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아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2026-04-16

b20d5feb0437b.png



우리는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며, 다시 웃으면서 버텨내는 가족이다.


71fe06b3da8b2.png



우리 가족의 하루

우리 가족은 조금 특별한 일상을 살아간다. 하루하루 사건과 돌발 상황이 끊이지 않지만 그 안에서도 서로를 붙들며 살아가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단단하게 이어진 가족이다.
우리 가족은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에서 맞벌이하는 부부와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큰아들, 어릴 때부터 형과 부모의 표정을 먼저 살피며 일찍 철이 든 작은아들, 그리고 언제나 우리 가족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외할머니까지 모두 다섯 명이다. 얼핏 평범한 가족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우리에게 하루는 늘 ‘긴장’과 ‘걱정’, ‘다행’이 뒤섞인 시간이었다.
아스퍼거증후군은 발달장애의 일종으로, 사회적 상호작용과 비언어적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제한적·반복적 관심사와 활동을 보이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큰아들은 인지적 강점이 있지만, 사회적 의사소통과 관계 맺음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공부는 곧잘 따라갔지만, 친구들과의 관계는 늘 쉽지 않았다. 상대가 마음을 말로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감정과 분위기를 읽는 일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의 권유로 부산의 병원에서 진단받은 뒤, 우리는 10년이 넘도록 한 달에 한 번씩 거제에서 부산까지 오갔다. 그 길은 멀고 고됐지만,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위한 시간이기도 했다. 



학교에 아이를 보내고 나면

우리 가족의 아침은 늘 분주했다. 맞벌이 가정의 등교 준비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우리 집에는 하나가 더 있었다. 큰아들에게는 또래 관계에서 오해를 부를 수 있는 말과 행동을 매일 아침 반복해 설명하고 다짐받아야 한다. 교복 매무새를 챙기고 그날 하루 별일 없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를 배웅하면 이번에는 작은아들이 눈에 들어온다. 늘 형을 향하는 시선 뒤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작은아이를 보면 마음 한편에 아려오곤 했다.
출근해서도 마음은 늘 학교에 가 있었다. 시계와 시간표를 확인하고, 쉬는 시간마다 담임교사에게 연락이 오지 않는지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일이 일상이었다. 정규반에서 생활하던 아이는 친구들과의 소통 문제로 크고 작은 일을 자주 겪었다. 처음에는 서로 이해해보려는 노력도 있었다. 선생님과 친구들, 아이와 부모가 함께 대화하며 방법을 찾으려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인내가 오래가지는 못했다. 결국 우리는 해마다 학교폭력 문제로 다른 학부모들과 마주 앉아야 했다. 때로는 가해자로, 때로는 피해자로. 아이가 피해자인 날에도 먼저 사과의 말을 꺼내던 순간이 있었다. 그 시간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단지 돌봄의 문제가 아니라 끝없이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하는 일임을 절실히 깨닫게 했다. 



일터에서 배운 또 다른 마음


95315d5a1a660.png



시간이 흘러 큰아들은 대학을 졸업했고, 지금은 거제반다비체육센터에서 장애인 일자리로 하루 4시간 근무하고 있다. 처음 아이가 그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마음이 조금 무거웠다. 직무의 귀천 때문이 아니라 낯선 환경에서 아이가 얼마나 버텨낼 수 있을지, 또 주변의 시선 속에서 상처받지 않을지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엄마의 직장에서 아이가 함께 일한다는 사실도 쉽게 마음을 놓을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다독였다. 아이의 일터를 내 불안으로 덮지 말자고, 아이가 자기 자리에서 하루를 살아낼 수 있도록 믿어보자고.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고, 지금 아이는 큰 탈 없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우리 가족에게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가족의 걱정은 큰아들로 끝나지 않는다. 작은아들은 어릴 때부터 형을 지켜보며 자랐다. 부모와 할머니가 나이를 먹고 언젠가 곁을 떠난 뒤에는 자신이 형을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하지만 무거운 부담을 일찍부터 안고 살아왔다. 지금도 치료받으며 마음을 다독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형을 챙기려는 모습을 볼 때면 미안함과 고마움이 동시에 밀려온다. 우리 가족은 늘 걱정을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가능한 한 충실하고 따뜻하게 살아가려 애쓰고 있다. 



교실 앞에 섰던 날

다음은 큰아들이 예전에 쓴 글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아이는 몇몇 친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낯선 얼굴들 속에서 새 학기를 시작해야 했다. 친구들은 아이의 행동을 보고 이상하다 말했고, 교사는 아이를 이해시키기 위해 엄마인 내가 학급 친구들 앞에서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는 그 일이 몹시 창피했다고 했다. 엄마가 자기 때문에 학교에 오는 것도, 자기 이야기가 반 친구들 앞에 공개되는 것도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그 마음을 뒤늦게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날 나는 교실에서 아스퍼거증후군에 대해 설명한 뒤 아이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했다. 친구들의 질문에도 하나하나 답해주었다. 그런데 아이 눈에는 내가 계속 웃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 웃음은 괜찮아서 웃은 것이 아니었다. 울거나 화를 내면 교실도, 집도 모두 무너질 것 같아 어떻게든 버티기 위해 붙들고 있던 표정이었다. 남편과 함께 간 것도 같은 이유였다. 내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할까 봐, 옆에서 손을 잡아 주기 위해서였다. 아이는 그날의 일을 부끄러움으로 기억했을지 몰라도, 나는 그날 이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해를 구하는 일은 설명하는 사람에게도, 설명을 듣는 사람에게도 전혀 쉽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웃는다


49eab53b936a3.png



아이들에게 세상에는 기질과 특성이 다른 사람이 많다고 말하곤 한다.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누가 더 정상에 가까운지를 가르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알고 각자에게 맞는 방식으로 살아갈 방법을 찾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우리 가족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우리는 아스퍼거증후군이 있는 아들과 함께 살아가며 매일 배우고, 실수하고, 다시 웃으면서 버텨내는 가족이라고. 남과 조금 다른 속도로 가더라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고 끝내 하루를 살아내는 가족이라고. 쉽지 않은 날들도 여전히 많을 테지만, 나는 오늘도 웃는다. 


799428a1ba76b.png






글・사진 거제해양관광개발공사 관광휴양부 오지윤(임찬우 어머니)




         


05540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올림픽회관 신관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마케팅부 02-3434-4533

서비스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어빌리브에 실린 글, 그림, 사진 등 모든 자료 가운데 저작권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저작권이 있으며, 서면 동의 없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08-2023 KPC ALL RIGHTS RESERVED.

어빌리브에 실린 글, 그림, 사진 등 모든 자료 가운데 저작권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저작권이 있으며, 서면 동의 없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05540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올림픽회관 신관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마케팅부 02-3434-4533
COPYRIGHT 2008-2023 KP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