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공주가 되고 싶은 아이

202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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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을 잡고 처음 수영장을 찾은 날, 수영을 잘하면 좋겠다는 욕심은 없었다.
그저 물속에서 아이의 감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절박함이랄까. 자폐 진단을 받은 뒤 감각 통합 치료의 일환으로 시작한 수영이지만, 아이는 혼자 물속에 있고 싶어 하지 않았다. 낯선 감각과 공간에 당황하는 아이를 위해 함께 수영복을 입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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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키보다 깊은 수심에 두려움을 느끼는 아이를 설득해 물에 들어오게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코치님의 구령에 맞춰 아이를 붙잡고 함께 물살을 가르며 보낸 시간이 꼬박 1년. 그렇게 아이와 나는 물속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비로소 '수영'이라는 여정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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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서는 연습

물속에서의 움직임보다 더 큰 난관은 일상적 자립이었다. 키오스크에서 입장권을 뽑는 방법부터 로커 사용법, 샤워 후 수영복 입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학습의 연장이었다. 특히 ‘여자 탈의실’ 너머 상황은 늘 막막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따뜻한 물의 감촉을 유난히 좋아하던 아이는 온수를 맞으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안쪽 상황을 모르는 나는 1시간 넘게 샤워하는 아이를 기다리며 굳게 닫힌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 막막함은 아이가 스스로 씻고 나올 때까지 아빠가 온전히 감내해야 할 시간의 무게였다.
이 과정에서 더 힘들었던 건, 우리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었다. "위험하지 않겠어?", "혼자서는 불편해서 안 될 텐데"라는 우려 섞인 시선.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 짓는 편견은 스스로 해낼 기회조차 가로막곤 했다. 물론 아이에게는 남보다 좀 더 세심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곧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 늦더라도, 수만 번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아이는 결국 스스로 수영복을 입고, 스스로 씻고, 문을 열고 나올 힘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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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물살 뒤에 가려진 아이의 눈물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보며 수영을 잘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 찬사 뒤에 가려진 긴 정체기와 눈물을 기억한다. 처음 훈련을 시작할 때 아이는 도대체 왜 남보다 빨리 가야 하는지, 왜 이 고된 반복을 견뎌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유도 모른 채 마주하는 훈련의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훈련이 유독 힘든 날이면 아이는 수영장이 떠나가라 울고 소리 지르며 저항한다.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배영 부문 금메달을 따고, 각종 전국대회에서 수상을 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금메달이라는 화려한 결과 뒤에는 우리가 매일 넘어야 하는 높고 아픈 벽이 늘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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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전국장애학생체육대회에서 배영 50m 금메달, 자유형 50m 동메달을 획득한 이승미 선수




그럼에도 계속 수영하는 이유는 아이가 물속에서 진심으로 행복해하기 때문이다. 훈련의 고단함에 눈물을 쏟으며 텐트럼*이 발생하다 주말에 "아빠랑 수영 갈래?"라고 물으면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게 웃으며 "네!" 하고 대답한다.
특히 기록의 압박이 없는 자유수영 시간, 아이는 물속에서 세상 누구보다 여유롭다. 수영을 하는 내내 무슨 재미있는 생각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 배영을 하며 물 밖으로 얼굴이 나올 때마다 아이의 표정엔 행복이 가득하다. 아이는 수영이라는 운동을, 그리고 물속이라는 공간 그 자체를 온몸으로 즐기는 것이다. 아직도 아이에게 꿈을 물어보면 물속에서 인어 공주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예쁜 인어 공주가 되어 물속을 자유롭게 다니고 있는 걸까. 그 미소를 볼 때면 승패보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느끼는 이 순수한 평온함이라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 텐트럼(tantrum): 극심한 스트레스나 감정 조절의 어려움 때문에 울음, 소리 지르기 등을 폭발적으로 표출하는 상태




인어 공주, 더 넓은 세상을 향해

함께 수영을 할 때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물 밖 세상에서는 늘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살피고 세상의 눈치를 보아야 하지만, 물속에서 나란히 물살을 가를 때만큼은 함께 운동을 즐기는 평범한 부녀일 뿐이다.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 평온한 순간이 영원하기를, 그래서 아이가 장애라는 꼬리표를 떼고 평범한 비장애인으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물속의 자유로움처럼, 아이를 옥죄는 모든 제약이 사라지길 바라는 아빠의 이기적이지만 진실한 소망이다.
아이가 꿈꾸는 세상은 장애라는 이름표 없이 오직 열정과 노력으로 평가받는 세상이었으면 한다. 나는 아빠이자 매니저로서, 내 아이가 그 바다에서 마음껏 유영할 수 있도록 끝까지 곁을 지킬 것이다. 고된 훈련 끝에 피어난 물살과 아이의 그 환한 미소가 세상의 모든 편견 섞인 침묵보다 크게 울려 퍼질 그날까지, 우리의 수영은 계속될 것이다.






글・사진 이형진(이승미 선수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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