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품고 사는 인생의 청사진이 있다. 나의 꿈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남편이 되는 것,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내 삶의 유일하고도 소박한 목표였다. 하지만 세상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주말 중 일요일 단 하루만 겨우 아이와 놀아줄 수 있을 정도로 일에 파묻혀 살았다. 간혹 아이가 유난히 예민한 모습을 보일 때도 그저 ‘조금 예민한 아이인가 보다’ 하고 넘길 뿐이었다.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이가 24개월이 될 무렵, 비로소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 지금 일을 좇을 때가 아니구나.’ 결국 아이가 36개월이 되던 해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아들의 주 양육자가 되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살을 맞대며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현실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이는 자폐였다. ‘제발 중증만은 아니기를…’ 매일 밤 눈물 흘리며 관련 자료를 찾고 장애인 커뮤니티의 글을 샅샅이 읽었지만, 잔인하게도 아이는 중증자폐가 맞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우며 우울증의 늪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현실 앞에서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작은 아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경남의 산과 바다, 그곳에 새겨진 우리만의 달리기
그날 이후 나는 눈물을 닦고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사방으로 정보를 찾았고, 매일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당시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기에, 오전에 딱 3시간만 등원시키고 남은 시간은 밖에서 뛰어놀게 했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서 나갔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경상남도 지역에서 안 가본 산, 들, 바다, 공원이 없을 정도였다. 차 안이나 벤치에 앉아 같이 도시락을 먹고, 치료실에 들렀다가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공원 풀밭에서 풀을 뜯으며 매일매일 다른 일정으로 하루를 꽉 채웠다. 내 인생을 통틀어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시기였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눈부시게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는 수영을 좋아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물먹는 하마 정시안’이었을까. 아들을 위해 워터파크든, 거친 바다든, 동네 수영장이든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제대로 수영을 배운 적도 없는데, 시안이는 신기하게도 수영을 참 잘했다. 제 키보다 깊은 물속에서도 겁먹지 않고 어찌나 자유롭게 헤엄치던지. 깊은 물속에서 아이가 믿은 건 옆에 있는 아빠였을 것이다. 중증자폐라는 높은 벽 때문에 제대로 된 레슨을 받거나 장애인 수영 대회에 나갈 만한 수준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물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아이의 몸짓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이었다. 나는 아이의 영원한 안전 기지가 되어주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단짝 친구에게
24시간 붙어 지내다시피 하다 보니 아들에 대한 애정이 매일 샘솟는 듯했다. 이제는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온통 아들 생각뿐인 ‘아들 바보’가 되었고, 아이 역시 아빠 없이 못 사는 ‘아빠 껌딱지’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남들은 알지 못하는 우리만의 추억을 쌓아갔다. 요즘 나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루가 다르게 과학과 의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매일 밤 간절한 꿈 하나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언젠가는 자폐 치료약이 나와 우리 아들이 완치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오면 나는 아들과 마주 앉아 소주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시안아, 너 옛날에 말도 못 하고 대변도 못 가려서 아빠랑 고생했던 거 기억나? 매일 경남에 있는 바다란 바다는 다 돌아다니면서 물놀이했잖아. 그때 아빠가 싸준 도시락 진짜 맛있었는데!” 하며 함께 울고 웃던 소중한 추억을 빠짐없이 이야기해줄 것이다. 비록 남보다 조금 느리고 특별한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도 아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소중하다. 소박했던 꿈처럼, 나는 시안이에게 최고 아빠이자 가장 든든한 친구다. 시안아, 아빠랑 끝까지 행복하게 동행하자. 그리고 먼 훗날, 마주 앉아 웃으며 옛이야기를 나누자. 아빠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멈춰 선 일상, 비로소 눈에 들어온 아이의 세계
누구나 품고 사는 인생의 청사진이 있다. 나의 꿈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다. 그저 좋은 남편이 되는 것, 그리고 새로 태어날 아이에게 친구 같은 아빠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 내 삶의 유일하고도 소박한 목표였다. 하지만 세상은 마음처럼 흘러가지 않았다. 아들이 태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주말 중 일요일 단 하루만 겨우 아이와 놀아줄 수 있을 정도로 일에 파묻혀 살았다. 간혹 아이가 유난히 예민한 모습을 보일 때도 그저 ‘조금 예민한 아이인가 보다’ 하고 넘길 뿐이었다. 일에 치여 살다 보니 내 아이에게 장애가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아이가 24개월이 될 무렵, 비로소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들었다. ‘아, 지금 일을 좇을 때가 아니구나.’ 결국 아이가 36개월이 되던 해 육아휴직을 신청하고 아들의 주 양육자가 되었다.
하루 종일 아이와 살을 맞대며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현실이 또렷하게 보였다. 아이는 자폐였다. ‘제발 중증만은 아니기를…’ 매일 밤 눈물 흘리며 관련 자료를 찾고 장애인 커뮤니티의 글을 샅샅이 읽었지만, 잔인하게도 아이는 중증자폐가 맞았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매일 밤 눈물로 지새우며 우울증의 늪에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현실 앞에서 마냥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이 작은 아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으니까.
경남의 산과 바다, 그곳에 새겨진 우리만의 달리기
그날 이후 나는 눈물을 닦고 아들의 손을 잡았다. 아이를 치료하기 위해 사방으로 정보를 찾았고, 매일 아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당시 다니던 어린이집에서는 아이가 많이 힘들어했기에, 오전에 딱 3시간만 등원시키고 남은 시간은 밖에서 뛰어놀게 했다. 아침 일찍 도시락을 싸서 나갔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경상남도 지역에서 안 가본 산, 들, 바다, 공원이 없을 정도였다. 차 안이나 벤치에 앉아 같이 도시락을 먹고, 치료실에 들렀다가 바닷가에서 수영하고, 공원 풀밭에서 풀을 뜯으며 매일매일 다른 일정으로 하루를 꽉 채웠다. 내 인생을 통틀어 육체적으로 가장 고된 시기였지만, 이상하게도 가장 눈부시게 행복한 시간이기도 했다.
아이는 수영을 좋아했다. 오죽하면 별명이 ‘물먹는 하마 정시안’이었을까. 아들을 위해 워터파크든, 거친 바다든, 동네 수영장이든 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제대로 수영을 배운 적도 없는데, 시안이는 신기하게도 수영을 참 잘했다. 제 키보다 깊은 물속에서도 겁먹지 않고 어찌나 자유롭게 헤엄치던지. 깊은 물속에서 아이가 믿은 건 옆에 있는 아빠였을 것이다. 중증자폐라는 높은 벽 때문에 제대로 된 레슨을 받거나 장애인 수영 대회에 나갈 만한 수준까지 가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물속을 자유롭게 누비는 아이의 몸짓은 그 자체로 하나의 감동이었다. 나는 아이의 영원한 안전 기지가 되어주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단짝 친구에게
24시간 붙어 지내다시피 하다 보니 아들에 대한 애정이 매일 샘솟는 듯했다. 이제는 잠시만 떨어져 있어도 온통 아들 생각뿐인 ‘아들 바보’가 되었고, 아이 역시 아빠 없이 못 사는 ‘아빠 껌딱지’가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가 되었고, 남들은 알지 못하는 우리만의 추억을 쌓아갔다. 요즘 나는 자고 일어날 때마다 격세지감을 느낀다. 하루가 다르게 과학과 의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으니까. 매일 밤 간절한 꿈 하나를 마음속으로 그려본다. ‘언젠가는 자폐 치료약이 나와 우리 아들이 완치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날이 오면 나는 아들과 마주 앉아 소주 한잔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시안아, 너 옛날에 말도 못 하고 대변도 못 가려서 아빠랑 고생했던 거 기억나? 매일 경남에 있는 바다란 바다는 다 돌아다니면서 물놀이했잖아. 그때 아빠가 싸준 도시락 진짜 맛있었는데!” 하며 함께 울고 웃던 소중한 추억을 빠짐없이 이야기해줄 것이다. 비록 남보다 조금 느리고 특별한 길을 걷고 있지만, 지금도 아들과 함께하는 매 순간이 소중하다. 소박했던 꿈처럼, 나는 시안이에게 최고 아빠이자 가장 든든한 친구다. 시안아, 아빠랑 끝까지 행복하게 동행하자. 그리고 먼 훗날, 마주 앉아 웃으며 옛이야기를 나누자. 아빠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글・사진 정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