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다’라는 단어는 위를 향해 나아가는 단어이자, 아래로 향하기도 한다. ‘시합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뜻인 동시에 ‘고통이나 아픔을 누르고 견뎌낸다’는 의미도 지녔다. 부상으로 아쉬움이 남은 브라질 데플림픽의 기억을 딛고, 도쿄 데플림픽 정상에 서기 위해 한창 담금질하는 태권도 –58kg급 겨루기 국가대표 이로운(30)을 만났다.
이날은 농아인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에는 개인 훈련을 진행하고, 특정 날짜에 모여 국가대표팀 훈련을 하고 있다.
정상을 향한 준비
경기도 이천선수촌 태권도 훈련장. 국가대표 선수 10여 명이 모인 이날 훈련장은 선명한 기합 소리와 시원시원한 미트 타격음으로 가득했다. 체력 훈련, 기술 훈련, 실전을 방불케 하는 모의 경기까지 감독과 코치의 지도 아래 선수들은 땀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유독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선수가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주변 선수들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태권도 -58kg급 겨루기 선수 이로운(30)이다. 훈련을 마친 후 만난 이로운 선수의 목소리에는 압박감이나 긴장감보다는 절박함과 확신이 묻어났다. 다가오는 도쿄 데플림픽을 앞두고 그는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2021 브라질 카시아스두술 하계 데플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로운 선수 ⓒ이로운
브라질의 아쉬움, 십자인대 부상
이로운 선수의 절박함에는 이유가 있다. 2021 브라질 카시아스두술 하계 데플림픽에서 겪은 아픈 기억 때문이다. 대회를 앞두고 훈련 중 전·후방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연골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후 5개월 동안 재활에 매진했다. "예전에 브라질 데플림픽에 나갔을 때 십자인대가 끊어져 제대로 준비도 못한 채 시합을 뛰었거든요. 그때 많이 아쉬웠어요." 부상으로 3등에 그친 브라질에서의 경험은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됐다.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철저히 준비했고, 이후 세계농아인태권도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내가 극복하지 못했던 걸 결국 이겨냈구나, 정상에 다시 섰구나' 하는 성취감이 정말 크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슬럼프에서 재기까지
이로운 선수가 걸어온 길은 남다르다. 유치원 시절 친형과 함께 시작한 태권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길'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후 비장애인 선수로 대학까지 전국대회에 출전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쌓았지만, 대학교 때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대학교 때 잠시 운동을 그만두면서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큰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죠." 전환점은 당시 대학팀 코치의 권유였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은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솔직히 2년 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비장애인 선수에서 청각장애 선수로의 전향. 그 용기 있는 선택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제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느껴요. 단순히 선수 생활을 넘어 운동이 제 일상과 삶에 큰 활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채덕성 감독은 이런 배경이 이로운 선수의 강점이라고 평가한다. "원래 비장애인 선수로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대학까지 비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전국대회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고, 기본기가 워낙 탄탄해 지금은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 사이에 기량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장애인태권도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채덕성 감독
"순간적 판단력이 제 강점이에요"
이로운 선수가 꼽는 자신만의 무기는 순간적 판단력이다. "상대가 어떤 식으로 들어와도 겁먹지 않고 먼저 반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현재 컨디션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채 감독은 "지난 4월부터 시작한 국가대표 훈련을 성실하게 이어왔고, 오늘 훈련만 봐도 몸 상태가 80% 이상 올라와 있다고 판단됩니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체력은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다. "부족한 점은 체력인데, 이 부분은 계속 보완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채 감독도 "지금은 올림픽 시즌이기에 무엇보다 체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기술도 제대로 나오고, 경기 중 집중력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같은 진단을 내렸다.
이란·튀르키예가 경쟁 상대, "준비 상태가 더 중요"
데플림픽의 강력한 경쟁 상대를 묻자, 채 감독은 구체적 분석을 내놓았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이란 선수입니다. 튀르키예 선수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춰 이 두 나라를 주요 경쟁 상대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운 선수의 대답은 달랐다. "특별히 주목하는 상대는 없어요." 단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어조였다. "누구를 만나든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결국 상대가 누구냐보다 제 준비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1등 하겠습니다"
채덕성 감독은 이번 데플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지금 이로운 선수는 기량적으로 최고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데플림픽에서 이미 동메달을 따낸 경험도 있죠. 그 경험을 자산으로 이번에는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로운 선수 역시 확고한 각오를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무조건 1등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아니면 그냥 죽을 각오로 뛸 겁니다. 반드시 1등 하겠습니다." 브라질에서의 아픔을 딛고 정상을 향해 달리는 이로운 선수. 그의 순수한 열정과 불굴의 의지가 데플림픽 매트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된다.
‘이기다’라는 단어는 위를 향해 나아가는 단어이자, 아래로 향하기도 한다.
‘시합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뜻인 동시에 ‘고통이나 아픔을 누르고 견뎌낸다’는 의미도 지녔다. 부상으로 아쉬움이 남은 브라질 데플림픽의 기억을 딛고, 도쿄 데플림픽 정상에 서기 위해 한창 담금질하는 태권도 –58kg급 겨루기 국가대표 이로운(30)을 만났다.
이날은 농아인 태권도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평소에는 개인 훈련을 진행하고, 특정 날짜에 모여 국가대표팀 훈련을 하고 있다.
정상을 향한 준비
경기도 이천선수촌 태권도 훈련장. 국가대표 선수 10여 명이 모인 이날 훈련장은 선명한 기합 소리와 시원시원한 미트 타격음으로 가득했다. 체력 훈련, 기술 훈련, 실전을 방불케 하는 모의 경기까지 감독과 코치의 지도 아래 선수들은 땀을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유독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는 선수가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주변 선수들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며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던 태권도 -58kg급 겨루기 선수 이로운(30)이다.
훈련을 마친 후 만난 이로운 선수의 목소리에는 압박감이나 긴장감보다는 절박함과 확신이 묻어났다. 다가오는 도쿄 데플림픽을 앞두고 그는 "무조건 1등을 해야 한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2021 브라질 카시아스두술 하계 데플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이로운 선수 ⓒ이로운
브라질의 아쉬움, 십자인대 부상
이로운 선수의 절박함에는 이유가 있다. 2021 브라질 카시아스두술 하계 데플림픽에서 겪은 아픈 기억 때문이다. 대회를 앞두고 훈련 중 전·후방 십자인대가 끊어지고, 연골이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이후 5개월 동안 재활에 매진했다.
"예전에 브라질 데플림픽에 나갔을 때 십자인대가 끊어져 제대로 준비도 못한 채 시합을 뛰었거든요. 그때 많이 아쉬웠어요."
부상으로 3등에 그친 브라질에서의 경험은 오히려 성장의 발판이 됐다.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철저히 준비했고, 이후 세계농아인태권도대회에서 1등을 했을 때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내가 극복하지 못했던 걸 결국 이겨냈구나, 정상에 다시 섰구나' 하는 성취감이 정말 크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슬럼프에서 재기까지
이로운 선수가 걸어온 길은 남다르다. 유치원 시절 친형과 함께 시작한 태권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내 길'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이후 비장애인 선수로 대학까지 전국대회에 출전하며 탄탄한 기본기를 쌓았지만, 대학교 때 예상치 못한 시련이 찾아왔다.
"대학교 때 잠시 운동을 그만두면서 제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큰 슬럼프를 겪었어요. 그때는 아무것도 하기 싫었죠."
전환점은 당시 대학팀 코치의 권유였다. "'귀가 잘 안 들리는 것 같은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권유하셨어요. 솔직히 2년 동안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비장애인 선수에서 청각장애 선수로의 전향. 그 용기 있는 선택이 그의 인생을 바꿨다. "제 삶이 더 행복해졌다고 느껴요. 단순히 선수 생활을 넘어 운동이 제 일상과 삶에 큰 활력을 주는 것 같습니다."
채덕성 감독은 이런 배경이 이로운 선수의 강점이라고 평가한다.
"원래 비장애인 선수로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대학까지 비장애인 선수들과 함께 전국대회에 출전하며 경험을 쌓았고, 기본기가 워낙 탄탄해 지금은 장애인 선수와 비장애인 선수 사이에 기량 차이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장애인태권도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채덕성 감독
"순간적 판단력이 제 강점이에요"
이로운 선수가 꼽는 자신만의 무기는 순간적 판단력이다.
"상대가 어떤 식으로 들어와도 겁먹지 않고 먼저 반응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습니다."
현재 컨디션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채 감독은 "지난 4월부터 시작한 국가대표 훈련을 성실하게 이어왔고, 오늘 훈련만 봐도 몸 상태가 80% 이상 올라와 있다고 판단됩니다"라고 평가했다.
다만 체력은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할 과제다.
"부족한 점은 체력인데, 이 부분은 계속 보완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채 감독도 "지금은 올림픽 시즌이기에 무엇보다 체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뒷받침돼야 기술도 제대로 나오고, 경기 중 집중력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라며 같은 진단을 내렸다.
이란·튀르키예가 경쟁 상대, "준비 상태가 더 중요"
데플림픽의 강력한 경쟁 상대를 묻자, 채 감독은 구체적 분석을 내놓았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이란 선수입니다. 튀르키예 선수들도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춰 이 두 나라를 주요 경쟁 상대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운 선수의 대답은 달랐다. "특별히 주목하는 상대는 없어요." 단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어조였다. "누구를 만나든 같은 마음가짐으로 임하려고 합니다. 결국 상대가 누구냐보다 제 준비 상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1등 하겠습니다"
채덕성 감독은 이번 데플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지금 이로운 선수는 기량적으로 최고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데플림픽에서 이미 동메달을 따낸 경험도 있죠. 그 경험을 자산으로 이번에는 충분히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로운 선수 역시 확고한 각오를 보였다.
"이번 대회에서는 무조건 1등을 하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죽기 살기로, 아니면 그냥 죽을 각오로 뛸 겁니다. 반드시 1등 하겠습니다."
브라질에서의 아픔을 딛고 정상을 향해 달리는 이로운 선수. 그의 순수한 열정과 불굴의 의지가 데플림픽 매트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지 기대된다.
글 박지인
사진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