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가이드, 황민규·김준형의 스키 동행



두 사람은 그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거침없이 스키를 타고 있다.
현재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황민규(29·서울) 선수는 최근 출전한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서 알파인스키 2관왕을 차지했으며, 그의 파트너인 김준형(28·서울) 가이드는 이번 대회에 처음 신설된 ‘우수파트너상’에 초대 수상자로 선정됐다. 



"가이드는 눈 그 이상입니다. 제가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게 하는 존재죠."
_황민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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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2월에 열린 제22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회전 경기 모습. 김준형 가이드가 앞서고 뒤를 따라 황민규 선수가 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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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폐막식에서 ‘우수파트너상’을 수상한 김준형 가이드





가이드, 눈 그 이상의 존재


이번 대회에 신설된 '우수파트너상' 첫 수상자가 되었습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김준형  파트너의 중요성을 인정받은 것 같아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기쁘고 행복합니다. 호흡을 잘 맞추고 실력 있는 최고 가이드가 되고 싶었습니다. 앞으로도 열정을 갖고 끈기 있게 열심히 가이드 선수 생활을 해나갈 것입니다. 감사드리고 싶은 분이 많아요. 지도 편달해주시는 이호성 감독님, 후원해주시는 후원사와 서울시, 그리고 응원해주는 가족과 상을 만들어주신 협회에 감사드립니다. 이런 상이 더 만들어지고 확대되면 대한민국 스포츠에 감동적인 이야기가 많아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황민규 선수는 김준형 가이드가 받을 거라고 예상했나요? 

 황민규  상조차도 예상하지 못했어요. '우수파트너상'이 생겨 누구보다 반갑고 기쁩니다. 또 이번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서 준형이와 그 어느 때보다 즐겁게 경기에 임했습니다. 제 기량을 마음껏 펼쳤고, 그 결과가 수상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해요. 제가 장애인 스키를 10년 정도 했는데, 가이드가 여러 번 바뀌었어요. 그중 준형이와 호흡이 가장 잘 맞았고, 제 실력이 향상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시각장애인 스키 가이드의 역할에 대해 잘 모르시는 분을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해주세요.

 김준형  시각장애인 스키 가이드는 선수의 눈이 되어 코스 안내와 방향 지시를 합니다. 속도 조절과 위험 요소를 피하는 데 도움을 주고, 경기 중 안전과 성과를 위한 필수적 파트너 역할을 하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일상생활입니다. 우린 방도 같이 쓰고 생활도 함께 하는 이란성쌍둥이 같은 존재예요. 시각장애 선수와 가이드의 생활 패턴이 맞아야 하고, 존중과 배려가 꼭 필요합니다. 생활에서 틀어지면 경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거든요.



김준형 선수는 어떤 가이드인가요?

 황민규   제게 가이드는 눈 그 이상입니다. 또 저를 지나치게 보호해주지 않아서 좋아요.(웃음) 저는 국가대표 선수입니다. 열심히 훈련해 메달을 따는 것이 목표죠. 준형이는 제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고, 제가 잘했을 땐 확실하게 칭찬해줍니다. 시각장애인이기 전에 스키 선수로서 대해주고, 목표에 집중하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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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가이드





스키를 향한 열정, 가이드로의 여정


스키 선수에서 가이드가 되기까지 여정이 궁금합니다.

 김준형  유년 시절부터 알파인스키 선수였어요. 중학교 2학년, 열다섯 살 때부터 시작해 대학 4학년까지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13~14년의 선수 경력이 있죠. 고3부터는 플레잉 코치로 7년 동안 활동했고요. 군대에 있을 때 전역까지 1년 정도 남았을 때 '전역 후에도 계속 스키를 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대회가 끝날 무렵, 알파인스키 가이드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죠.



가이드를 시작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김준형   사실 고등학생 때부터 관심이 있었어요. 선수 생활을 같이 했던 친구 중 몇몇이 가이드로 활동하는 것을 보았거든요. 선수와 함께 시상대에 오르고, 함께 경기를 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선수와 가이드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고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회가 왔을 때 망설이지 않고 도전했습니다.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직후 전국동계체육대회에 선수로 출전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준형   맞습니다. 가이드도 실력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시각장애 선수와 더 호흡을 맞출 수 있거든요. 혼자 탈 때와 함께 탈 때 느낌도 다르고, 이런 경험이 황민규 선수를 더 잘 이끌 수 있게 해줍니다. 사실 알파인스키 가이드는 비장애인 스키 선수에게도 생소한 직업이고 함께 연습할 기회도 많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대한장애인스키협회에서 가이드 홍보도 많이 해주셔서 점차 인식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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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회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 경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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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국가대표 선수팀인 가이드 어은미 가이드, 최사라 선수, 황민규 선수, 김준형 가이드





신뢰와 잊지 못할 순간


서로에 대한 신뢰가 중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신뢰를 쌓았나요?

 김준형  솔직함입니다. 배려한다고 선의의 거짓말을 하거나,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인간관계에서 신뢰를 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저희는 엄청 싸운 적도 있어요. 하지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강점과 약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형은 이렇게 얘기하는 걸 싫어하는구나’, '이렇게 얘기해야 하는구나’ 하는 식으로요. 꾸준한 소통과 솔직한 대화가 깊은 신뢰를 쌓는 데 가장 중요했습니다.

 황민규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솔직히 저는 시각장애라는 핸디캡 때문에 쉽게 마음의 문을 열지 못했어요. 하지만 준형이는 처음 다가올 때부터 편견 없이 대해줬습니다. 그래서 제가 "앞이 안 보인다”, "불편하다”라는 말을 솔직하게 할 수 있었고, "그게 무슨 상관이냐, 안 보이는 것뿐이지”라는 반응에 편견의 벽이 무너졌죠.



두 분이 함께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황민규  첫 메달도 기억에 남지만, 항상 넘기 힘든 선수가 있었어요. 보통 10~15초 차이가 나던 오스트리아의 요하네스 아이그너 선수와 2024년 기록 차이가 1초 안으로 근접했을 때 가장 짜릿했습니다. 이후 제 실력도 터닝포인트를 맞이했어요. 사실 장애인 선수들은 상위권 선수가 너무 잘 타면 뛰어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요. 하지만 준형이가 "형, 저 선수랑 싸우려 하지 말고 자신과 싸우세요”라고 조언했고, 경기 중에도 "할 수 있어, 더 밟아!”라고 격려해줬어요.

 김준형  저도 그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또 그즈음 민규 형이 넘지 못한 또 다른 선수를 넘어섰어요. 상대 선수가 "내가 황민규한테 졌다”며 울분을 터뜨렸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대회장에서는 예상치 못한 결과였죠. 그때 민규 형의 강렬한 눈빛이 기억에 남네요. '진짜 해봐야겠다, 나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는 눈빛이었어요. 그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깨달은 것은 단순한 기록보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리고 다른 이에게 어떤 의미를 남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스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존재가 되는 거죠. 우리가 그런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보람입니다. 



경기 중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는지, 서로 어떻게 호흡을 맞추는지 궁금합니다.

 김준형  선수마다 소통 방식이 달라야 합니다. 민규 형은 제가 하는 말을 돌려 듣지 않고 직설적으로 받아들이죠.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바깥 발에 힘을 더 줘야 해!”처럼 명확하고 단적으로 말해야 효과적입니다. 특히 경기 중에는 상황이 급박하니 빠르고 간결한 지시가 중요합니다. 



그런 의사소통이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김준형  물론이죠. 자신감과 직결되기도 합니다. 선수들은 각자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에 맞춰 시합을 치르는데, 적절한 소통이 이 루틴을 강화하죠. 민규 형이 자신감을 얻고 최상의 컨디션으로 경기할 수 있도록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언제 격려하고 언제 기술적 조언을 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게 제 역할이에요. 결국 이런 소통이 쌓여 신뢰가 형성되고, 그 신뢰가 경기에서 성공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에서 2위와의 격차가 압도적이었습니다. 회전 경기 피니시 라인에서 환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본인의 평가는 어떤가요?

 황민규  전국장애인동계체육대회를 치르기 전에 준형이와 약속했어요. 작년엔 2등과 10초 차이였는데, 이번엔 20초로 격차를 벌리자고요. 그간 호흡을 맞추며 연습한 만큼 대회는 즐기자는 마음으로 임했고, 결국 목표를 달성해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서 피니시 라인에서 저도 모르게 기쁨을 표현한 것 같아요.




도전과 목표: 현실과 미래


가이드 선수로 활동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을 텐데요.

 김준형  직업으로서 가이드 활동에 대체로 만족하지만, 처우나 인식이 부족한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제가 열심히 하면 이런 처우나 관심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더 열의가 생기고 열심히 임하게 됩니다. 단순히 '경기 보조’, '훈련 보조’가 아닌 '가이드 선수’, '파트너 선수’로 인정받으면 좋겠어요. 이 직업에 대한 애매한 규정이나 시선이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합니다.

 황민규  가이드의 전문성을 인정받아야 해요. 선수들의 실력 향상에 가이드의 기여도가 매우 큰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가이드들이 좋은 처우를 받아야 실력 있는 분들이 이 길을 선택하게 되고, 그것이 결국 장애인 스포츠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어떤 존재인가요?

 김준형  지금 제게 민규 형은 '열정’ 그 자체입니다. 

 황민규  기댈 수 있는 친구이자 동생입니다. 제가 시각장애가 있지만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대해주는 존재요. 그렇기에 제가 진정한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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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장애인스키협회
(왼쪽) 이탈리아 셀라네베아 스키장에서 훈련하고 있는 모습
(오른쪽) 국제대회에서 수상한 팀들과 단체 사진




"함께 뭉친 두 발, 하나의 눈으로 내달리다!"





현재와 미래를 향한 도전


현재 이탈리아에서 훈련 중인데, 현지 상황은 어떤가요? 

 김준형・황민규  지금 이탈리아 셀라네베아 스키장에 와있습니다. 작년에도 방문했지만, 지금까지 경험한 중 가장 좋은 설원 상태예요. 오늘 프리 스키를 타봤는데 설질이 매우 좋았고, 집중에서 훈련할 수 있어 만족스럽습니다. 3월 10일부터 공식 경기가 시작되는데, 12・13・15일에는 가장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다운힐 경기, 16일에는 회전과 속도를 모두 테스트하는 슈퍼지 경기가 열립니다. 이후에는 장소를 스위스로 옮겨 20일부터 25일까지 기술 중심의 파이널 대회가 진행됩니다.



이번 대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황민규  이번 대회는 시즌 마지막을 장식하는 월드컵 파이널입니다. 3월 16일에는 스피드 종목 종합 순위 시상이, 25일에는 회전과 대회전 종목의 종합 시상이 있습니다. 포인트제로 진행되는데, 모든 종목의 점수를 합산해 가장 높은 점수를 얻은 선수들이 1~3위를 차지합니다. 이 대회는 비장애인 선수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현재 우리 팀은 5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어 좋은 결과가 기대됩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패럴림픽대회를 준비하는 각오가 궁금합니다.

 김준형  알파인스키는 패럴림픽대회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할 수 있는 종목입니다. 그래서 알파인스키 다섯 종목을 석권하는 것을 우선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또 패럴림픽대회를 잘 치른 후 가이드의 처우와 인식 개선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입니다. 제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든, 가이드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황민규  저도 다섯 종목 석권이 첫 번째 목표입니다. 그리고 패럴림픽대회가 끝나고 나서도 준형이와 함께하면서 더 많은 장애인 선수와 가이드 선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2026 밀라노-코르티나 동계 패럴림픽대회는 제 세 번째이자 마지막 패럴림픽이 될 것 같아 모든 것을 쏟아부을 예정입니다.






 유명은
사진 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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