탁구대 양옆을 가림막으로 막아 공이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며, 공을 반대편으로 보내는 것 자체가 목표가 됩니다. 작은 상지 움직임도 의미 있는 참여가 되기에 상지 조절이 제한적인 대상자에게 특히 적합하며, 가정에서도 테이블을 활용해 시도할 수 있습니다.
리바운드 테라피
출처 : Rebound Therapy 유튜브
이 프로그램은 트램펄린을 활용해 미세한 반동만으로도 움직임, 균형, 근긴장, 감각 통합 등 신체 인식과 감각 통합에 자극을 줄 수 있는 운동입니다. 점프가 아닌 흔들림을 느끼는 경험(움직임을 몸으로 다시 배우는 감각)이 주목적이며, 모든 최중증 당사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지만 맞는 경우 강력한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습니다. 단, 안전(적절한 고정, 자세, 전문 인력) 조건을 갖춘 기관에서 시행하는 것이 원칙이며, 시간을 짧게 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합니다.
물속에서는 많은 것이 달라집니다. 중력 부담이 줄어들어 땅 위에서 경직되던 몸이 이완되고 움직임의 가능성이 넓어집니다. 수영을 하지 않아도 떠 있기, 물의 흔들림을 느끼고 호흡을 맞추는 경험만으로 충분합니다.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에게 수중 활동은 운동 이전에 편안함을 회복하는 경험이 됩니다. 특히 할리윅(Halliwick) 접근은 물속 적응과 이완, 호흡과 균형을 단계적으로 다루며, 수영 기술을 가르치는 접근이 아니라 물속에서의 안정과 반응을 중시합니다. 중증장애인도 ‘움직임의 자유’를 경험하기 좋습니다. 물속에서 몸이 안전하다고 느끼도록 돕고, 중력과 긴장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몸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접근입니다.
생활체육 활동 시 주의할 점
생활체육 활동 시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의 주의 사항은 프로그램과 장소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적용됩니다.
1. ‘무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신호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들은 불편함이나 통증을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생활체육에서는 몸의 신호를 읽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호흡이 갑자기 빨라지거나 느려질 때, 얼굴 표정이 굳어지거나 시선이 흐려질 때, 근긴장이 급격히 높아지거나 힘이 빠질 때 등의 변화는 ‘조금 쉬어야 한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멈추는 선택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2. 체육의 목적을 ‘변화’가 아니라 ‘안정’에 두어야 합니다.
많은 보호자와 지도자가 ‘운동을 하면 무엇이 달라질까?’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체육에서는 달라지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도 편안했다면, 활동 후 표정이 부드러웠다면, 긴장 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면 그 자체가 충분한 성과입니다. 생활체육은 목표를 달성하는 과정이 아니라 몸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시간을 반복하는 일입니다.
3. ‘혼자 책임지는 체육’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들의 체육은 지도자나 보호자 혼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의료 정보(경련, 호흡, 섭식 등)는 반드시 공유되어야 하며, 보호자의 관찰 경험은 지도 과정에 반영되어야 하고, 보조 인력과의 역할 분담이 명확해야 합니다. 생활체육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먼저 협력이 실천되어야 합니다.
4. 모든 날이 ‘운동하는 날’일 필요는 없습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 잠을 설친 날, 병원 일정이 겹친 날에는 체육을 쉬는 것도 선택지입니다. 생활체육은 의무가 아닙니다. 쉬는 날이 있어야 다시 즐길 수 있습니다. 쉬는 것은 실패가 아닌, 몸을 존중하는 결정입니다.
5. 비교는 가장 빠르게 즐거움을 잃게 만듭니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 어제와의 비교, ‘이 정도면 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는 의도와 다르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의 생활체육은 각자의 속도로 진행되는 개인적인 경험입니다. 같은 운동이라도 같은 방식일 필요는 없습니다.
최중증 뇌병변장애인은 체육에서 비주류가 아닙니다. 오히려 체육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가장 명확한 답을 보여주는 대상자입니다. 이들의 생활체육은 ‘잘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몸이 세상과 안전하게 연결되는 시간을 늘려가는 일입니다.
조금 느려도, 자주 멈춰도,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도 괜찮습니다. 그 시간이 편안했다면, 즐길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이분들이 운동을 할 수 있을까?’가 아닌 ‘우리는 이분들의 움직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라본다면, 보다 많은 이가 참여하고 공유하는 생활체육 현장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글 한범석
PROFILE
한범석
서울대학교에서 특수체육 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장애인 신체 활동 전문 교육기관인 오움사회적협동조합에서 뇌병변(뇌성마비, 뇌졸중)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을 위한 재활 및 체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나사렛대학교 재활스포츠연구소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며, 경희대·용인대·한경국립대에서 특수체육 관련 강의를 담당한다. 현장에서 만난 최중증장애인들이 작은 움직임으로 보여준 반응이, 체육이란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