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이었다. 9월 28일 광주 5·18민주광장 특설경기장. 김옥금(65・광주시청)-이은희(55・대구) 조가 '제15회 광주 2025 세계장애인양궁선수권대회' W1 여자 더블 결승에서 중국의 멍칸・왕리야 조를 140:122로 꺾었다.
마지막 화살
이은희 선수는 경기 내내 점수를 보지 않았다. 마지막 화살이 파란색(6점)에 꽂히는 순간 코치를 쳐다봤고, 코치의 환호로 승리를 확인했다. "첫 메달이라는 기쁨보다는 '아, 다행이다'가 먼저였어요. 태극기가 올라가고 나서야 기쁨을 느꼈죠." 현장에서는 침착해 보였지만, 첫 국제 대회였던 그녀는 내내 긴장했다고 했다. 김옥금 선수는 마지막 화살을 쏠 때 지난해 파리 패럴림픽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지막 한 발 때문에 패한 경기였다. "'다시는 그런 실수는 없을 거야!' 신경 써서 쐈어요. 10점을 맞혔죠." 경기는 초반부터 대한민국이 주도했다. 1엔드 35:33으로 시작해 2엔드에서 34:24로 10점 차를 벌리며 흐름을 완전히 가져왔다. 3엔드 36:29, 마지막 4엔드만 35:36으로 내줬지만 이미 승기를 잡은 뒤였다.
제15회 광주 2025 세계장애인양궁선수권대회 W1 여자 더블 결승전 모습
이은희 선수
김옥금 선수
두 달 만에 만든 호흡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된 것은 대회가 열리기 두 달 전이었다. 국가대표 코치진의 제안으로 이뤄진 조합이었다. 김옥금 선수는 이미 이은희 선수를 '잘 쏘는 선수'로 알고 있었고, 이은희 선수는 합숙 생활을 하며 김옥금 선수에게서 프로의 자세를 배웠다. "언니는 나이가 있는데도 계속 발전하더라고요. 매일 다른 선수보다 5분 먼저 사대에 나와 있었어요. 개인적인 일로 빠지는 법도 없고요. 롱런하는 비결이구나 싶었습니다." 김옥금 선수도 이은희 선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많았다. "생각보다 중증이었어요. 저도 중증인데, 더 심했죠. 재활이 많이 안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실력을 다진 것에 감탄했고, 경기를 잘 치러줘서 고마웠습니다." 결승전 사대에 오르기 직전, 김옥금 선수가 말했다. "너는 나를 믿고 쏴라, 나는 너를 믿고 쏘겠다." 이은희 선수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 믿고 쏘겠습니다." 사실 이은희 선수는 이미 김옥금 선수를 믿고 있었다. 합숙 기간 동안 언니가 얼마나 잘 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듣기 전부터 무조건 믿었다. 오히려 자신이 언니에게 같은 말을 하지 못한 게 미안했다고 했다.
시상대에 오른 김옥금 선수는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 65세. 지난 4월 폐암 수술을 받았다. “집중하다 보니 더 숨이 차더라고요. 숨 고르기가 어려웠어요.” 도움을 준 주변 사람들이 생각났다. 광주시청의 지원과 안형승 감독의 지도가 큰 힘이 됐기에,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다. “안형승 감독의 지도 아래 오늘이 있었습니다. 패럴림픽 때와 달리 이번엔 욕심을 내지 않았어요. 몸도 안 좋고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죠.” 경기가 끝난 뒤 가족들이 몰래 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온 신경을 경기에 쏟아야 해서 가족들의 관람을 만류해온 그녀였다. 하지만 손자·손녀까지 온 가족이 금메달을 축하해주니 참 좋았다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W1, 활을 당기기까지
W1 클래스는 장애인양궁에서 중증장애인이 참가하는 부문이다. 이은희 선수는 경추장애로 스스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손가락 힘도 없다. 활을 당기는 힘 자체가 없어 개인적으로 훈련을 엄청나게 해야 당길 수 있다. 그럼에도 이은희 선수는 매일 4시간씩 연습한다. 대동공업 소속 직업 선수로 8년째 활동 중이다. 집에 가서도 고무줄을 당기고 슈팅 연습을 한다. "매일 하지 않으면 감각이 다르더라고요."
양궁을 처음 본 건 1988년이었다. 매력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에 강하게 끌렸다. 하지만 경추 장애라는 이유로 "못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몇 년 후 컴파운드 활이 나오면서 기회가 왔다. 그래도 처음 1~2년은 고무줄만 당겼다. 활을 당길 힘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부터 해온 휠체어럭비 덕분에 기본 체력과 팔 힘이 있었고, 결국 활을 당길 수 있게 됐다. "활이 차고 나가는 힘, 화살이 멀리 딱 꽂히는 쾌감. 너무 좋더라고요. 그 매력을 알면 못 벗어나죠." 하지만 이은희 선수는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 대구시장애인종합복지관 야외 양궁장에서 연습해왔는데, 곧 양궁장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애인체육회에서 디트로 양궁장을 제안했지만, 왕복 3시간에 연습 여건이 녹록지 않다. "대구에서도 좋은 선수가 많이 나왔다”며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시면 계속 좋은 선수들이 나올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김옥금 선수도 같은 걱정을 했다. "W1 선수들을 더 양성해야 하는데, 접근하기가 쉽진 않아요. 협회 차원에서 신경 써서 접근하기 편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광주의 환경이 좋은 예라고 했다. 김보배, 안산 같은 세계적 선수들이 나온 이유는 환경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옥금 선수도 이런 환경에서 꾸준히 기량을 연마해왔다.
이제 활시위는 어디를 향하나
김옥금 선수는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대회를 목표로 삼았다. "이은희 선수와 힘을 합쳐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혼성 파트너인 박홍조 선수와도 좋은 경기를 치르면 좋겠습니다." 이은희 선수의 목표는 조금 달랐다. "목표라기보다는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어요. 좀 더 안정적으로 실력을 갖추고 싶고요. 제가 저를 믿을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두 선수는 서로를 치켜세웠다. 김옥금 선수는 "이은희 선수 덕분"이라 했고, 이은희 선수는 "언니 덕분에 운이 좋아서"라고 했다.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순간, 두 선수가 참았던 눈물을 쏟은 데에는 기쁨과 감사, 안도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더블전이 더 뭉클한 것은 아마도 서로를 믿는다는 그 한마디 때문일 것이다.
생애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이었다.
9월 28일 광주 5·18민주광장 특설경기장. 김옥금(65・광주시청)-이은희(55・대구) 조가 '제15회 광주 2025 세계장애인양궁선수권대회' W1 여자 더블 결승에서 중국의 멍칸・왕리야 조를 140:122로 꺾었다.
마지막 화살
이은희 선수는 경기 내내 점수를 보지 않았다. 마지막 화살이 파란색(6점)에 꽂히는 순간 코치를 쳐다봤고, 코치의 환호로 승리를 확인했다.
"첫 메달이라는 기쁨보다는 '아, 다행이다'가 먼저였어요. 태극기가 올라가고 나서야 기쁨을 느꼈죠."
현장에서는 침착해 보였지만, 첫 국제 대회였던 그녀는 내내 긴장했다고 했다.
김옥금 선수는 마지막 화살을 쏠 때 지난해 파리 패럴림픽의 기억을 떠올렸다. 마지막 한 발 때문에 패한 경기였다.
"'다시는 그런 실수는 없을 거야!' 신경 써서 쐈어요. 10점을 맞혔죠."
경기는 초반부터 대한민국이 주도했다. 1엔드 35:33으로 시작해 2엔드에서 34:24로 10점 차를 벌리며 흐름을 완전히 가져왔다. 3엔드 36:29, 마지막 4엔드만 35:36으로 내줬지만 이미 승기를 잡은 뒤였다.
제15회 광주 2025 세계장애인양궁선수권대회 W1 여자 더블 결승전 모습
이은희 선수
김옥금 선수
두 달 만에 만든 호흡
두 사람이 파트너가 된 것은 대회가 열리기 두 달 전이었다. 국가대표 코치진의 제안으로 이뤄진 조합이었다. 김옥금 선수는 이미 이은희 선수를 '잘 쏘는 선수'로 알고 있었고, 이은희 선수는 합숙 생활을 하며 김옥금 선수에게서 프로의 자세를 배웠다.
"언니는 나이가 있는데도 계속 발전하더라고요. 매일 다른 선수보다 5분 먼저 사대에 나와 있었어요. 개인적인 일로 빠지는 법도 없고요. 롱런하는 비결이구나 싶었습니다."
김옥금 선수도 이은희 선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많았다.
"생각보다 중증이었어요. 저도 중증인데, 더 심했죠. 재활이 많이 안 된 것 같았어요. 그런데도 이렇게 실력을 다진 것에 감탄했고, 경기를 잘 치러줘서 고마웠습니다."
결승전 사대에 오르기 직전, 김옥금 선수가 말했다.
"너는 나를 믿고 쏴라, 나는 너를 믿고 쏘겠다."
이은희 선수가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언니 믿고 쏘겠습니다."
사실 이은희 선수는 이미 김옥금 선수를 믿고 있었다. 합숙 기간 동안 언니가 얼마나 잘 쏘는지 알고 있었기에, 그 말을 듣기 전부터 무조건 믿었다. 오히려 자신이 언니에게 같은 말을 하지 못한 게 미안했다고 했다.
시상대에 오른 김옥금 선수는 눈시울을 붉혔다. 올해 65세. 지난 4월 폐암 수술을 받았다.
“집중하다 보니 더 숨이 차더라고요. 숨 고르기가 어려웠어요.”
도움을 준 주변 사람들이 생각났다. 광주시청의 지원과 안형승 감독의 지도가 큰 힘이 됐기에,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컸다.
“안형승 감독의 지도 아래 오늘이 있었습니다. 패럴림픽 때와 달리 이번엔 욕심을 내지 않았어요. 몸도 안 좋고 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임했죠.”
경기가 끝난 뒤 가족들이 몰래 와 있었다는 걸 알았다. 온 신경을 경기에 쏟아야 해서 가족들의 관람을 만류해온 그녀였다. 하지만 손자·손녀까지 온 가족이 금메달을 축하해주니 참 좋았다고 수줍게 털어놓았다.
W1, 활을 당기기까지
W1 클래스는 장애인양궁에서 중증장애인이 참가하는 부문이다. 이은희 선수는 경추장애로 스스로 앉아 있지도 못하고, 손가락 힘도 없다. 활을 당기는 힘 자체가 없어 개인적으로 훈련을 엄청나게 해야 당길 수 있다.
그럼에도 이은희 선수는 매일 4시간씩 연습한다. 대동공업 소속 직업 선수로 8년째 활동 중이다. 집에 가서도 고무줄을 당기고 슈팅 연습을 한다.
"매일 하지 않으면 감각이 다르더라고요."
양궁을 처음 본 건 1988년이었다. 매력적인 운동이라는 생각에 강하게 끌렸다. 하지만 경추 장애라는 이유로 "못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몇 년 후 컴파운드 활이 나오면서 기회가 왔다. 그래도 처음 1~2년은 고무줄만 당겼다. 활을 당길 힘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전부터 해온 휠체어럭비 덕분에 기본 체력과 팔 힘이 있었고, 결국 활을 당길 수 있게 됐다.
"활이 차고 나가는 힘, 화살이 멀리 딱 꽂히는 쾌감. 너무 좋더라고요. 그 매력을 알면 못 벗어나죠."
하지만 이은희 선수는 현실적인 고민을 안고 있다. 대구시장애인종합복지관 야외 양궁장에서 연습해왔는데, 곧 양궁장이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애인체육회에서 디트로 양궁장을 제안했지만, 왕복 3시간에 연습 여건이 녹록지 않다.
"대구에서도 좋은 선수가 많이 나왔다”며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시면 계속 좋은 선수들이 나올 것”이라고 바람을 전했다.
김옥금 선수도 같은 걱정을 했다.
"W1 선수들을 더 양성해야 하는데, 접근하기가 쉽진 않아요. 협회 차원에서 신경 써서 접근하기 편하게 만들면 좋겠습니다."
광주의 환경이 좋은 예라고 했다. 김보배, 안산 같은 세계적 선수들이 나온 이유는 환경이 잘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옥금 선수도 이런 환경에서 꾸준히 기량을 연마해왔다.
이제 활시위는 어디를 향하나
김옥금 선수는 내년 아이치-나고야 아시안패러게임대회를 목표로 삼았다.
"이은희 선수와 힘을 합쳐 금메달을 바라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혼성 파트너인 박홍조 선수와도 좋은 경기를 치르면 좋겠습니다."
이은희 선수의 목표는 조금 달랐다.
"목표라기보다는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어요. 좀 더 안정적으로 실력을 갖추고 싶고요. 제가 저를 믿을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인터뷰 내내 두 선수는 서로를 치켜세웠다. 김옥금 선수는 "이은희 선수 덕분"이라 했고, 이은희 선수는 "언니 덕분에 운이 좋아서"라고 했다.
광주 5·18민주광장에서 태극기가 올라가는 순간, 두 선수가 참았던 눈물을 쏟은 데에는 기쁨과 감사, 안도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더블전이 더 뭉클한 것은 아마도 서로를 믿는다는 그 한마디 때문일 것이다.
글 유명은
사진 World Arche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