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 불변의 법칙, 경계를 허무는 김우림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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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청각장애인 사격 국가대표 김우림(27·보은군청)은 남자 일반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한국 신기록을 세우며 주목받았다.
청각장애 선수가 비장애인 선수들과 같은 무대에서 기록을 경신하는 일은 흔치 않다. 더 궁금했던 건, 그가 어떻게 스스로를 조율하며 그 기록에 다가갔느냐는 것이다. 충북 보은중학교 사격장에서 훈련 중인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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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중학교 사격장 정심관에서 훈련하는 김우림 선수. 학생들도 함께 훈련하고 있다.




사격이 가장 어울리는 사람, 김우림

보은중학교 사격장 '정심관'. 학교 한편에 자리 잡은 이 공간은 이름처럼 집중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분위기였다. 이미 훈련에 들어간 선수들의 숨소리와 총성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김우림 선수와 양승전 감독이 밝은 얼굴로 맞아주었다. 훈련장의 긴장감 속에서도 따뜻한 공기가 감돌았다.
"사격은 어떤 운동인가?"라는 질문에 그는 '평정심'과 '절제'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꺼냈다. 그 단어들은 말뿐 아니라 그의 표정과 움직임에도 스며 있었다. 감독 옆에 조용히 앉아 스마트폰 음성인식 앱으로 대화를 살피던 모습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는 스스로를 "게임을 좋아하고, 타인과의 대화는 조금 낯설어하는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스포츠'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열정이나 경쟁심보다는 사격과 어울리는 침착함이 먼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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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격장과 동일한 규격의 시설을 갖췄다. 사격이 이루어지면 점수가 즉각 표기된다.




흔들림 없는 몰입을 만들어가는 법

"총을 쥐면 마치 한 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바로 몰입하게 되고요."
그 말처럼, 사대에 선 그의 모습은 총과 하나 된 듯 자연스러워 보였다. 부드럽게 자세를 만들고 고정된 채 표적을 응시하는 눈빛 또한 단단했다. 숨소리는 점점 얇아졌고, 정심관 안은 정적에 잠겼다. 곧 이어진 '툭' 하는 격발음. 작고 건조한 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집중의 무게는 묵직했다. 그는 이제 막 첫 발을 쏜 참이었다. 실제 대회 본선에서는 총 60발을 쏜다.
"몰입의 최고 단계가 무아지경이라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 걸 자주 느껴요. 오직 표적만 보이고, 모든 감각이 극도로 예민해지죠. 흑점이 유난히 또렷해 보일 때도 있어요."
반대로 집중이 흐트러지는 날엔 멈춰 서는 데서 다시 시작한다.
"그럴 땐 일단 총을 내려놓고 마음부터 다잡아요. 마음이 흔들리면 뭐든 흐트러지니까, 평정심부터 다시 찾고 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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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림 선수를 지도하는 양승전 감독. 사격 중 루틴이나 자세가 틀어지지 않는지 세심하게 관리한다.




그에게 집중은 순간의 컨디션에 좌우되지 않는다. 스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그의 일상 루틴은 사격을 위한 준비로 가득하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머리를 감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긍정적 기운을 다잡기 위한 습관이다. 사격장에 도착하면 명상으로 마음을 정돈하며 조용히 사격을 준비한다. 경기장 안에서 가장 애착 가는 공간으로 '사대 뒤 휴식 공간'을 꼽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늘 평정심, 인내심, 절제력을 단련하려고 해요. 다 해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계속 훈련 중이에요."
양승전 감독은 김우림 선수의 몰입 능력을 높이 평가하며, 훈련 루틴과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지도하고 있다.
"일반인이 한 가지 일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은 15분 정도라고 해요. 하지만 훈련을 거듭하면 훨씬 길어질 수 있죠. 우림이가 더 깊이 집중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율해주고 있습니다."
여기에 장비 규정 변화라는 또 다른 과제도 주어졌다. 내년부터는 사격복 두께가 절반 수준으로 줄고, 발목을 지탱하던 사격화도 더 짧은 스타일로 바뀐다. 양 감독은 "서양 선수들은 체형 덕에 장비 의존도가 낮지만, 한국 선수들에겐 큰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우림이가 그러한 변화에 잘 적응하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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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과 필담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김우림 선수




기록 뒤에 숨은 성장의 시간

훈련을 마친 뒤, 잠시 자리를 옮겨 김우림 선수와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눴다. 대부분의 대화를 스마트폰 음성인식 기능과 필담으로 주고받았다. 속도보다는 정확함이 우선인 방식. 질문 하나하나에 조심스럽게, 그러나 분명하게 대답하는 모습이 어쩐지 '그답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김우림 선수가 사격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6학년 무렵이다. 함께 청각장애를 가진 친누나 김고운 선수가 먼저 사격을 시작했고, 그의 손을 이끌었다.
"그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첫 훈련은 남부대학교 사격장에서 이뤄졌다. 그는 총을 들지 않고 자세 연습만 반복했다. 대학생들 틈에 끼어 낯설고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조심스럽게 눈으로 익혔다. 조용한 공간, 작은 움직임 속에서 사격은 그렇게 시작됐다.
시간이 흐르며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그는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코로나19 시절'을 꼽았다.
"그땐 실업팀에 들어갈 실력도 안 됐고, 경제적으로도 많이 어려웠어요."
당시 기초수급 대상이던 그는 한 달 식비로 5만 원도 쓰기 어려웠다.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결국 1년간 휴학을 택했다. 사격을 그만두는 대신, 오히려 훈련에 집중할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쉼이었을 시기가, 그에게는 가장 버거운 시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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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브라질 카시아스두술 하계 데플림픽에 참가해 은메달을 획득한 김우림 선수
© 양승전 감독 제공 




꾸준한 노력으로 청각장애인 국가대표로 성장한 그는 친누나 김고운 선수와 함께 국제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2021 브라질 카시아스두술 하계 데플림픽이 그 무대였다.
"결선에서 2등을 했어요. 아쉽게 금메달을 놓쳤죠."
당시 그는 본선에서 데플림픽 세계신기록을 세웠지만, 결선에서는 0.9점 차로 금메달을 내주며 은메달에 머물렀다.
"누나가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어요. 장난처럼 때리고 타박하다 결국 위로해주었죠."
두 사람은 서로에게 든든한 조력자다. "경쟁보다는 서로 힘이 되는 관계입니다. 사격에 대한 조언도 주고받고요."
활달한 누나와 조용한 동생. 성격은 다르지만, 경기에 임할 때는 비슷한 리듬으로 호흡한다. 그는 "저는 원래 차분해서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누나는 다혈질이라 처음엔 힘들어했어요. 지금은 완전히 능숙한 고수죠"라며 웃었다. 그렇게 둘은 서로에게 가장 좋은 교정자가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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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라는 경계를 허물며

김우림 선수는 최근 주요 대회에서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대구광역시장배 전국사격대회에서는 남자 일반부 개인전 본선과 단체전 모두에서 신기록을 세웠다. 이제 그는 청각장애인 선수를 넘어 10m 공기소총 전체 종목에서도 주목받는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성적이 오르며 기대도 커졌지만, 그는 그 무게를 덤덤히 받아들이고 있다.
"부담은 항상 있었어요. 그런데 그게 익숙해졌죠. 그냥 옆에 두고 가는 거라 생각하곤 해요. 그러면 오히려 마음이 더 차분해져요."

오는 11월에는 ISSF 카이로 세계사격선수권대회와 2025 도쿄 하계 데플림픽 등 굵직한 국제 대회가 기다린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그 너머를 향해 있다.
"올해가 끝이 아니니까요. 매 대회에서 좋은 점수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즌 전체를 아우르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남기고 싶어요. 내년엔 모든 대회에서 우승하는 게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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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양승전 감독과 김우림 선수




양승전 감독은 2025 도쿄 하계 데플림픽 혼성 종목에서 김우림 선수가 정다인 선수와 팀을 이루면 금메달을 충분히 노려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개인전에서는 인도의 다누쉬 스리칸트와의 경쟁이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그 또한 비장애인 선수들과 겨루며 실력을 인정받은 상대다. "금과 은은 그 둘 사이에서 갈릴 것"이라는 게 그의 전망이다. 양 감독은 더 멀리, 2028 LA 올림픽을 바라보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비장애인 국가대표로 선발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목표예요. 아직 보완할 점은 있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우림 선수는 이미 국내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다. 이는 진정한 실력과 집중력으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얼마든지 허물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의 행보가 장애인체육 인식 개선과 저변 확대에 기여하길 바란다. 





글·사진  박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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