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 노란색, 오른손 빨간색 암벽을 읽는 가장 명료한 언어

2026-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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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클라이밍 국가대표 감독 서종국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Innsbruck)에서 열린 2026 IFSC 파라 시리즈 월드컵 현장. 그곳에서 장애인 선수들이 비장애인과 아무렇지도 않게 암벽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서종국 감독은 지도자로서 마음을 다잡았다. 장애라는 장벽을 지우고 오직 중력을 거스르는 동작에 집중하게 만드는 스포츠, 파라클라이밍. 대한민국 파라클라이밍의 토대를 다지며 선수들과 암벽을 개척해나가는 서종국 국가대표팀 지도자이자 대한장애인체육회 자문위원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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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스포츠 클라이밍 분야에서 명지휘관으로 활약하시다 파라클라이밍 지도자로서 국가대표 선수들과 호흡을 맞추고 계십니다. 장애인 선수를 처음 지도할 때 생각의 전환이 일어난 결정적 순간이 있으신가요?

저도 모르게 선입견에 갇혀 있었는지, 처음엔 선수들을 아기 다루듯 도와주려고만 했습니다. 하지만 선수들은 제가 도움을 주려고 할 때마다 대수롭지 않다는 듯 벽을 치고 올라갔습니다. 그때 제가 생각하던 '막연한 배려’가 편견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지도자로서 열정이 끓어올랐습니다. 스포츠 정신에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는 없다는 것을 선수들이 증명해준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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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 유형에 따라 파라클라이밍 훈련 메커니즘을 구상해야 할 텐데, 어떤 연구를 거치셨습니까?

파라클라이밍은 같은 장애 등급이라도 선수마다 제약이 있는 신체 부위가 다릅니다. 그렇기에 매뉴얼을 과감히 버리고, 선수 한 명 한 명을 관찰하는 분석에 집중해야 합니다. 먼저 비장애인 선수들이 구사하던 기술을 장애 선수에게 적용해봅니다. 벽 위에서 부딪혀본 뒤 시행착오를 거치며 선수에게 가장 효율적인 움직임을 일대일 맞춤형 단계로 설계하는 거죠.



등반 전 경로를 만드는 '루트 관찰(옵저베이션)' 단계에서 감독님은 선수의 눈과 손발이 되어주셔야 하는데, 소통 노하우가 있다면요?

루트 관찰은 암벽 등반에서 효율적인 길을 찾아내는 단계입니다. 특히 시각장애 선수에게 루트를 알려줄 때는 지도자가 암벽 아래에서 복잡하게 설명하면 오히려 선수에게 혼란을 야기합니다. 그래서 저는 "왼손 노란색, 오른손 빨간색"처럼 간결하면서 직관적으로 말합니다. 경기 중에는 헤드셋 무전기를 사용해 사이트 가이드(Sight Guide) 역할을 하는데요. "12시 방향, 1시 방향에 오른발"처럼 시계 방향으로 위치를 지시합니다. 선수가 시각적 제한이 있더라도 평소 홀드(인공 돌출부)를 만져보며 촉감 데이터를 축적해나가면, 암벽이 잘 보이지 않더라도 선수와 감독이 하나 되어 벽을 오를 수 있습니다.



파라클라이밍은 상체 코어 근육과 팔 힘이 절대적입니다. 신체 훈련에서 가장 공들이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하지 사용이 어려운 파라클라이밍 선수들은 팔 힘만으로 체중을 버텨야 합니다. 팔의 근력이 없으면 추락이나 부상의 위험이 있으므로 강한 상체 근력을 만드는 단계를 최우선으로 둡니다. 턱걸이를 비롯해 광배근을 발달시키는 랫풀다운, 등 뒤쪽을 발달시키는 로우 운동에 집중하는 이유입니다. 클라이밍계는 "체중 1kg이 늘면 홀드 한 개를 못 잡는다"는 공식이 있습니다. 몸을 가볍게 유지해야 하는 거죠. 미세한 홀드를 손가락 마디 하나로 잡고 버틸 수 있도록 근력 강화 프로그램에 공들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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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가 홀드를 놓치거나 체력적 한계에 부딪혀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 감독님만의 멘털 지도 노하우가 궁금합니다.

"다른 선수와 경쟁하지 말고, 오직 루트(벽)하고만 싸워라"라고 강조합니다. 경쟁자를 의식하는 순간 긴장해서 멘털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루트를 완등하는 사람이 이기는 것"이라며 오직 손끝에 닿는 홀드에 집중하도록 이끕니다. 결과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때 가장 힘든 사람은 선수입니다. 경기를 마친 선수에게는 그저 “고생했다, 수고했다”라는 격려만 전합니다. 경기 분석과 피드백은 하루, 이틀 지나 선수의 마음이 가라앉은 후 진행합니다.



여전히 대중에게 파라클라이밍은 도전하기 어려운 종목으로 오해받곤 합니다. 경기 현장에서 목격하신 이 종목만의 감동은 무엇인가요?

비장애인과 장애인 선수가 출전하는 세계선수권 대회장은 관중들의 열렬한 환호성과 응원 소리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그 열기 속에서 시각장애 경기가 시작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관중석이 고요해집니다. 선수가 무전기 너머 가이드의 목소리에 의지해 홀드를 찾아야 하기에 관중들이 침묵하며 배려하는 거죠. 그러한 정적 속에서 선수와 가이드 두 사람의 목소리만 경기장에 퍼집니다. 선수가 정상에 도달해 완등 패널을 치면 그제야 관중의 박수가 터져나오죠. 파라클라이밍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의 순간입니다.



마지막으로, 도전을 망설이는 장애인분들과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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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파라클라이밍 강습회를 열면 젊은 장애인분이 많이 찾아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감독님, 저 평소에는 어디서 클라이밍을 연습해요?"라고 물을 때가 많습니다. 일상에서 "갈 수 있는 데가 많지 않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것이 파라클라이밍 인프라의 현실입니다. 해외처럼 비장애인과 장애인이 사설 클라이밍 공간에서 어울리며 운동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장애가 있더라도 암벽에 오르는 모습이 자연스러운 '놀이터'가 많아져야 좋은 선수를 많이 발굴할 수 있습니다. 장애라는 벽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문을 두드리세요. 저 역시 단단한 토대를 만들기 위해 끝까지 암벽 아래를 지키겠습니다.






정지연
사진 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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