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친구가 공을 던졌는데, 높은 담벼락 위로 올라가버렸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우리에게 그 담은 너무 높아 보였고, 누구도 쉽게 오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세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담을 넘었고, 옷은 찢어지고 손은 까졌지만 친구들은 놀라워하며 “앞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했냐”며 나를 인정해주었다. 처음으로 심장이 크게 뛰었고,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느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첫 도전이자 첫 발견이었다.
그 뒤로 나는 몸으로 도전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앞구르기, 그네에서 덤블링하기 등 친구들 앞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고, 아이들은 나를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인정받는 기쁨이 점점 커졌다.
학교 체육대회에서 비장애인 친구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계기로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장애인 육상대회에 나갔다.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왔고, 지역대회·전국대회에서 1등을 거듭했다. 특히 높이뛰기에서는 한국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나는 ‘공부보다 스포츠를 할 때 행복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육상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내다 보니 자만심이 생겼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종목인 스키는 나를 다시 초보로 만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알파인스키를 처음 접한 건 장애인스키캠프에서였다. 그때부터 흥미가 생겼고, 선수 선발 과정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스키를 타보니 온몸이 떨리고, 제한된 시야 때문에 앞이 흐릿하게 흔들리며 어지럽기까지 했다. 수없이 넘어졌고, 무릎 십자인대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도 겪었다. 그러나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졌다. 스키를 탈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행복감도 느낄 수 있었다.
신인 선수, 후보 선수를 거쳐 국가대표가 되었을 때는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세계 무대에 나가 외국 선수들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출발선 앞에 선 그들의 여유로운 표정, 경기 전 차분한 태도, 그리고 압도적 기술과 스피드. 그 앞에서 나는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 감정은 하루이틀이 아닌, 몇 년간 계속되었다.
선천적 시각장애로 태어난 나는 한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아 오른쪽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채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공부하기도 쉽지 않았다. 무시와 놀림을 받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나는 장애인이니까 당연히 이런 대우를 받는구나’ 하고 체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세계 무대에서 다시 한번 벽에 부딪힌 것이다.
그 벽을 넘기 위해 나는 상상 훈련, 즉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외국 선수들을 이기는 장면, 그들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을 끊임없이 그려봤다. 하루에 1시간 이상은 그렇게 머릿속으로 연습했다. 그렇게 작은 변화들이 내 기술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알파인스키는 가이드와 함께하는 종목이다. 앞사람과의 거리, 속도를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베이징 동계패럴림픽대회 이후 지금의 가이드 김준형 선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엔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늘 먼저 다가와 대화를 시도했고, "형, 잘하려고 하지 마. 형이 하던 대로 해"라는 말은 내 마음속 가장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격차를 좁히기 위해 항상 과도하게 긴장했던 나에게 그 말은 편안함과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 소중한 조언이었다.
물론 멘털이 무너지는 순간도 많았다. 특히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에 처음 출전했을 때, 긴장으로 앞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때 주변에서 “신경 쓰지 마. 다음에 잘하면 돼”라는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도전은 나에게 세 가지 선물을 주었다. 첫째는 자신감, 둘째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셋째는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는 끈기다.
나는 지금도 스키를 탈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 순간순간이 내게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 스스로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있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대회에서는 알파인스키의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 나아가 후배 선수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계라고 여겨지는 것에 굴복하지 말고, 끝없이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온전한 나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나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더 빛나는 선수가 되어,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어느 날 친구가 공을 던졌는데, 높은 담벼락 위로 올라가버렸다.
당시 초등학생이던 우리에게 그 담은 너무 높아 보였고, 누구도 쉽게 오르려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세 번의 시도 끝에 결국 담을 넘었고, 옷은 찢어지고 손은 까졌지만 친구들은 놀라워하며 “앞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했냐”며 나를 인정해주었다. 처음으로 심장이 크게 뛰었고,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느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첫 도전이자 첫 발견이었다.
그 뒤로 나는 몸으로 도전하는 일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앞구르기, 그네에서 덤블링하기 등 친구들 앞에서 새로운 시도를 했고, 아이들은 나를 “대단하다”고 말해주었다. 인정받는 기쁨이 점점 커졌다.
학교 체육대회에서 비장애인 친구들보다 좋은 성적을 거둔 것을 계기로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장애인 육상대회에 나갔다. 생각보다 성적이 잘 나왔고, 지역대회·전국대회에서 1등을 거듭했다. 특히 높이뛰기에서는 한국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나는 ‘공부보다 스포츠를 할 때 행복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운동선수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육상에서 계속 좋은 성적을 내다 보니 자만심이 생겼다. ‘나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완전히 새로운 종목인 스키는 나를 다시 초보로 만들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것, 더 큰 세상이 있다는 것, 그리고 아직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알파인스키를 처음 접한 건 장애인스키캠프에서였다. 그때부터 흥미가 생겼고, 선수 선발 과정에도 도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스키를 타보니 온몸이 떨리고, 제한된 시야 때문에 앞이 흐릿하게 흔들리며 어지럽기까지 했다. 수없이 넘어졌고, 무릎 십자인대가 부분 파열되는 부상도 겪었다. 그러나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면서 조금씩 익숙해졌다. 스키를 탈 때마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행복감도 느낄 수 있었다.
신인 선수, 후보 선수를 거쳐 국가대표가 되었을 때는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세계 무대에 나가 외국 선수들을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출발선 앞에 선 그들의 여유로운 표정, 경기 전 차분한 태도, 그리고 압도적 기술과 스피드. 그 앞에서 나는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구나’ 하는 좌절감을 느꼈다. 그 감정은 하루이틀이 아닌, 몇 년간 계속되었다.
선천적 시각장애로 태어난 나는 한쪽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아 오른쪽 시야가 완전히 가려진 채로 살아왔다. 어린 시절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공부하기도 쉽지 않았다. 무시와 놀림을 받는 것도 익숙한 일이었다. 처음에는 ‘나는 장애인이니까 당연히 이런 대우를 받는구나’ 하고 체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고, 여기까지 왔다. 그런데 세계 무대에서 다시 한번 벽에 부딪힌 것이다.
그 벽을 넘기 위해 나는 상상 훈련, 즉 이미지 트레이닝을 시작했다. 외국 선수들을 이기는 장면, 그들의 장단점을 분석하며 내가 가져갈 수 있는 부분을 끊임없이 그려봤다. 하루에 1시간 이상은 그렇게 머릿속으로 연습했다. 그렇게 작은 변화들이 내 기술을 조금씩 끌어올렸다.
알파인스키는 가이드와 함께하는 종목이다. 앞사람과의 거리, 속도를 맞추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베이징 동계패럴림픽대회 이후 지금의 가이드 김준형 선수를 만나게 되었는데, 처음엔 호흡을 맞추는 과정에서 갈등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늘 먼저 다가와 대화를 시도했고, "형, 잘하려고 하지 마. 형이 하던 대로 해"라는 말은 내 마음속 가장 무거운 짐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장애인으로서 비장애인 선수들과 격차를 좁히기 위해 항상 과도하게 긴장했던 나에게 그 말은 편안함과 자신감을 되찾게 해준 소중한 조언이었다.
물론 멘털이 무너지는 순간도 많았다. 특히 평창 동계패럴림픽대회에 처음 출전했을 때, 긴장으로 앞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때 주변에서 “신경 쓰지 마. 다음에 잘하면 돼”라는 말은 내게 큰 위로가 되었다.
도전은 나에게 세 가지 선물을 주었다. 첫째는 자신감, 둘째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셋째는 실패해도 포기하지 않으면 이룰 수 있다는 끈기다.
나는 지금도 스키를 탈 때마다 행복을 느낀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 순간순간이 내게는 선물 같은 시간이다. 그리고 언젠가 나 스스로를 진심으로 인정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훈련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있을 밀라노-코르티나 동계패럴림픽대회에서는 알파인스키의 모든 종목에서 메달을 따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더 나아가 후배 선수들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한계라고 여겨지는 것에 굴복하지 말고, 끝없이 도전하다 보면 언젠가 온전한 나로 인정받는 날이 올 것이다.”
나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앞으로도 더 빛나는 선수가 되어,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새로운 도전의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글・사진 황민규(29・알파인스키 국가대표 선수)