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20일, 척수 손상으로 지팡이를 짚게 된 윤태인은 파라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헤어 디자이너에서 파라클라이밍 선수로, 윤태인이 말하는 나답게 움직이는 삶.
2025 IFSC 서울 스포츠클라이밍 & 파라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윤태인(구명 윤상근) 선수의 모습. RP2 부문에 출전해 예선 공동 6위를 기록했다. ⓒ 대한장애인체육회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
2023년 3월 17일, 충격과 동시에 하반신에 마비가 왔다. "처음에는 사고 충격으로 몸이 놀란 거겠지 했는데, 다리가 아예 안 움직이더라고요." 헤어 디자이너로 가위를 들던 윤태인의 손은 이제 암벽의 홀드를 잡는다.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고 하반신마비 판정을 받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 파라클라이밍 선수로 수직 벽을 오르고 있다.
"네가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친한 친구의 말이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되게 감사한 일이죠.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해 재활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게는 어렵지 않았으니까요.” 의학적으로 걷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발목이 부러져 오랫동안 깁스를 하고 있다가 푸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다리를 다쳤으니 재활을 하면 걷게 될 거라고. 정말 단순하게 접근했어요."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2년의 대화, 나와 나 사이
입원 재활 1년 반, 통원 6개월. 총 2년의 병원 생활은 몸과의 대화였다. "다른 환자들, 간호사, 간병인들과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거기에 내 에너지를 쏟고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녁 식사 후 2시간 30분에서 3시간, 대부분의 환자가 쉬는 시간에도 그는 운동에 투자했다. 아파서 못 한 적 말고는 모든 시간을 재활에 쏟아부었다. 그는 처음 일어섰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다리가 아니고 팔로 일어선 거였어요. 휠체어에 항상 앉아 있다가 일어났을 때는 '내가 이렇게 키가 컸나?' 했죠. 한두 달 만에 일어난 것 같은데, 밑에만 있다가 위에 있으니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휠체어를 타고 쇼핑몰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묘했다고 회상했다. "이 기분을 내가 기분 좋지 않게 받아들이면 앞으로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했어요. 장애인이 부끄러운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그는 천천히, 새로운 몸과 관계를 맺어갔다.
클라이밍 센터에서 몸을 푸는 윤태인. 운동 전 어깨, 손가락, 발목 등을 꼼꼼히 스트레칭하고 부상 방지를 위해 테이핑한다.
암벽 위에서 몸과 화해하다
보행이 가능해지자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제 휠체어를 타고 하는 종목은 그에게 맞지 않았고, 보행하는 장애인에게 맞는 종목은 찾기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종목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연히 SNS를 통해 연락한 장애인 역도 선수가 추천한 대한장애인체육회의 파라클라이밍 강습회. 하지만 강습회에 참여하기 전 먼저 체험한 클라이밍은 그를 절망하게 했다. "만화에서 악마들이 팔다리를 잡고 막 밑으로 끌어당기는, 정말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는 집에 돌아와 기차와 숙소를 취소했다.
각 홀드는 난도와 순서가 표기되어 있어 지구력을 위해 최대한 많은 홀드를 잡거나 더 높은 난도의 루트에 조정하는 등 훈련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가고 싶었다. "한 번 더 가니 전날보다는 잘됐어요. 그래도 내 운동은 아니라고 느꼈죠." 예약을 또 취소했다. 다음 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또 갔을 때, 변화가 찾아왔다. "확 달라지는 게 느껴졌어요. 결국 다시 숙소랑 기차를 예약했죠." 강습회에서 등반하는 순간, 그는 확신했다. "아, 정말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고, 끝났는데도 계속 하고 싶었어요." 암벽 위에서, 그는 자신의 몸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말 안 듣는 다리가 아니라 강한 팔과 집중력으로 벽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재활 운동이 아닌, 진짜 하고 싶은 운동을 하면서 그는 몸과 화해하는 방법을 찾았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금
"만약 다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 지금 삶이 비장애인일 때보다 더 윤택하고 즐거워요. 과연 나는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게 맞나, 그때가 더 행복했나. 마냥 돌아가고 싶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윤태인에게 움직임이란 무엇일까. "저는 지금 말 안 듣는 다리로, 장애인이 아니었을 때 해보지 못한 것을 더 해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그게 움직임이 아닐까요.” 선수로서는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본인과 비슷한 장애인에게 클라이밍과 운동을 알리고 도움을 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윤태인 선수는 사고가 있기 전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헬스를 해왔다. 덕분에 몸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도 암벽 앞에 선다. 말 안 듣는 다리를 이끌고 수직 벽을 오른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몸으로 꿈꾸는 것. 그것이 윤태인이 찾은 몸과 화해하는 방법이다.
지난 9월 20일, 척수 손상으로 지팡이를 짚게 된 윤태인은 파라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했다.
헤어 디자이너에서 파라클라이밍 선수로, 윤태인이 말하는 나답게 움직이는 삶.
2025 IFSC 서울 스포츠클라이밍 & 파라클라이밍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한 윤태인(구명 윤상근) 선수의 모습. RP2 부문에 출전해 예선 공동 6위를 기록했다.
ⓒ 대한장애인체육회
장애를 받아들이는 과정
2023년 3월 17일, 충격과 동시에 하반신에 마비가 왔다. "처음에는 사고 충격으로 몸이 놀란 거겠지 했는데, 다리가 아예 안 움직이더라고요." 헤어 디자이너로 가위를 들던 윤태인의 손은 이제 암벽의 홀드를 잡는다. 오토바이 사고로 척수 손상을 입고 하반신마비 판정을 받은 지 3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는 지금 파라클라이밍 선수로 수직 벽을 오르고 있다.
"네가 생각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친한 친구의 말이다. 그는 웃으며 대답했다. "되게 감사한 일이죠.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해 재활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제게는 어렵지 않았으니까요.”
의학적으로 걷지 못할 것이라는 판정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발목이 부러져 오랫동안 깁스를 하고 있다가 푸는 것과 비슷하게 생각한 것 같아요. 다리를 다쳤으니 재활을 하면 걷게 될 거라고. 정말 단순하게 접근했어요." 깊이 생각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그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2년의 대화, 나와 나 사이
입원 재활 1년 반, 통원 6개월. 총 2년의 병원 생활은 몸과의 대화였다. "다른 환자들, 간호사, 간병인들과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거기에 내 에너지를 쏟고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저녁 식사 후 2시간 30분에서 3시간, 대부분의 환자가 쉬는 시간에도 그는 운동에 투자했다. 아파서 못 한 적 말고는 모든 시간을 재활에 쏟아부었다.
그는 처음 일어섰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다리가 아니고 팔로 일어선 거였어요. 휠체어에 항상 앉아 있다가 일어났을 때는 '내가 이렇게 키가 컸나?' 했죠. 한두 달 만에 일어난 것 같은데, 밑에만 있다가 위에 있으니 기분이 좀 이상하더라고요."
휠체어를 타고 쇼핑몰 엘리베이터에 탔을 때, 사람들이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 묘했다고 회상했다. "이 기분을 내가 기분 좋지 않게 받아들이면 앞으로 힘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려고 했어요. 장애인이 부끄러운 건 아니잖아요." 그렇게 그는 천천히, 새로운 몸과 관계를 맺어갔다.
클라이밍 센터에서 몸을 푸는 윤태인. 운동 전 어깨, 손가락, 발목 등을 꼼꼼히 스트레칭하고 부상 방지를 위해 테이핑한다.
암벽 위에서 몸과 화해하다
보행이 가능해지자 운동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이제 휠체어를 타고 하는 종목은 그에게 맞지 않았고, 보행하는 장애인에게 맞는 종목은 찾기 어려웠다. "내가 할 수 있는 종목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우연히 SNS를 통해 연락한 장애인 역도 선수가 추천한 대한장애인체육회의 파라클라이밍 강습회. 하지만 강습회에 참여하기 전 먼저 체험한 클라이밍은 그를 절망하게 했다. "만화에서 악마들이 팔다리를 잡고 막 밑으로 끌어당기는, 정말 그런 기분이 들더라고요." 그는 집에 돌아와 기차와 숙소를 취소했다.
각 홀드는 난도와 순서가 표기되어 있어 지구력을 위해 최대한 많은 홀드를 잡거나 더 높은 난도의 루트에 조정하는 등 훈련 계획을 세울 수 있다.
그런데 다음 날, 다시 가고 싶었다. "한 번 더 가니 전날보다는 잘됐어요. 그래도 내 운동은 아니라고 느꼈죠." 예약을 또 취소했다. 다음 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또 갔을 때, 변화가 찾아왔다. "확 달라지는 게 느껴졌어요. 결국 다시 숙소랑 기차를 예약했죠."
강습회에서 등반하는 순간, 그는 확신했다. "아, 정말 열심히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고, 끝났는데도 계속 하고 싶었어요." 암벽 위에서, 그는 자신의 몸이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말 안 듣는 다리가 아니라 강한 팔과 집중력으로 벽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재활 운동이 아닌, 진짜 하고 싶은 운동을 하면서 그는 몸과 화해하는 방법을 찾았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지금
"만약 다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 지금 삶이 비장애인일 때보다 더 윤택하고 즐거워요. 과연 나는 다치기 전으로 돌아가는 게 맞나, 그때가 더 행복했나. 마냥 돌아가고 싶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윤태인에게 움직임이란 무엇일까.
"저는 지금 말 안 듣는 다리로, 장애인이 아니었을 때 해보지 못한 것을 더 해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제 자신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것. 그게 움직임이 아닐까요.”
선수로서는 패럴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본인과 비슷한 장애인에게 클라이밍과 운동을 알리고 도움을 주는 동반자 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윤태인 선수는 사고가 있기 전부터 10년 이상 꾸준히 헬스를 해왔다. 덕분에 몸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얻었다고 밝혔다.
그는 오늘도 암벽 앞에 선다. 말 안 듣는 다리를 이끌고 수직 벽을 오른다. 장애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몸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몸으로 꿈꾸는 것. 그것이 윤태인이 찾은 몸과 화해하는 방법이다.
글 박지인
사진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