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역도 동호인부에서 3관왕과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쥔 박한별 선수. 시각장애를 딛고 -110kg급에서 세 종목 모두 한국신기록을 세운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매일 새벽 6시, 쇳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역도 -110kg급에서 스쾃(스쿼트) 195kg, 데드리프트 202kg, 합계 397kg으로 세 종목 모두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운 박한별(36·강원) 선수의 일상이다. 박 선수에게 올해는 특히 힘든 해였다. 육아와 제자 양성을 병행하느라 훈련 시간이 부족한 탓에 새로운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6시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사실 무게 운동은 몸이 덜 풀린 이 시간대에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어쩔 수 없었죠. 대신 파워 위주로 승부를 보기로 했습니다." 지구력 대신 파워에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 동호인부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으며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특히 스쾃에서는 당초 알고 있던 한국기록보다 3kg 더 끌어올렸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감독과의 소통 과정에서 한국신기록을 192kg으로 알았으나 실제로는 194kg이었던 것. 195kg으로 맞춰 훈련한 덕분에 결과적으로 3kg을 한 번에 올리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세 살 때 시각장애 진단을 받은 박 선수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밸런스다. 왼쪽 눈의 시력이 더 좋지 않아 균형 감각이 일반인보다 많이 떨어진다. 거울도 잘 보이지 않아 자세가 틀어져도 바로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 하지만 이런 한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시각이 아닌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훈련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박 선수의 스포츠 인생은 우연히 시작됐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우연히 본 보디빌딩 잡지가 계기가 된 것. 이후 보디빌딩을 시작으로 조정·유도를 거쳐 역도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경험한 종목은 하나하나 값진 경험이 됐다. 보디빌딩에서는 체중 관리와 근력 운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쌓았고, 유도를 통해서는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력을 배웠다. 특히 조정은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다. 개인 종목만 하다 처음 경험한 팀 스포츠였고, 다양한 장애를 가진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장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동호인부를 선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첫째 아들이 어릴 때는 합숙 훈련을 하느라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이제는 가정에도 충실하고 싶었죠." 시각장애인 역도는 패럴림픽대회 종목이 아니다. 선수부가 아닌 동호인부에서 활동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역도를 선택한 이유이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역도의 매력으로는 '완벽한 순간'을 꼽았다. "앉았다 일어나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단 하나라도 부족하면 무게를 들 수 없어요." 몸의 모든 부분이 100%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순간, 무거운 무게도 마치 깃털처럼 느껴지는 희열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상의 의미를 묻자 박 선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년 가까이 운동하면서 중간에 포기하라는 사람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든 인정받고 있다고 느껴요. 끝까지 버틴 게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흔 살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목표는 확고하다. 패배가 아닌 승리로 은퇴하고 싶고, 마지막까지 한계에 도전해나갈 것이다.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역도 동호인부에서 3관왕과 최우수선수상을 거머쥔 박한별 선수.
시각장애를 딛고 -110kg급에서 세 종목 모두 한국신기록을 세운 그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매일 새벽 6시, 쇳소리와 함께 하루를 시작한다. 제44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 역도 -110kg급에서 스쾃(스쿼트) 195kg, 데드리프트 202kg, 합계 397kg으로 세 종목 모두 한국신기록을 갈아치운 박한별(36·강원) 선수의 일상이다.
박 선수에게 올해는 특히 힘든 해였다. 육아와 제자 양성을 병행하느라 훈련 시간이 부족한 탓에 새로운 전략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새벽 6시부터 운동을 시작했어요. 사실 무게 운동은 몸이 덜 풀린 이 시간대에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어쩔 수 없었죠. 대신 파워 위주로 승부를 보기로 했습니다." 지구력 대신 파워에 집중한 것이다. 그 결과 동호인부 최우수선수상까지 받으며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특히 스쾃에서는 당초 알고 있던 한국기록보다 3kg 더 끌어올렸다. 여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감독과의 소통 과정에서 한국신기록을 192kg으로 알았으나 실제로는 194kg이었던 것. 195kg으로 맞춰 훈련한 덕분에 결과적으로 3kg을 한 번에 올리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세 살 때 시각장애 진단을 받은 박 선수에게 가장 큰 어려움은 밸런스다. 왼쪽 눈의 시력이 더 좋지 않아 균형 감각이 일반인보다 많이 떨어진다. 거울도 잘 보이지 않아 자세가 틀어져도 바로잡기가 쉽지 않은 상황. 하지만 이런 한계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극복했다. 시각이 아닌 신체 감각에 집중하는 훈련법을 발전시킨 것이다.
박 선수의 스포츠 인생은 우연히 시작됐다. 중학교 3학년 때 교통사고로 입원했다가 우연히 본 보디빌딩 잡지가 계기가 된 것. 이후 보디빌딩을 시작으로 조정·유도를 거쳐 역도에 이르기까지 2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경험한 종목은 하나하나 값진 경험이 됐다. 보디빌딩에서는 체중 관리와 근력 운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쌓았고, 유도를 통해서는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력을 배웠다. 특히 조정은 새로운 시각을 열어줬다. 개인 종목만 하다 처음 경험한 팀 스포츠였고, 다양한 장애를 가진 선수들과 함께 훈련하며 장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면서 동호인부를 선택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첫째 아들이 어릴 때는 합숙 훈련을 하느라 아이와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었어요. 이제는 가정에도 충실하고 싶었죠." 시각장애인 역도는 패럴림픽대회 종목이 아니다. 선수부가 아닌 동호인부에서 활동하며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늘릴 수 있었다. 역도를 선택한 이유이자 지금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역도의 매력으로는 '완벽한 순간'을 꼽았다. "앉았다 일어나는 단순한 동작이지만, 단 하나라도 부족하면 무게를 들 수 없어요." 몸의 모든 부분이 100%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야 하는 순간, 무거운 무게도 마치 깃털처럼 느껴지는 희열을 경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수상의 의미를 묻자 박 선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20년 가까이 운동하면서 중간에 포기하라는 사람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든 인정받고 있다고 느껴요. 끝까지 버틴 게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마흔 살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겠다는 목표는 확고하다. 패배가 아닌 승리로 은퇴하고 싶고, 마지막까지 한계에 도전해나갈 것이다.
글 유명은
사진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