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훈련 끝에 찾은 단단한 코어, 파라펜싱 선수 권효경 트랙을 달리던 열여섯 살 소녀가 검을 쥐고 피스트 위에 앉았다. 검 끝이 맞부딪히는 찰나의 순간, 무수한 한계를 지워내고 피스트 위 짜릿한 승부의 쾌감을 본능적으로 찔러 넣는 사람. 슬럼프 앞에서도 주저 없이 검을 들어 올리는 권효경 선수를 만났다.
트랙에서 피스트 위로, 운명처럼 마주한 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트랙을 달리던 육상 유망주 권효경 선수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변화를 원했고 다소 지쳐 있던 시기, 우연처럼 파라펜싱의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이다. 당시엔 펜싱의 ‘펜 자’도 몰랐고, 그저 검을 잡고 겨루는 종목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육상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잖아요. 반면 펜싱은 피스트 위에서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호흡을 주고받으며 승부를 겨뤄요. 그 역동성과 서로 다른 경기 타이밍이 주는 발랄한 매력에 매료되었죠." 하지만 하체를 주로 쓰던 육상 선수가 휠체어에 몸을 고정한 채 상체 힘만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파라펜싱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펜싱은 생각보다 상체를 정교하게 쓰는 종목이더라고요. 검을 쥐는 주력 손과 그렇지 않은 손의 근육량 차이가 커서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억지로 쥐어짜다 보니 초기엔 통증도 심했어요. 뇌병변 장애가 있는 저로서는 휠체어를 잡지 못해 손을 아예 묶고 경기를 해야 하거든요. 공격을 뻗었다가 복귀할 때 코어(복부)와 오른쪽 팔의 힘만으로 상체를 버텨야 하니, 경기가 끝나면 근육이 덜덜 떨릴 정도로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권 선수가 선택한 것은 지독한 루틴과 '웨이트트레이닝'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는 "검을 잡는 것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더 사랑할 정도"라며 웃었다. 탄탄한 코어를 잡기 위해 새벽까지 개인 훈련을 자처하며 하루 대부분을 운동에 쏟아부었다.
섬세한 마인드 컨트롤, 그리고 짜릿한 ‘필살기의 타이밍’
국가대표로서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권 선수는 의외로 자신을 ‘예민한 성격’이라고 털어놓았다. 가끔은 경기 전 불면증을 겪기도 한다는 것. 그런 그를 묵묵히 붙잡아주는 존재가 바로 박규화 감독이다. "제가 감정 기복이 있을 때 감독님은 늘 한결같이 멘털을 잡아주세요. 사실 제가 워낙 낯을 많이 가려서 감독님과 편하게 대화하기까지 3~4년이란 시간이 걸렸거든요. 말이 없다 보니 주변에서 '살갑지 못하다'라며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감독님은 묵묵히 기다려 주셨어요. 대회장에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시는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그렇다면 불안과 스트레스를 통제하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팁을 묻자 '10분의 명상'과 '스트레스 해소용 웨이트'를 꼽았다. "집중이 흐려질 때는 유튜브나 앱으로 물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음을 틀어놓고 10분간 명상을 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요동치던 기분이 가라앉죠. 슬럼프가 찾아올 땐 검을 내려놓고 딴생각을 하거나 제가 좋아하는 웨이트트레이닝에 몰두하면서 잡념을 물리적으로 잊어버려요." 이렇게 하면 내면의 단단함이 피스트 위에서 '공격적 플레이 스타일'로 발현된다. 반복 훈련 끝에 체화된 감각은 상대방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찰나에 빛을 발한다. "사람마다 거리를 재는 감각이 다른데, 상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는 게 핵심이에요. 그렇게 대치하다가 상대와의 타이밍이 맞부딪히는 순간, 찰나의 '틈'이 전기가 오르듯 눈에 보입니다. 그 빈틈을 과감히 찔렀을 때의 쾌감은 펜싱 선수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최고의 매력입니다."
이름 앞에 새긴 타투, '나비'처럼 날아오를 내일을 향해
권 선수는 국제 대회에 나설 때마다 자기만의 원칙을 고수한다. 경기 중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회 기간에는 가족들과 일절 통화를 하지 않는 것. 부모님과 자매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지거나 신경이 분산될 수 있기에 온전히 검에 몰입한 뒤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담담히 결과를 보고한다. 세계 무대에서 마주하는 모든 선수를 라이벌로 규정하기보다는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상대의 노력도 인정하는 선의의 경쟁자"로 바라보는 매너 역시 그의 큰 자산이다. 인터뷰 말미 대중에게 어떤 수식어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팔에 새겨진 타투를 보여주며 ‘나비 검객’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우리나라 최초 같은 말도 좋지만 ‘나비 검객’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와닿아요. 나비 타투가 지닌 ‘행운’,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좋더라고요. 힘들 때마다 다시 시작하자는 저만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한계를 찌르고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비 검객' 권효경. 그의 검 끝이 향하는 다음 목적지 역시, 수많은 장벽을 가볍게 날아 넘는 화합과 성취의 현장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지독한 훈련량과 압도적 코어 힘, 편견을 깨는 스피드의 비결입니다”
_ 박규화(홍성군청 파라펜싱팀 감독)
박규화 감독이 말하는 선수 권효경
권효경 선수를 가장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규화 감독. 2019년 신인 선수와 지도자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국가대표팀을 거쳐 지금까지 7년째 든든한 멘토이자 최고 파트너로 동행하고 있다. 박 감독이 전하는 '선수 권효경'의 진짜 모습, 그리고 피스트 뒤의 이야기.
📍지독한 훈련량과 성실함의 증거 한마디로 '정말 지독하게 노력하는 선수'. 본인 스스로 알아서 채우는 개인 훈련량이 엄청나다. 심지어 집에도 찌르기 연습을 할 수 있는 펜싱 시스템을 따로 만들어 두었을 정도다. 늘 검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성실함이 지금의 권효경을 만들었다.
📍제약을 넘어선 독보적 보디워크 보디워크ㅣ뇌병변 장애의 특성상 휠체어 뒤쪽의 중심 손잡이를 잡으려면 몸을 고정한 채 상체의 보디워크만으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 보통 선수들은 뒷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앞뒤로 움직이는데, 권 선수는 뒷손의 지지 없이 오직 '코어 힘'만으로 버텨야 하기에 남보다 훨씬 큰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권 선수는 이를 엄청난 훈련으로 극복했다. 역동적이고 빠른 스피드를 뿜어낸다. 그 제약을 깨부순 신체 제어 능력과 스피드가 바로 권 선수만의 독보적 재능이자 무기다.
📍긴장감을 덜어내는 따뜻한 일상 언어 큰 대회를 앞두면 선수도, 지도자도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경기 직전까지 일부러 운동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어제 잠은 잘 잤는지’, ‘밥은 뭘 먹었는지’ 묻거나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긴장감을 덜어주려고 한다. 편하고 재미있게 임할 때 능률도, 집중력도 오르기 때문!
📍정상의 무대를 향한 서포트 오는 8월에 열릴 2026 WA 파라펜싱 태국월드컵,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2028 LA 패럴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권 선수도 정상에 서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기에 지도자로서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 권 선수가 부담감을 내려놓고 피스트 위에서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도록 아낌없이 서포트할 생각이다.
지독한 훈련 끝에 찾은 단단한 코어, 파라펜싱 선수 권효경
트랙을 달리던 열여섯 살 소녀가 검을 쥐고 피스트 위에 앉았다. 검 끝이 맞부딪히는 찰나의 순간, 무수한 한계를 지워내고 피스트 위 짜릿한 승부의 쾌감을 본능적으로 찔러 넣는 사람. 슬럼프 앞에서도 주저 없이 검을 들어 올리는 권효경 선수를 만났다.
트랙에서 피스트 위로, 운명처럼 마주한 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트랙을 달리던 육상 유망주 권효경 선수는 열여섯 살이 되던 해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맞이했다. 변화를 원했고 다소 지쳐 있던 시기, 우연처럼 파라펜싱의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이다. 당시엔 펜싱의 ‘펜 자’도 몰랐고, 그저 검을 잡고 겨루는 종목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육상은 오롯이 나 혼자만의 고독한 싸움이잖아요. 반면 펜싱은 피스트 위에서 상대방과 실시간으로 호흡을 주고받으며 승부를 겨뤄요. 그 역동성과 서로 다른 경기 타이밍이 주는 발랄한 매력에 매료되었죠." 하지만 하체를 주로 쓰던 육상 선수가 휠체어에 몸을 고정한 채 상체 힘만으로 경기를 풀어가는 파라펜싱에 적응하기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감각의 전환이 필요했다.
"펜싱은 생각보다 상체를 정교하게 쓰는 종목이더라고요. 검을 쥐는 주력 손과 그렇지 않은 손의 근육량 차이가 커서 평소 안 쓰던 근육을 억지로 쥐어짜다 보니 초기엔 통증도 심했어요. 뇌병변 장애가 있는 저로서는 휠체어를 잡지 못해 손을 아예 묶고 경기를 해야 하거든요. 공격을 뻗었다가 복귀할 때 코어(복부)와 오른쪽 팔의 힘만으로 상체를 버텨야 하니, 경기가 끝나면 근육이 덜덜 떨릴 정도로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권 선수가 선택한 것은 지독한 루틴과 '웨이트트레이닝'에 대한 집착이었다. 그는 "검을 잡는 것보다 웨이트트레이닝을 더 사랑할 정도"라며 웃었다. 탄탄한 코어를 잡기 위해 새벽까지 개인 훈련을 자처하며 하루 대부분을 운동에 쏟아부었다.
섬세한 마인드 컨트롤, 그리고 짜릿한 ‘필살기의 타이밍’
국가대표로서 성적을 유지하고 있지만 권 선수는 의외로 자신을 ‘예민한 성격’이라고 털어놓았다. 가끔은 경기 전 불면증을 겪기도 한다는 것. 그런 그를 묵묵히 붙잡아주는 존재가 바로 박규화 감독이다. "제가 감정 기복이 있을 때 감독님은 늘 한결같이 멘털을 잡아주세요. 사실 제가 워낙 낯을 많이 가려서 감독님과 편하게 대화하기까지 3~4년이란 시간이 걸렸거든요. 말이 없다 보니 주변에서 '살갑지 못하다'라며 오해를 사기도 했는데 감독님은 묵묵히 기다려 주셨어요. 대회장에서는 누구보다 뜨거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주시는 최고의 파트너입니다." 그렇다면 불안과 스트레스를 통제하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팁을 묻자 '10분의 명상'과 '스트레스 해소용 웨이트'를 꼽았다. "집중이 흐려질 때는 유튜브나 앱으로 물소리, 새소리 같은 자연의 음을 틀어놓고 10분간 명상을 해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요동치던 기분이 가라앉죠. 슬럼프가 찾아올 땐 검을 내려놓고 딴생각을 하거나 제가 좋아하는 웨이트트레이닝에 몰두하면서 잡념을 물리적으로 잊어버려요." 이렇게 하면 내면의 단단함이 피스트 위에서 '공격적 플레이 스타일'로 발현된다. 반복 훈련 끝에 체화된 감각은 상대방과의 거리가 좁혀지는 찰나에 빛을 발한다. "사람마다 거리를 재는 감각이 다른데, 상대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나만의 거리를 끝까지 유지하는 게 핵심이에요. 그렇게 대치하다가 상대와의 타이밍이 맞부딪히는 순간, 찰나의 '틈'이 전기가 오르듯 눈에 보입니다. 그 빈틈을 과감히 찔렀을 때의 쾌감은 펜싱 선수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최고의 매력입니다."
이름 앞에 새긴 타투, '나비'처럼 날아오를 내일을 향해
권 선수는 국제 대회에 나설 때마다 자기만의 원칙을 고수한다. 경기 중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대회 기간에는 가족들과 일절 통화를 하지 않는 것. 부모님과 자매들의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지거나 신경이 분산될 수 있기에 온전히 검에 몰입한 뒤 경기가 끝나고 나서야 담담히 결과를 보고한다. 세계 무대에서 마주하는 모든 선수를 라이벌로 규정하기보다는 "지더라도 최선을 다하고 상대의 노력도 인정하는 선의의 경쟁자"로 바라보는 매너 역시 그의 큰 자산이다. 인터뷰 말미 대중에게 어떤 수식어로 기억되고 싶은지 묻자 팔에 새겨진 타투를 보여주며 ‘나비 검객’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우리나라 최초 같은 말도 좋지만 ‘나비 검객’이라는 별명이 마음에 와닿아요. 나비 타투가 지닌 ‘행운’, ‘새로운 시작’이라는 의미가 좋더라고요. 힘들 때마다 다시 시작하자는 저만의 다짐이기도 합니다." 한계를 찌르고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않는 '나비 검객' 권효경. 그의 검 끝이 향하는 다음 목적지 역시, 수많은 장벽을 가볍게 날아 넘는 화합과 성취의 현장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
“지독한 훈련량과 압도적 코어 힘,
편견을 깨는 스피드의 비결입니다”
_ 박규화(홍성군청 파라펜싱팀 감독)
박규화 감독이 말하는 선수 권효경
권효경 선수를 가장 오랜 시간 가까이에서 지켜본 박규화 감독. 2019년 신인 선수와 지도자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국가대표팀을 거쳐 지금까지 7년째 든든한 멘토이자 최고 파트너로 동행하고 있다. 박 감독이 전하는 '선수 권효경'의 진짜 모습, 그리고 피스트 뒤의 이야기.
📍지독한 훈련량과 성실함의 증거
한마디로 '정말 지독하게 노력하는 선수'. 본인 스스로 알아서 채우는 개인 훈련량이 엄청나다. 심지어 집에도 찌르기 연습을 할 수 있는 펜싱 시스템을 따로 만들어 두었을 정도다. 늘 검을 손에서 놓지 않는 성실함이 지금의 권효경을 만들었다.
📍제약을 넘어선 독보적 보디워크
보디워크ㅣ뇌병변 장애의 특성상 휠체어 뒤쪽의 중심 손잡이를 잡으려면 몸을 고정한 채 상체의 보디워크만으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 보통 선수들은 뒷손으로 손잡이를 잡아 앞뒤로 움직이는데, 권 선수는 뒷손의 지지 없이 오직 '코어 힘'만으로 버텨야 하기에 남보다 훨씬 큰 제약이 따른다. 하지만 권 선수는 이를 엄청난 훈련으로 극복했다. 역동적이고 빠른 스피드를 뿜어낸다. 그 제약을 깨부순 신체 제어 능력과 스피드가 바로 권 선수만의 독보적 재능이자 무기다.
📍긴장감을 덜어내는 따뜻한 일상 언어
큰 대회를 앞두면 선수도, 지도자도 힘들어지기 마련이다. 경기 직전까지 일부러 운동 이야기는 꺼내지 않는다. ‘어제 잠은 잘 잤는지’, ‘밥은 뭘 먹었는지’ 묻거나 가벼운 농담을 건네며 긴장감을 덜어주려고 한다. 편하고 재미있게 임할 때 능률도, 집중력도 오르기 때문!
📍정상의 무대를 향한 서포트
오는 8월에 열릴 2026 WA 파라펜싱 태국월드컵,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2028 LA 패럴림픽 금메달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권 선수도 정상에 서겠다는 의지가 누구보다 강하기에 지도자로서 확실한 동기부여가 된다. 권 선수가 부담감을 내려놓고 피스트 위에서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도록 아낌없이 서포트할 생각이다.
글 정지연
사진 정재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