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4초, 김현빈의 승부수

2025-07-03

856ae40782c4d.png



최근 시각장애인 유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대한민국이 8년 만에 메달을 땄다.
그 주인공은 평택시청 소속 김현빈(J1·70kg) 선수. 동메달 결정전 마지막 4초, 극적인 안뒤축감아치기로 승부를 뒤집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96dbe6daa94b8.png

96dbe6daa94b8.png




"그건 제 작전이었습니다"

지난 5월 31일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결정전. 홈 관중의 일방적 응원 속에서도 김현빈 선수는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의 심리까지 계산한 작전을 구사했다.

"첫 번째 안뒤축감아치기로 절반 점수를 얻었을 때, 상대가 경계하는 게 딱 느껴졌어요. 그래서 다른 기술을 계속 시도하다 긴장이 풀릴 때를 노렸죠."

마지막 4초를 남기고 두 번째 안뒤축감아치기. 순간 경기장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터진 득점 신호. 8년 만에 메달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두 번째로 시도한 안뒤축감아치기였는데, 사실 판정이 애매할 것 같아 연장전을 각오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드라마틱하게 됐죠."



96dbe6daa94b8.png

경기를 앞둔 김현빈 선수의 뒷모습 © 원유신 감독 제공



96dbe6daa94b8.png

동메달을 획득한 김현빈 선수가 시상대에 서 있다. © 원유신 감독 제공



96dbe6daa94b8.png

(왼쪽부터) 김현빈 선수와 원유신 감독 © 원유신 감독 제공




원유신 감독은 그 순간을 지켜보며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했다. "현빈이가 자꾸 주특기만 하니까 정말 답답했어요. 웜업장에서 안뒤축감아치기를 미리 연습시켰는데, 막상 경기에서는 어깨로메치기, 배대뒤치기만 계속 하더라고요."

더 놀라운 건 김현빈 선수의 침착함이었다. "경기장이 너무 시끄러워서 현빈이가 제 말을 못 듣는 것 같았어요. 시간을 알려줘도 반응이 없어 정말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경기가 끝난 뒤 물어보니 현빈이의 작전이었다고 하더군요."

김현빈 선수는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 "관중들 소리나 그런 거는 솔직히 신경을 안 쓰는 편이에요. 대신 간간이 같이 시합을 뛰는 선수들이나 관중석에 계신 코치님, 사무국장님, 감독님 목소리가 자주 들리더라고요. 그 목소리에 집중해 끝까지 할 수 있었어요."

이런 집중력과 여유로움이 김현빈 선수만의 특별함이라고, 원유신 감독은 평가한다. "현빈이는 제가 가르친 선수 중 몇 안 되는 성실한 선수예요. 그리고 정말 여유로워요. 나는 밖에서 속이 타 들어가는데, 정작 안에서는 '니가 더 타 들어가겠냐' 이런 식의 여유를 부리거든요.(웃음)"



96dbe6daa94b8.png

카자흐스탄에서 열린 IBSA(국제시각장애인스포츠연맹) 유도 세계선수권대회 동메달 결정전에서 경기 종료 4초 전 안뒤축감아치기로 극적인 득점을 성공시키고 있다. 




체급 상승과 4강 패배의 교훈

사실 이번 대회에서 김현빈 선수가 가장 인상 깊었다고 말한 경기는 의외로 4강전이었다. 이긴 경기가 아닌 진 경기였다.

"이탈리아 선수와 스타일이 거의 80~90% 똑같더라고요. 힘이나 자세가 비슷해서 오래 하겠다 싶었는데, 배대뒤치기를 두 발로 걸려서 당했어요. 헬스장 레그프레스 기구처럼 들려서 던져지더라고요. 걸릴 줄도 몰랐고, 할 줄도 몰랐어요."

원유신 감독도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레슬링 선수들이 매달리는 것처럼 상대한테 매달려서 밀어 올려, 현빈이가 완전히 뒤집혀 등으로 뚝 떨어져버렸어요. 저도 너무 어이가 없었죠."

이번 대회는 김현빈 선수에게 또 다른 도전이기도 했다. 기존 60kg에서 70kg로 체급이 조정되면서 체중 증가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했기 때문이다. 체급 조정은 4년 주기로 이뤄지는 국제유도연맹의 정책이다. 특정 체급에 선수들이 몰리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다. "체질 자체가 운동량도 많고, 살이 잘 안 찌더라고요. 한 달에 1kg씩 거의 반년 동안 꾸역꾸역 늘렸어요."

원유신 감독은 "60kg에서 계속 뛰던 현빈이 같은 선수들은 손해를 보는 거죠. 73kg에서 70kg로 내려온 선수들이 훨씬 유리한 상황이었어요"라고 설명했다. 



도복이 멋있어 보여서

김현빈 선수와 유도의 인연은 고등학생 때 시작됐다. 특성화고등학교에 다니며 진로를 고민하던 중 우연히 선택한 운동이었다.

"특성화고등학교 교육과정을 따라가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운동을 찾아봤는데, 도복이 멋있어 보여 시작하게 됐죠."




96dbe6daa94b8.png

96dbe6daa94b8.png



처음엔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다. "시작할 땐 '내가 재능이 없구나' 하며 평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도 하다 보니 재미있기도, 설레기도 하더라고요. 지금도 가장 마음이 설레는 게 유도예요." 6년간 지도해준 서울시각장애인체육회 이상진 사무국장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그분이 6년 동안 같이 지내면서 지도하고 케어해주셔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어요."

김현빈 선수의 성실함은 원유신 감독도 놀랄 정도다. "보통 운동 끝나면 선수들이 다 힘들어하잖아요. 그런데 현빈이는 '감독님, 저 저녁에 운동 좀 더 하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어요?'라고 물어봐요. 제가 운동할 때도 선생님한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는데, 정말 기특해요."



96dbe6daa94b8.png

이천선수촌 체력단련실에서 운동하고 있는 김현빈 선수




현재 김현빈 선수는 오전에는 체력·근력운동을, 오후에는 용인대·평택국제대 유도부와의 도복 대련, 야간 개인 운동까지 하루 세 번의 훈련을 소화한다. 비장애인 전문 유도 선수들과의 실전 대련을 통해 다양한 스타일과 기술을 익히고 있다. 야간에는 코어 운동, 탄성 고무줄을 이용한 기술 개발, 악력 운동을 1시간가량 한다.



96dbe6daa94b8.png

오후에는 용인대·평택국제대 유도부와의 도복 훈련을 한다. 사진은 평택국제대 유도부와 훈련이 있던 날이었다.




원유신 감독은 시각장애인 선수를 지도할 때의 차이점을 설명했다. "전맹에 가까운J1 선수들은 시력이 약해 중심 이동하는 방법이 상대에게 노출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스텝 운동을 수학 공식처럼 외우게 만들고, 도복 깃의 움직임으로 상대를 파악하는 훈련을 중점적으로 시킵니다."



2028 LA 패럴림픽대회, "각오는 따로 없어요"

8년 만의 메달이라는 타이틀이 주는 부담감을 김현빈 선수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기쁜 감정보다는 아쉽기도 하고, 동메달 하나 땄는데 기사도 많이 나오고 인터뷰도 요청하니 조금 부담스럽더라고요. 지금까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어서요." 



96dbe6daa94b8.png

96dbe6daa94b8.png

96dbe6daa94b8.png




하지만 그의 목표는 여전히 명확하다. "2028 LA 패럴림픽대회는 당연히 1등이 목표입니다. 각오는 따로 없어요."

같은 길을 걷게 될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간단명료했다. "이 꽉 깨물고 열심히 해라. 딴생각하지 말고." 원유신 감독도 애정 깊은 조언을 더했다. "처음에는 되게 무서워요. 넘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고. 근데 그 단계가 지나가면 설레요. 인생도 그렇잖아요. 처음엔 무섭지만 일단 적응하면 마음이 설레잖아요. 잘 참고 고통의 시간을 견디면 언젠가는 환희의 시간이 올 것입니다."

8년 만의 메달로 다시 주목받게 된 한국 시각장애인 유도. 김현빈이라는 새로운 스타와 원유신이라는 경험 많은 지도자의 만남이 2028 LA 패럴림픽대회에서 어떤 결실을 맺을지 자못 기대된다. 



96dbe6daa94b8.png

(왼쪽부터) 원유신 감독과 김현빈 선수 








 유명은
사진 정재환





         


05540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올림픽회관 신관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마케팅부 02-3434-4533

서비스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어빌리브에 실린 글, 그림, 사진 등 모든 자료 가운데 저작권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저작권이 있으며, 서면 동의 없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COPYRIGHT 2008-2023 KPC ALL RIGHTS RESERVED.

어빌리브에 실린 글, 그림, 사진 등 모든 자료 가운데 저작권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은 것은 대한장애인체육회에 저작권이 있으며, 서면 동의 없이는 사용할 수 없습니다. 

05540 서울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올림픽회관 신관 
대한장애인체육회 홍보마케팅부 02-3434-4533
COPYRIGHT 2008-2023 KPC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